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죄는 형사사건에만 가능…재판부 "법체계 따른 부득이 결론"
공정위 조사 중 PC 대거 교체…법원 "증거인멸죄 안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던 중 PC 100여대를 바꾸는 등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중공업(옛 현대중공업) 임직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20일 증거인멸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A씨 등 HD현대중공업 임직원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현대중공업의 주된 관심사는 검찰 수사가 아닌 공정위 조사 대비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의 증거 만으로는 피고인들에게 증거인멸의 고의가 명백히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법상 증거인멸죄가 인정되려면 A씨 등에게 HD현대중공업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할 의도가 있었음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들의 행위는 형사 사건이 아닌 공정위 조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어떻게 보면 검찰 수사보다 훨씬 중요한 공정위 조사를 방해했지만 증거인멸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이상 증거인멸죄로 처벌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이는 하도급법상 조사방해행위를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만 보는 법체계에 따른 부득이한 결론"이라고 덧붙였다.

A씨 등은 2018년 7∼8월 하도급법 위반 관련 공정위 직권조사와 파견법 위반 관련 고용노동부 수사에 대비해 증거를 대규모로 인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당시 임직원이 사용하는 PC 102대와 하드디스크 273개를 교체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당시 조사 끝에 HD현대중공업이 2014∼2018년 사내 하도급업체 약 200곳에 선박·해양플랜트 제조작업 4만8천여건을 위탁하며 하도급 대금 감축을 압박하고 계약서를 작업 시작 후에야 발급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2019년 말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조사를 방해한 HD현대중공업 법인에 1억원, 직원에게 2천500만원의 과태료를 별도 부과하면서도 이에 관한 형사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에 2020년 6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데 대해 과태료 처분만 내리면 향후 비슷한 하도급 갑질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HD현대중공업 측은 이날 선고 후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직원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