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9번, 죽음인가?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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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
밤새 바람이 머문 자리
관절염 앓은 노부부
허기진 생의 끝머리에 앉아
가랑잎으로 옷깃을 깁는다
초록 이파리 사이로 훔쳐본 하늘
빛은 먼 곳에서 왔다가
햇살로 산화되어
중중모리 장단으로 너울거리다
뱀 비늘 같은 나뭇잎
아름아름 불질러 놓고
휘모리장단 되어 밀려가자
담장을 기어오르는
놀란 넝쿨장미
일제히 횃불 켜든다
- 김정호 ‘6월의 빛-공원의자에 앉아’ 흔히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은 '죽음과 이별'의 교향곡이라는 별명과 함께 매우 심각하고 어두운 정서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애호가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말러의 이 교향곡을 들은 후에는 그 중압감에 짓눌려 한 동안 음악 자체를 멀리하게 된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전에 말러의 다른 교향곡에 관한 글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그의 교향곡들과 관련하여 작곡가의 심리 분석이니 염세적 세계관이니 운운하면서 작품에 필요 이상으로 칙칙하고 어두운 색을 입히려는 종래의 접근 방법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말러의 이 마지막 교향곡 역시 죽음이라고 하는 주제를 너무 부각시켜 암울한 곡으로 이해되어 왔고 심지어 혹자는 이 곡을 말러의 레퀴엠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하지만 이 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게 칙칙하고 어두운 곡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교향곡을 곡의 분위기와 정서의 측면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우선 조성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말러의 교향곡 9번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과는 달리 (D)장조로 시작하여 (D플랫)장조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이 교향곡에서 죽음과 이별을 노래하였다고들 하는 외부 악장(1악장, 4악장)의 경우도 자세히 보면 반드시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 음악적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죽음에 대한 굴복이나 "세상같은 것은 더러워서 버린다"는 식의 염세적인 정서보다는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삶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담겨 있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음악에 담긴 정서야 수용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만, 이 9번 교향곡은 종래 너무 필요 이상으로 칙칙하고 무거운 곡으로 받아들여온 감이 없지 않기에, 아래에서는 각 악장별로 그 음악적 내용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아래 표시된 시간은 리카르도 샤이의 유튜브 음원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이전의 말러의 교향곡에 관한 글을 통해 말러의 교향곡을 감상할 때는 이를 소나타 등 엄격한 형식에 의해 분석하려고 하기보다는 몇 가지의 핵심적인 음악적 소재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소재들이 어떻게 변주되며 발전되고, 또 어떻게 폴리포닉하게 짜여지고 펼쳐지는지를 곡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이 감상에 더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이 9번 교향곡도 예외는 아닙니다.
소재 A
1악장은 그의 전작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 '작별(Der Abschied)'이 끝난 지점에서 시작합니다(0:00). 우선, 아래와 같이 첼로와 호른이 연주하는 1악장의 시작부터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곡 '작별'의 도입부의 분위기를 닮아 있습니다. 이 소재 A의 리듬을 부정맥 운운하며 말러의 심장병과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궁긍적으로 그의 죽음과 관련을 지으려는 해석이나 시도도 있지만, 이는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인 '작별'에서 그저 어두움이 드리운 밤의 자연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소재였을 뿐입니다. 말러는 9번 교향곡의 1악장에서는 그러한 음악적 소재에 리듬감을 입히는 등 약간의 변형을 주고 있지만, 심장병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오버인 것 같고 그저 아래 소재 B(영원의 동기)가 속한 밝고 푸른 하늘에 대비되는 하나의 음악적 소재로 이해하면 족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소재는 1악장에서 (소나타 양식의 틀에서 본다면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의 시작 지점 등) 중요한 고비마다 등장합니다. 물론 이 소재는 확실히 아래 소재 B와는 달리 어두운 느낌이기는 한데, 이런 점에서는 성격상 음악적 소재 C와 더 가깝고, 실제로 아래 C&A(8:20)에서는 탄식의 소재 C와 결합하기도 합니다.
특히 후반부의 아래 A(20:03)에서는 이 소재가 “Mit höchster Gewalt(엄청난 위력으로)"라는 지시와 함께 fff로 등장하여 다른 소재들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곡의 분위기를 무거운 장례 행렬처럼("Wie ein schwerer Kondukt") 상당히 심각하게 몰아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러는 깊은 울림을 가진 종소리를 깜짝 등장시켜 아래 소재 B의 근간이 되는 4음 동기의 리듬을 연주하게 합니다).
3 tiefe Glocken
그러나 이러한 어두운 소재는 곧 사라지고 소재 B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꽃과 새소리로 가득찬 봄의 모습으로 1악장은 마무리됩니다.
소재 B
1악장의 도입부에서 위의 소재 A에 이어지는 소재 B는 세부적으로 크게 아래와 같은 몇 가지의 음악적 소재들로 구성됩니다. 우선, 하프가 아래와 같은 음형으로 연주하는 매우 동양적인 가락의 4음 동기인데, 이는 1악장의 근간을 이루는 리듬으로 작용합니다. 이에는 (가야금의 농현을 모방하는 듯도 하고 또 봄에 피어나는 아지랭이를 상징하는 듯도 한) 현의 트레몰로가 동반되는데, 이들 역시 모두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 '작별'에서 묘사된 동양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위와 같은 음형들의 울림 위로 (손을 벨에 넣는 스톱 주법에 의해 마치 저멀리서 들리는 듯) 호른이 울리는데, 이는 곧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2도 하행의 동기로 이어집니다(0:33). 이러한 호른의 울림과 이어지는 2도 하행의 음악적 동기들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그 뿌리는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2도 하행의 동기가 이어지는데,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의 기본 동기를 닮았다고 해서) 흔히 이별의 동
기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 '작별'의 마지막 노래인 '영원히(Ewig)'라는 가사의 선율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 동기는 1악장의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소재인데, 이 역시 흔히 이별의 동기라고 하여 마치 죽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의 제목이 '작별'인데다가 그것이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의 기본 동기와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대지의 노래>의 '작별'에서 이 동기가 등장하는 맥락을 보면 이를 꼭 죽음이나 이별과 연관시킬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곡의 마지막에 사용된 이 동기는 봄이 되면 꽃이 만발한 대지 위로 펼쳐지는 영원히(Ewig)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가사의 선율로 사용된 것일 뿐 결코 죽음이나 이별 그 자체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별(송별)
Ich suche Ruhe für mein einsam Herz.
나는 내 외로운 마음을 위해 평안을 찾으리
Ich wandle nach der Heimat, meiner Stätte.
나는 고향, 내 쉴 곳을 찾아가리
Ich werde niemals in die Fremde schweifen.
나는 다시는 낮선 곳을 헤메지 않으리
Still ist mein Herz und harret seiner Stunde!
내 마음은 고요히 그 시간을 기다리네
Die liebe Erde allüberall
사랑스런 대지 어디에나
Blüht auf im Lenz und grünt
봄에는 꽃 피고 푸르러지네
Aufs neu! Allüberall und ewig
새로이! 어디에나 그리고 영원히
Blauen licht die Fernen!
저 멀리 파아란 빛이
Ewig… ewig…
영원히. . .영원히. . .
말러 <대지의 노래> '작별' 중에서
그런 점에서 이 음악적 소재를 '이별의 동기'라고 부르기보다는 '영원의 동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말러는 1악장 도입부에서 곧 이 동기를 확장, 발전시켜 그로부터 너무나도 아름다운 선율을 뽑아냅니다. 뿐만 아니라 1악장의 후반부의 아래 C(24:00) - C&B(26:35) - B(28:39)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각양 솔로 악기들이 이 소재 B를 마치 새소리처럼 노래하면서 (거칠게 한탄하며 요동치는) 소재 C를 잠잠하게 달랩니다.
소재 C
1악장 도입부에서는 위와 같이 소재 B의 여러 동기들이 서로 섞이면서 고양된 후 아래와 같이 붓점 리듬과 악센트에 의한 새로운 음악적 소재 C가 등장하는데(3:09), 흘러가버린 젊은 시절과 사랑에 대한탄식과 아쉬움마저도 느껴지는 이 소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재 B(영원의 동기)에서 파생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재 C는 1악장에서 봄과 영원의 소재 B와 긴장관계를 이루며 전개되는 매우 중요한 소재인데, 주목할 점은 1악장의 마지막 C&B(26:35) 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러한 탄식과 아쉬움의 동기마저도 소재 B(영원의 동기)에 동화되어 녹아든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1악장은 위와 같은 다양한 음악적 동기들이 대조와 긴장 관계 속에서 다양한 악기들에 의해 다채롭게 표현되며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실내악처럼 전개되는데, 큰 틀에서 보면 이 모든 소재들이 봄과 생명을 상징하는 영원의 동기에 모두 녹아들면서 곡이 마무리됩니다.
이처럼 곡의 전반적인 구조과 흐름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1악장의 정서를 지나치게 죽음과 이별에 방점을 찍고 이해하려는 종래의 접근 방법은 재고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A-B(0:00) - C(3:09) - B(3:45) - C(6:02) - A&B&C(7:20) - B(8:40) - C(11:13) - B&C(12:03) - C(14:35) - C&B(15:32) - B(17:38) - C(18:21) - A(20:03)- B&C(20:12) - B(22:11) - C(24:00) - C&B(26:35) - B(28:39)
2악장은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3박자의 랜틀러 악장인데, 다음과 같은 음악적 소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재 A
우선 처음에 아래와 같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대조적인 느낌의 춤곡이 등장합니다(0:00). 이는 악보에 기재된 Etwas tappish und sehr derb(좀 서투르고 매우 거칠게)라는 지시어의 내용과 이어지는 호른의 트릴 등에서도 손쉽게 간파할 수 있듯이 전형적인 랜틀러 춤곡에서는 많이 왜곡된 것입니다.
소재 B
소재 A의 랜틀러 리듬은 곧 왈츠 형태로 변형되며 이어집니다(2:53). 이 왈츠는 처음에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지만 세련되고 우아한 전형적인 왈츠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며 이 또한 점점 더 왜곡되며 처음의 형태를 몰라볼 정도로 변주됩니다.
소재 C
이처럼 소재 A와 B가 A - B - A 순서로 등장한 후 특이하게도 아래와 같이 1악장의 영원의 동기가 이어지면서(5:20) 왜곡된 랜틀러의 리듬인 소재 A와 겹쳐지자 서서히 소재 A가 좀 더 차분하게 그와 동화됩니다. 말러는 이처럼 2악장의 중간에 1악장의 핵심 소재를 차용하고, (뒤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3악장의 중간에는 4악장의 핵심 소재를 미리 등장시킴으로써 전체 악장간의 균형과 유기적 통일감을 증대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2악장은 이러한 음악적 소재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후반부(15:12)에 어느 정도 정돈되는 분위기가 조성된 후 소재들이 서로 점점 융합되어 가면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피콜로와 콘트라바순이 다소 시니컬한 표정으로 가세하여 곡을 마무리합니다.
A(0:00) - B(2:53) - A(4:23) - C(5:20) - B(7:13) - C(8:38) - A(10:21) - B(11:29) - A(13:41)
발터 리허설 (1악장, 2악장)
유머라는 뜻의 Burleske라는 지시어가 붙은 3악장에서 말러는 자신의 화려한 음악 작곡 기술을 자랑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필 악보에 말러는 음악의 낭만적, 감성적 측면보다는 이론적, 형식적 측면을 상징하는 니체의 용어에 따라 '아폴론의 형제에게'라고 기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재 A
3악장은 아래와 같은 기괴하면서도 시니컬한 트럼펫의 울림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현악기에 의해 울리는 아래와 같은 동기는 말러의 교향곡 5번의 2악장의 핵심 동기에서 차용하여 왔습니다. 사실 말러는 (대지의 노래 마지막 악장의 동기를 차용한) 1악장 도입부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9번 교향곡 곳곳에 이전 교향곡이나 작품에서 사용된 주제를 다수 차용하고 있습니다. 말러는 곧 이러한 소재들을 기초로 푸가토를 전개하는데, 그 사이 사이에 좀 더 여류롭고 목가적인 에피소드가 간헐적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소재 B
푸가토와 함께 매우 빠른 템포로 광란의 질주를 하던 음악은 곧 이어질 4악장의 핵심 주제가 등장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앞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말러는 2악장의 중간에 1악장의 핵심 소재를 차용한 것처럼, 이렇게 3악장의 중간에 4악장의 핵심 소재를 미리 등장시킴으로써 전체 악장간의 균형과 유기적 통일감을 증대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요한 순간도 잠깐 소재 A의 등장과 함께 B는 조롱당하듯 변형되고 다시 곡은 대위법에 의한 광란의 질주로 돌아와 마지막 코다에서는 모든 소재들이 동시에 울린 후 갑작스럽게 3악장은 마무리됩니다.
A(0:00) - 푸가토(0:45) - 에피소드(1:50) - 푸가토(3:03) - 에피소드&푸가토(4:27) - B(5:56) - A&B(9:42) - 푸가토(11:33) - 코다(13:10)
말러는 이 9번 교향곡을 통해 마치 자신의 지금까지의 음악을 총정리하려는 듯 각 악장별로 자신의 다른 음악에서 사용하였던 동기들을 다수 채용하고 있음은 위에서 설명 드렸습니다만, 이 마지막 4악장 역시 음악적 분위기는 그의 교향곡 3번의 마지막 6악장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말러가 이 4악장의 서두에 기재한 'zurückhaltend(신중하게 또는 유보적인)'이라는 지시어처럼 4악장은 크게 음정 도약을 하는 현악기의 다소 무겁고 조심스런 선율로 3악장에서 잠시 등장하였던 4음 동기를 제시한 후 아래와 같이 (마치 찬송가의 선율과도 같은 거룩한 느낌의) 핵심 주제를 제시합니다. 4악장은 간헐적으로 에피소드가 개입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주제와 (3악장의 중간에 잠시 등장하였던 소재 B의) 4음 동기에 기반한 변주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이 주제는 처음에는 찬송가와 같이 제시되었지만 전개되는 과정에서 처절하리만큼 간절한 심정을 분출하는데, 특히 초반에 바수운의 솔로에 이어 갑자기 위로 치고 올라오며 비상하는 부분이나(1:47), 그 후 역시 꾸밈음이 있는 현에 의해 아래로 향하며 토로하는 부분(4:00) 등 말러의 다른 음악에서도 쉽게 찾아 보기 어려운 매우 진한 감정 표현으로 듣는 이들의 영혼을 송두리채 뒤흔들어 놓습니다. 현악기를 중심으로 신중하게(zurückhaltend) 표출되던 내면의 진한 감정 표현은 중반에 이르러 좀 더 자유롭게 끓어 오르며 정점에 도달하고 (17:03, 여기서도 어두운 탐탐과 같은 악기가 아니라 찬란한 트럼펫과 심벌즈와 같은 악기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후 제7변주를 기점으로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온 후 마지막 코다에 접어듭니다.
매우 조용하고 느리게 연주되는 코다에는 말러가 ersterbend(소멸하듯이)라는 표시를 부기하고 있고, 특히 마지막에는 제1바이올린이 그의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4번곡의 아래 선율을 인용하여 연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제4곡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떤 지휘자들은 이 부분을 죽음과 연관시키고 마치 말러가 죽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인 것처럼 극도로 과장되게 (그리고 단 두페이지에 불과한 악보를 거의 8분에 걸쳐 극한적으로 느리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바도와 같은 지휘자는 이 곡을 연주할 때 무대 위의 불을 하나씩 점점 꺼가는 식의 연출을 가미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바도 4악장 코다
그러나, (물론 이 9번 교향곡의 코다는 어떤 방식으로 연주를 하더라도 정말 감동적입니다만)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이 코다 부분은 물론 9번 교향곡 전체를 굳이 죽음과 결부시켜 그 음악에 필요 이상의 무겁고 칙칙한 색을 입히는 것에는 의문이 따릅니다.
단적으로, 코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위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제4곡에 사용된 해당 음형은 Der Tag ist schön auf jenen Höh’n(그쪽 언덕 넘어는 날이 화창해)라는 가사를 묘사하는 것으로, 결코 어두운 죽음의 세계를 묘사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Adagissimo 부분을 너무 과장하여 침체된 느낌으로 지나치게 느리게 연주하면(아래 샤이 연주 참조) 예를 들어 아래 악보에서처럼 "그쪽 언덕 넘어는 날이 화창해"의 선율의 도입 부분의 상승 포르타멘토(아래 길렌 연주 참조)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길렌
샤이
물론 음악에 담긴 정서야 수용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만, 저로서는 말러가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의 코다에서 위와 같은 음악적 소재를 차용하면서까지 담고자 했던 것은 결코 죽음과 같은 어두운 정서가 아니라 오히려 (허기진 생의 끝머리에 앉아. . .초록 이파리 사이로 훔쳐본 하늘과도 같이) 충분히 살아볼 가치가 있는 우리 인생에 대한 따스한 긍정으로부터 얻어지는 고요한 내면의 평화와 위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제(0:00) - 에피소드(1:47) - 1변주(2:47) - 에피소드(4:29) - 2변주(7:09) - 경과구(8:20) - 3변주(9:34) - 4변주(10:15) - 주제(11:05) - 에피소드(13:33) - 경과구(15:48) - 5변주(17:52) - 6변주(18:40) - 경과구(19:19) - 7변주(20:12) - 코다(21:25)
정명훈
클렘페러
번스타인
장한나
발터
불레즈
노링턴
관절염 앓은 노부부
허기진 생의 끝머리에 앉아
가랑잎으로 옷깃을 깁는다
초록 이파리 사이로 훔쳐본 하늘
빛은 먼 곳에서 왔다가
햇살로 산화되어
중중모리 장단으로 너울거리다
뱀 비늘 같은 나뭇잎
아름아름 불질러 놓고
휘모리장단 되어 밀려가자
담장을 기어오르는
놀란 넝쿨장미
일제히 횃불 켜든다
- 김정호 ‘6월의 빛-공원의자에 앉아’ 흔히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은 '죽음과 이별'의 교향곡이라는 별명과 함께 매우 심각하고 어두운 정서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애호가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말러의 이 교향곡을 들은 후에는 그 중압감에 짓눌려 한 동안 음악 자체를 멀리하게 된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전에 말러의 다른 교향곡에 관한 글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그의 교향곡들과 관련하여 작곡가의 심리 분석이니 염세적 세계관이니 운운하면서 작품에 필요 이상으로 칙칙하고 어두운 색을 입히려는 종래의 접근 방법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말러의 이 마지막 교향곡 역시 죽음이라고 하는 주제를 너무 부각시켜 암울한 곡으로 이해되어 왔고 심지어 혹자는 이 곡을 말러의 레퀴엠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하지만 이 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게 칙칙하고 어두운 곡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교향곡을 곡의 분위기와 정서의 측면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우선 조성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말러의 교향곡 9번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과는 달리 (D)장조로 시작하여 (D플랫)장조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이 교향곡에서 죽음과 이별을 노래하였다고들 하는 외부 악장(1악장, 4악장)의 경우도 자세히 보면 반드시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 음악적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죽음에 대한 굴복이나 "세상같은 것은 더러워서 버린다"는 식의 염세적인 정서보다는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삶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담겨 있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음악에 담긴 정서야 수용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만, 이 9번 교향곡은 종래 너무 필요 이상으로 칙칙하고 무거운 곡으로 받아들여온 감이 없지 않기에, 아래에서는 각 악장별로 그 음악적 내용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아래 표시된 시간은 리카르도 샤이의 유튜브 음원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1악장 Andante comodo
샤이 (1악장)이전의 말러의 교향곡에 관한 글을 통해 말러의 교향곡을 감상할 때는 이를 소나타 등 엄격한 형식에 의해 분석하려고 하기보다는 몇 가지의 핵심적인 음악적 소재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소재들이 어떻게 변주되며 발전되고, 또 어떻게 폴리포닉하게 짜여지고 펼쳐지는지를 곡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이 감상에 더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이 9번 교향곡도 예외는 아닙니다.
소재 A
1악장은 그의 전작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 '작별(Der Abschied)'이 끝난 지점에서 시작합니다(0:00). 우선, 아래와 같이 첼로와 호른이 연주하는 1악장의 시작부터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곡 '작별'의 도입부의 분위기를 닮아 있습니다. 이 소재 A의 리듬을 부정맥 운운하며 말러의 심장병과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궁긍적으로 그의 죽음과 관련을 지으려는 해석이나 시도도 있지만, 이는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인 '작별'에서 그저 어두움이 드리운 밤의 자연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소재였을 뿐입니다. 말러는 9번 교향곡의 1악장에서는 그러한 음악적 소재에 리듬감을 입히는 등 약간의 변형을 주고 있지만, 심장병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오버인 것 같고 그저 아래 소재 B(영원의 동기)가 속한 밝고 푸른 하늘에 대비되는 하나의 음악적 소재로 이해하면 족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소재는 1악장에서 (소나타 양식의 틀에서 본다면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의 시작 지점 등) 중요한 고비마다 등장합니다. 물론 이 소재는 확실히 아래 소재 B와는 달리 어두운 느낌이기는 한데, 이런 점에서는 성격상 음악적 소재 C와 더 가깝고, 실제로 아래 C&A(8:20)에서는 탄식의 소재 C와 결합하기도 합니다.
특히 후반부의 아래 A(20:03)에서는 이 소재가 “Mit höchster Gewalt(엄청난 위력으로)"라는 지시와 함께 fff로 등장하여 다른 소재들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곡의 분위기를 무거운 장례 행렬처럼("Wie ein schwerer Kondukt") 상당히 심각하게 몰아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러는 깊은 울림을 가진 종소리를 깜짝 등장시켜 아래 소재 B의 근간이 되는 4음 동기의 리듬을 연주하게 합니다).
3 tiefe Glocken
그러나 이러한 어두운 소재는 곧 사라지고 소재 B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꽃과 새소리로 가득찬 봄의 모습으로 1악장은 마무리됩니다.
소재 B
1악장의 도입부에서 위의 소재 A에 이어지는 소재 B는 세부적으로 크게 아래와 같은 몇 가지의 음악적 소재들로 구성됩니다. 우선, 하프가 아래와 같은 음형으로 연주하는 매우 동양적인 가락의 4음 동기인데, 이는 1악장의 근간을 이루는 리듬으로 작용합니다. 이에는 (가야금의 농현을 모방하는 듯도 하고 또 봄에 피어나는 아지랭이를 상징하는 듯도 한) 현의 트레몰로가 동반되는데, 이들 역시 모두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 '작별'에서 묘사된 동양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위와 같은 음형들의 울림 위로 (손을 벨에 넣는 스톱 주법에 의해 마치 저멀리서 들리는 듯) 호른이 울리는데, 이는 곧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2도 하행의 동기로 이어집니다(0:33). 이러한 호른의 울림과 이어지는 2도 하행의 음악적 동기들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그 뿌리는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2도 하행의 동기가 이어지는데,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의 기본 동기를 닮았다고 해서) 흔히 이별의 동
기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 '작별'의 마지막 노래인 '영원히(Ewig)'라는 가사의 선율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 동기는 1악장의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소재인데, 이 역시 흔히 이별의 동기라고 하여 마치 죽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곡의 제목이 '작별'인데다가 그것이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의 기본 동기와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대지의 노래>의 '작별'에서 이 동기가 등장하는 맥락을 보면 이를 꼭 죽음이나 이별과 연관시킬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곡의 마지막에 사용된 이 동기는 봄이 되면 꽃이 만발한 대지 위로 펼쳐지는 영원히(Ewig)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가사의 선율로 사용된 것일 뿐 결코 죽음이나 이별 그 자체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별(송별)
Ich suche Ruhe für mein einsam Herz.
나는 내 외로운 마음을 위해 평안을 찾으리
Ich wandle nach der Heimat, meiner Stätte.
나는 고향, 내 쉴 곳을 찾아가리
Ich werde niemals in die Fremde schweifen.
나는 다시는 낮선 곳을 헤메지 않으리
Still ist mein Herz und harret seiner Stunde!
내 마음은 고요히 그 시간을 기다리네
Die liebe Erde allüberall
사랑스런 대지 어디에나
Blüht auf im Lenz und grünt
봄에는 꽃 피고 푸르러지네
Aufs neu! Allüberall und ewig
새로이! 어디에나 그리고 영원히
Blauen licht die Fernen!
저 멀리 파아란 빛이
Ewig… ewig…
영원히. . .영원히. . .
말러 <대지의 노래> '작별' 중에서
그런 점에서 이 음악적 소재를 '이별의 동기'라고 부르기보다는 '영원의 동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말러는 1악장 도입부에서 곧 이 동기를 확장, 발전시켜 그로부터 너무나도 아름다운 선율을 뽑아냅니다. 뿐만 아니라 1악장의 후반부의 아래 C(24:00) - C&B(26:35) - B(28:39)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각양 솔로 악기들이 이 소재 B를 마치 새소리처럼 노래하면서 (거칠게 한탄하며 요동치는) 소재 C를 잠잠하게 달랩니다.
소재 C
1악장 도입부에서는 위와 같이 소재 B의 여러 동기들이 서로 섞이면서 고양된 후 아래와 같이 붓점 리듬과 악센트에 의한 새로운 음악적 소재 C가 등장하는데(3:09), 흘러가버린 젊은 시절과 사랑에 대한탄식과 아쉬움마저도 느껴지는 이 소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재 B(영원의 동기)에서 파생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재 C는 1악장에서 봄과 영원의 소재 B와 긴장관계를 이루며 전개되는 매우 중요한 소재인데, 주목할 점은 1악장의 마지막 C&B(26:35) 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러한 탄식과 아쉬움의 동기마저도 소재 B(영원의 동기)에 동화되어 녹아든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1악장은 위와 같은 다양한 음악적 동기들이 대조와 긴장 관계 속에서 다양한 악기들에 의해 다채롭게 표현되며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실내악처럼 전개되는데, 큰 틀에서 보면 이 모든 소재들이 봄과 생명을 상징하는 영원의 동기에 모두 녹아들면서 곡이 마무리됩니다.
이처럼 곡의 전반적인 구조과 흐름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1악장의 정서를 지나치게 죽음과 이별에 방점을 찍고 이해하려는 종래의 접근 방법은 재고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A-B(0:00) - C(3:09) - B(3:45) - C(6:02) - A&B&C(7:20) - B(8:40) - C(11:13) - B&C(12:03) - C(14:35) - C&B(15:32) - B(17:38) - C(18:21) - A(20:03)- B&C(20:12) - B(22:11) - C(24:00) - C&B(26:35) - B(28:39)
2악장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Etwas täppisch und sehr derb
샤이 (2악장)2악장은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3박자의 랜틀러 악장인데, 다음과 같은 음악적 소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재 A
우선 처음에 아래와 같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대조적인 느낌의 춤곡이 등장합니다(0:00). 이는 악보에 기재된 Etwas tappish und sehr derb(좀 서투르고 매우 거칠게)라는 지시어의 내용과 이어지는 호른의 트릴 등에서도 손쉽게 간파할 수 있듯이 전형적인 랜틀러 춤곡에서는 많이 왜곡된 것입니다.
소재 B
소재 A의 랜틀러 리듬은 곧 왈츠 형태로 변형되며 이어집니다(2:53). 이 왈츠는 처음에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지만 세련되고 우아한 전형적인 왈츠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며 이 또한 점점 더 왜곡되며 처음의 형태를 몰라볼 정도로 변주됩니다.
소재 C
이처럼 소재 A와 B가 A - B - A 순서로 등장한 후 특이하게도 아래와 같이 1악장의 영원의 동기가 이어지면서(5:20) 왜곡된 랜틀러의 리듬인 소재 A와 겹쳐지자 서서히 소재 A가 좀 더 차분하게 그와 동화됩니다. 말러는 이처럼 2악장의 중간에 1악장의 핵심 소재를 차용하고, (뒤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3악장의 중간에는 4악장의 핵심 소재를 미리 등장시킴으로써 전체 악장간의 균형과 유기적 통일감을 증대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2악장은 이러한 음악적 소재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후반부(15:12)에 어느 정도 정돈되는 분위기가 조성된 후 소재들이 서로 점점 융합되어 가면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피콜로와 콘트라바순이 다소 시니컬한 표정으로 가세하여 곡을 마무리합니다.
A(0:00) - B(2:53) - A(4:23) - C(5:20) - B(7:13) - C(8:38) - A(10:21) - B(11:29) - A(13:41)
발터 리허설 (1악장, 2악장)
3악장 Rondo-Burleske: Allegro assai. Sehr trotzig
샤이 (3악장)유머라는 뜻의 Burleske라는 지시어가 붙은 3악장에서 말러는 자신의 화려한 음악 작곡 기술을 자랑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필 악보에 말러는 음악의 낭만적, 감성적 측면보다는 이론적, 형식적 측면을 상징하는 니체의 용어에 따라 '아폴론의 형제에게'라고 기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재 A
3악장은 아래와 같은 기괴하면서도 시니컬한 트럼펫의 울림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현악기에 의해 울리는 아래와 같은 동기는 말러의 교향곡 5번의 2악장의 핵심 동기에서 차용하여 왔습니다. 사실 말러는 (대지의 노래 마지막 악장의 동기를 차용한) 1악장 도입부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9번 교향곡 곳곳에 이전 교향곡이나 작품에서 사용된 주제를 다수 차용하고 있습니다. 말러는 곧 이러한 소재들을 기초로 푸가토를 전개하는데, 그 사이 사이에 좀 더 여류롭고 목가적인 에피소드가 간헐적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소재 B
푸가토와 함께 매우 빠른 템포로 광란의 질주를 하던 음악은 곧 이어질 4악장의 핵심 주제가 등장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앞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말러는 2악장의 중간에 1악장의 핵심 소재를 차용한 것처럼, 이렇게 3악장의 중간에 4악장의 핵심 소재를 미리 등장시킴으로써 전체 악장간의 균형과 유기적 통일감을 증대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요한 순간도 잠깐 소재 A의 등장과 함께 B는 조롱당하듯 변형되고 다시 곡은 대위법에 의한 광란의 질주로 돌아와 마지막 코다에서는 모든 소재들이 동시에 울린 후 갑작스럽게 3악장은 마무리됩니다.
A(0:00) - 푸가토(0:45) - 에피소드(1:50) - 푸가토(3:03) - 에피소드&푸가토(4:27) - B(5:56) - A&B(9:42) - 푸가토(11:33) - 코다(13:10)
4악장 Adagio. Sehr langsam und noch zurückhaltend
샤이(4악장)말러는 이 9번 교향곡을 통해 마치 자신의 지금까지의 음악을 총정리하려는 듯 각 악장별로 자신의 다른 음악에서 사용하였던 동기들을 다수 채용하고 있음은 위에서 설명 드렸습니다만, 이 마지막 4악장 역시 음악적 분위기는 그의 교향곡 3번의 마지막 6악장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말러가 이 4악장의 서두에 기재한 'zurückhaltend(신중하게 또는 유보적인)'이라는 지시어처럼 4악장은 크게 음정 도약을 하는 현악기의 다소 무겁고 조심스런 선율로 3악장에서 잠시 등장하였던 4음 동기를 제시한 후 아래와 같이 (마치 찬송가의 선율과도 같은 거룩한 느낌의) 핵심 주제를 제시합니다. 4악장은 간헐적으로 에피소드가 개입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주제와 (3악장의 중간에 잠시 등장하였던 소재 B의) 4음 동기에 기반한 변주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이 주제는 처음에는 찬송가와 같이 제시되었지만 전개되는 과정에서 처절하리만큼 간절한 심정을 분출하는데, 특히 초반에 바수운의 솔로에 이어 갑자기 위로 치고 올라오며 비상하는 부분이나(1:47), 그 후 역시 꾸밈음이 있는 현에 의해 아래로 향하며 토로하는 부분(4:00) 등 말러의 다른 음악에서도 쉽게 찾아 보기 어려운 매우 진한 감정 표현으로 듣는 이들의 영혼을 송두리채 뒤흔들어 놓습니다. 현악기를 중심으로 신중하게(zurückhaltend) 표출되던 내면의 진한 감정 표현은 중반에 이르러 좀 더 자유롭게 끓어 오르며 정점에 도달하고 (17:03, 여기서도 어두운 탐탐과 같은 악기가 아니라 찬란한 트럼펫과 심벌즈와 같은 악기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후 제7변주를 기점으로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온 후 마지막 코다에 접어듭니다.
매우 조용하고 느리게 연주되는 코다에는 말러가 ersterbend(소멸하듯이)라는 표시를 부기하고 있고, 특히 마지막에는 제1바이올린이 그의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4번곡의 아래 선율을 인용하여 연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제4곡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떤 지휘자들은 이 부분을 죽음과 연관시키고 마치 말러가 죽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인 것처럼 극도로 과장되게 (그리고 단 두페이지에 불과한 악보를 거의 8분에 걸쳐 극한적으로 느리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바도와 같은 지휘자는 이 곡을 연주할 때 무대 위의 불을 하나씩 점점 꺼가는 식의 연출을 가미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바도 4악장 코다
그러나, (물론 이 9번 교향곡의 코다는 어떤 방식으로 연주를 하더라도 정말 감동적입니다만)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이 코다 부분은 물론 9번 교향곡 전체를 굳이 죽음과 결부시켜 그 음악에 필요 이상의 무겁고 칙칙한 색을 입히는 것에는 의문이 따릅니다.
단적으로, 코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위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제4곡에 사용된 해당 음형은 Der Tag ist schön auf jenen Höh’n(그쪽 언덕 넘어는 날이 화창해)라는 가사를 묘사하는 것으로, 결코 어두운 죽음의 세계를 묘사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Adagissimo 부분을 너무 과장하여 침체된 느낌으로 지나치게 느리게 연주하면(아래 샤이 연주 참조) 예를 들어 아래 악보에서처럼 "그쪽 언덕 넘어는 날이 화창해"의 선율의 도입 부분의 상승 포르타멘토(아래 길렌 연주 참조)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길렌
샤이
물론 음악에 담긴 정서야 수용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만, 저로서는 말러가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의 코다에서 위와 같은 음악적 소재를 차용하면서까지 담고자 했던 것은 결코 죽음과 같은 어두운 정서가 아니라 오히려 (허기진 생의 끝머리에 앉아. . .초록 이파리 사이로 훔쳐본 하늘과도 같이) 충분히 살아볼 가치가 있는 우리 인생에 대한 따스한 긍정으로부터 얻어지는 고요한 내면의 평화와 위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제(0:00) - 에피소드(1:47) - 1변주(2:47) - 에피소드(4:29) - 2변주(7:09) - 경과구(8:20) - 3변주(9:34) - 4변주(10:15) - 주제(11:05) - 에피소드(13:33) - 경과구(15:48) - 5변주(17:52) - 6변주(18:40) - 경과구(19:19) - 7변주(20:12) - 코다(21:25)
정명훈
클렘페러
번스타인
장한나
발터
불레즈
노링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