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기업 총수 판단 지침 행정예고…이의제기 절차 도입
"쿠팡 김범석, 동일인 요건 해당하지만 통상 이슈로 지정 못해"
'부회장'이라도 경영 지배하면 '총수'…동일인 판단 기준 명문화(종합)
공식 직함이 '회장'이 아닌 '부회장'이거나 지분이 가장 많은 주주가 아니더라도 경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 제정안을 내달 20일까지 행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공정위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지정자료 제출 의무 등을 부과한다.

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집단에는 상호출자제한 등 각종 규제가 적용되는데 이때 기업집단, 즉 계열사의 범위를 판단하는 준거점이 동일인이다.

1986년 대기업집단 제도 도입 이후 명시적인 판단 기준 없이 동일인 제도가 운용됐으나 2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늘고 다양한 지배구조의 기업집단이 출현하면서 기준 마련 필요성이 대두됐다.

제정안은 기업집단 ①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②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③ 기업집단의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④ 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 ⑤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 5가지를 동일인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5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일인을 지정한다.

기준에 부합하는 자연인이 없으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

구체적으로 기업집단 최상단 회사의 출자자가 자연인이 아니라 계열사나 경영 참여 목적이 없는 기관투자자일 경우, 직·간접 지분이 자연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일인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대표이사 등 임원의 임면, 조직 변경, 신규 사업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나 업무 집행을 주도하거나, 보고받고 승인하는지로 따진다.

법인 등기에 등재된 직함이 '회장', '이사회 의장' 등이 아니더라도 기업집단 내 상위 직위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최고 직위자로 볼 수 있다.

대표자로 인식되는 자는 회사의 창업주거나 기업집단을 대표해 대외활동을 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런 기준은 공정위가 실무적으로 동일인 지정에 활용해온 판단 근거를 명문화한 것이어서 동일인 지정 결과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는 이런 기준에 따라 2019년 한진그룹 총수로 최다출자자인 사모펀드 KCGI 대신 조원태 현 회장을 지정한 바 있다.

최고 직위, 경영 지배, 대내외 인식 등 ②∼④ 요건을 충족해서다.

2021년에는 네이버를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해달라는 이해진 글로벌 투자 책임자(GIO)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 GIO를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를 제외하면 네이버의 최다출자자이고 경영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등 ①∼④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5개 기준 중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라는 실질 기준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고 나머지 기준은 굉장히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지배구조가 등장하고 있고 동일인 지정 관련 변수가 복잡·다양해져 5가지 기준을 균형 있게 살펴봐야 한다"며 "결정적인 하나의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번 지침을 통해 모호성이 완전히 해소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되고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제정안은 동일인이 사망하거나 의식 불명, 의결권 행사의 포괄 위임 등으로 더 이상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 동일인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업집단이 공정위의 동일인 판단에 이견이 있을 경우 재협의(이의제기)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올해 지정된 82개 공시대상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포함) 중 법인이 동일인인 총수 없는 기업집단은 쿠팡, 포스코, KT, KT&G, 에쓰오일, 한국지엠 등 10개다.

한 위원장은 "(미국 국적의 김범석 쿠팡 의장은) ①, ③, ④ 요건을 충족해 동일인으로 볼 만한 실질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한다"면서도 "통상 마찰 이슈 때문에 자연인을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상 이슈를 최소화하는 (외국인의 동일인 지정 근거 마련)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며 "사익편취 규제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실효적인 규율에 더해 통상 마찰 문제도 생기지 않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나머지 9개 총수 없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자연인이)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라는 중요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②∼④ 부분도 사실상 기업집단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