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군인에게 마사지 해주며 편히 살았던 자의 거짓말[책마을]
펠릭스 케르스텐(1898~1960)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주도한 나치 전범 하인리히 힘러의 개인 마사지사였다. 티베트와 중국의 마사기 기술을 배운 그는 ‘마법의 손을 가진 남자’란 별명을 가졌다. 만성 위경련으로 고통받던 힘러가 상쾌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왔고, 덕분에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대규모로 죽어 나가는 동안 그는 안락한 삶을 살았다.

전쟁 말기 패색이 짙어지자 케르스텐을 살길을 도모했다. 그는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힘러를 설득해 네덜란드 인구 전체를 동유럽으로 추방하려는 계획을 취소시켰고,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점령지의 수백만명을 굶겨 죽이려 했던 계획도 철회시켰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을 담은 회고록도 종전 후 출간했다.

나치 군인에게 마사지 해주며 편히 살았던 자의 거짓말[책마을]
펠릭스 케르스텐(1898~1960) (사진=글항아리 제공)

진실일까. 훗날 그가 유대인 구출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많은 부분이 과장됐다는 게 드러났다. 나치가 네덜란드인을 동유럽으로 추방한다는 건 아예 계획 자체가 없었다.

아시아 문화를 깊이 탐구해 온 논픽션 작가 이안 부르마는 자신의 신작 <부역자>에서 케르스텐을 비롯해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부역자 세 명의 삶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쟁 시기에 일어나는 부역과 저항의 행위들은 선악이라는 도덕적 서사에 딱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와시마 요시코(1907~1948)는 신해혁명으로 몰락한 청나라의 공주였다. 아버지가 일본인에게 수양딸로 보내면서 일본과 중국을 오가는 삶을 살게 됐다. 이혼 후 중국으로 건너가 일본의 첩자로 활동했다. ‘마지막 황제’ 푸이를 도와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는 데도 참여했다. 일본 관동군의 선전문에서 그는 ‘만주의 잔 다르크’라고 불렸다.

나치 군인에게 마사지 해주며 편히 살았던 자의 거짓말[책마을]
가와시마 요시코(1907~1948) (사진=글항아리 제공)

일본 패전 후 요시코의 화려한 삶도 끝장이 났다. 중국군에 붙잡혀 1947년 10월 5일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수많은 범죄 혐의가 나열됐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허술했다. 책은 그가 나라를 배신한 스파이였지만 동시에 근거 없는 혐의를 뒤집어쓴 희생자이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요시코는 허언증이 있었다. 그의 삶은 당시에도 소설이나 영화로 많이 각색됐는데, 법정은 그런 창작물에 등장한 요시코의 행위를 현실의 범죄 목록에 포함했다.

세 번째 인물은 프리드리히 바인레프(1910~1988)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돈을 받고 유대인을 나치에 팔았다. 문화적 소양이 높고 우월 의식을 가진 그는 자기가 다른 유대인과는 다르다고 여겼다. 그는 대놓고 사기를 쳤다. 독일 고위직과 연줄이 있다고 속였다. 돈을 주면 구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절박한 유대인들로부터 돈만 받고선 나치에 넘겼다. 뻔뻔하게도 해방 후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유대인 몇몇을 구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대부분은 수용소로 보내졌다. 사기 행각은 계속돼 바인레프는 교수이자 영적 지도자로 일군의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살다 1988년 세상을 떠났다.

나치 군인에게 마사지 해주며 편히 살았던 자의 거짓말[책마을]
프리드리히 바인레프(1910~1988) (사진=글항아리 제공)

이 책의 부역자 셋은 진실 속에서 삶을 살지 않았고 허구 속에서 생을 연장했다. 그랬던 이유는 두려움, 오만함 같은 감정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별 이유 없이 그랬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또 역사는 정밀과학이 아니며, 우리는 무엇이 실제로 발생했던 일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 나머지는 전부 해석의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도덕적 선택이 자칫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왔던 시대였지만, 과연 무엇이 도덕적인지는 모든 위협이 사라진 훗날 우리가 믿도록 교육받은 내용처럼 분명하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다만 그의 결론은 다소 위험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는 쉽게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는 자신의 결론을 위해 책에 등장한 부역자들에게 지나친 관대함을 보인다. 그들도 험난한 역사의 기류에 휘말린 피해자였다는 것일까. 책의 메시지에 쉽게 수긍할 수 없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