교통관문 천호동은 상업 중심지로…서울역사박물관 보고서
집성촌에서 5만명 도시로…260년만에 새로 만나는 망우동
동래 정씨, 평산 신씨, 의령 남씨의 집성촌에서 약 5만명이 거주하는 도시로 변모했다.

하남, 광주, 충주에서 서울로 오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교통의 관문은 5대 특화 거리를 갖춘 상업 중심지로 거듭났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과 강동구 천호동의 이야기다.

11일 서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박물관은 2022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토대로 '신망우동지(新忘憂洞誌)' 보고서와 '천호동, 동남부 교통의 관문'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2007년 시작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서울역사박물관을 대표하는 조사 연구 사업이다.

뉴타운 사업 대상지였던 보광동을 시작으로 이번 천호동까지 총 39개 지역 조사를 완료했다.

신망우동지는 1760년 간행된 '망우동지'(서울시 유형문화재)와 262년의 시간 차를 두고 현대의 망우동을 기록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기존 망우동지에 나타난 망우동과 지금의 망우동을 비교해 기록했다.

망우동은 동래 정씨와 의령 남씨, 평산 신씨가 600년 가까이 세거한 지역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의령 남씨, 평산 신씨의 집성촌이 해체됐고 동래 정씨 집성촌은 2020년까지 존속했다가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돼 아파트가 개발되면서 곳곳으로 흩어졌다.

망우동은 1968년 망우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계기로 '동부 서울'로 성장했다.

인구수는 1963년 2천325명에서 20년 만에 20배로 늘었고 초·중·고등학교도 11개가 생겨났다.

망우동 주변에는 조선 왕실의 능이 다수 분포했고 사대부의 묘도 많이 조성됐다.

1933년 기존의 공동묘지를 통폐합하면서 늘어나는 묘지 수요에 대응해 망우리묘지(현 망우역사문화공원)가 들어섰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이중섭, 오세창 등 역사적 인물이 안치된 역사성이 인정돼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집성촌에서 5만명 도시로…260년만에 새로 만나는 망우동
천호동 보고서는 서울 동남부 교통의 관문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천호동의 발전과 변화를 면밀하게 정리했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오랜 길목이던 구천면로의 교차점에 형성된 천호 구사거리는 천호동 상권의 옛 중심지다.

1960∼1970년대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는 시외버스터미널과 '천호동 텍사스'(천호동 423 일대)라 불리는 집창촌이 형성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천호동에 있던 시외버스터미널은 1988년 동서울종합터미널의 개장과 함께 문을 닫았고 천호동 텍사스는 뉴타운 사업으로 202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4년 강동구 최초의 백화점인 '유니버스백화점'(현 이마트 천호점)이 문을 연 데 이어 목산백화점(1990), 신세계백화점(1992), 현대백화점(1997)이 차례로 개장해 유통업계의 '대표 브랜드'였던 백화점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1995년 지하철 5호선과 1997년 8호선이 개통하면서 천호동 상권의 무게중심은 구사거리에서 현재의 천호 신사거리 쪽으로 이동했다.

이와 함께 문구·완구, 공구, 자전거, 먹거리, 로데오 총 5대 특화거리가 형성됐다.

두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http://museum.seoul.go.kr)에서 열람할 수 있으며 서울책방(https://store.seoul.go.kr)과 서울역사박물관 기념품점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