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 배우 박지영·김우경 출연…2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저는 음성해설 낭독을 맡은 배우 하승연입니다.

이제 곧 공연이 시작됩니다.

"
공연장 입구에서 받은 라디오 수신기를 착용하자 또박또박한 배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내 막이 오르면 음성해설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배우가 사용하는 수어를 자연스러운 말투로 통역하기 시작했다.

22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서 개막한 연극 '우리 읍내'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장애 공연이다.

관객들은 배우들이 수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음성 수신기를 통해 대사를 들을 수 있다.

무대 한쪽에는 청인 배우의 음성 대사를 수어로 전달하는 5명의 통역사가 함께한다.

낯설게 마주하는 일상…수어·음성 해설 연극 '우리읍내'
무대에 오른 배우와 직접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관객에게는 낯선 방식의 공연이다.

수어 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설을 기다려야 하고, 시시각각 등장하는 자막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작품의 서술 방식 또한 일반적인 극과 다르다.

무대 감독을 자처하는 배우는 전지적 시점에서 인물의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고 극에서 빠져나와 관객과 소통한다.

배우도 때때로 극을 벗어나 무대 감독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설정이지만, 작품은 경상북도 울진에 위치한 작은 마을 평해읍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다.

1980년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새마을회장의 딸 현영과 마을 의사의 아들 민규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가족을 꾸리는 과정을 따라간다.

낯설게 마주하는 일상…수어·음성 해설 연극 '우리읍내'
연출을 맡은 임도완은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1938년 작 희곡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원작의 배경인 미국 뉴햄프셔주의 마을은 밤나무와 패랭이꽃이 자라는 정겨운 시골 마을로 탈바꿈했다.

또한 농인 배우 2명을 무대에 올려 원작을 변주했다.

농인 배우로는 최초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후보에 오른 박지영이 현영을, 농인 예술단체 핸드스피크 소속 김우경은 신문 배달부를 각각 연기한다.

임 연출은 "소소한 일상에서 삶을 돌아보게 하는 특별할 것 없는 작품"이라며 "농인이 극 속에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 존재할 수 있게 했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의도를 밝혔다.

관객은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가 호흡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수어로 대사를 주고받을 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간다는 이유로 소동이 벌어지는 일도 없다.

현영과 민규가 팥빙수를 나누어 먹다 수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풋풋함을 느낄 수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멜로디로 "콩껍질이나 벗겨야겠다"며 노래를 부르는 부모님의 모습은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낯설게 마주하는 일상…수어·음성 해설 연극 '우리읍내'
그렇게 두 사람의 행복이 차오르는 순간 무대 감독은 이야기를 멈추고 관객이 현실을 돌아보도록 만든다.

낯설게 여겨지던 수신기와 통역은 극장에서 함께하는 장애인의 존재를 느끼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작품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모두가 일상에서 새롭고 두려운 순간을 마주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위로를 건넨다.

관객은 결혼식을 앞두고 문득 두려움을 느끼는 민규와 현영의 모습, 삶을 되돌아보다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새롭게 깨닫는 현영의 모습에서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은 인생을 소풍에 비유한 천상병의 시 '귀천'을 인용한 주제곡으로 막을 내리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따스함을 남긴다.

공연은 25일까지 계속된다.

낯설게 마주하는 일상…수어·음성 해설 연극 '우리읍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