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밀적용 광범위…공직자 관리소홀 자체는 흔한 일
"사법처리 기준은 기밀 수준·반출 목적·발각 후 대응"
트럼프 난처…핵기밀까지 반출해 지인들에 뽐내고 수사방해
트럼프 기밀반출 '마녀사냥' 맞나…바이든·힐러리·펜스와 달라
국가기밀 불법 반출 혐의로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번 기소가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기밀 관리와 관련해 논란에 휩싸인 적 있지만 기소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그가 내세우는 마녀사냥의 증거 중 하나다.

하지만 기밀문서 유출 사건에서 쟁점은 관리 소홀 그 자체보다는 이에 대한 사후 대응 방식에 있다는 게 미국 기밀수사 관행을 잘 아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5일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등에 따르면 우선 미국에서 공직자가 실수로든 고의로든 두지 말아야 할 곳에 기밀 문건을 보관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미국에서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공개된 내용까지 기밀로 분류되는 등 기밀 정보의 범위가 매우 넓은 데다 기밀 해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기밀 과다 분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미국 사법당국도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해 1급 비밀에 해당하는 국가기밀을 불법 소지한 사람이 문서 반환을 거부하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문서를 공공연한 장소에 보관해 타인과 공유했을 때만 기소 처분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럼프 기밀반출 '마녀사냥' 맞나…바이든·힐러리·펜스와 달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문제는 사법처리의 모든 기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그는 앞서 플로리다주(州) 저택 마러라고에서 불법 반출된 기밀문서가 발견됐을 때 이를 당국에 즉시 넘기지 않았다.

국립기록원이 모든 문건을 반환하라고 수개월간 요구했으나 지난해 1월 기밀문건 197건이 담긴 상자 15개만 돌려줬고, 대배심원의 반환 요구가 잇따르자 그제야 5개월 뒤 38건을 더 제출했다.

이후 연방수사국(FBI)이 마러라고를 압수수색해 102건을 더 추가 회수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개인 사무실에서 발견된 부통령 시절 기밀문서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이를 국립기록원에 인도하는 것을 거부한 적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1월 인디애나주 자택에서 기밀문서가 발견된 펜스 전 부통령도, 2009∼2013년 재임 시절 개인 서버에 업무용 이메일을 보관했던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수사 당시 국립기록원, 법무부 등 기관에 전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기밀 문건 보유 사실을 숨기려고 하거나 변호인에게 문건을 파괴할 것을 제안하는 등 관련 수사를 방해하려 한 혐의도 받는다.

앞서 그는 변호인과 대화에서 "그냥 여기 아무 것도 없다고 (대배심원에)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말한 사실 등이 확인된 바 있다.

아울러 그는 기밀 문건이 담긴 상자를 저택 무도회장, 화장실, 사무실, 창고 등 수백 명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보관했다.

기소장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문서를 보관한 창고는 외부 출입구 여러 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으며 해당 출입구가 무방비로 열려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 기밀반출 '마녀사냥' 맞나…바이든·힐러리·펜스와 달라
기밀 취급 인가가 없는 사람에게 기밀문건을 보여주거나 그 내용을 말해주는 일도 있었다.

공유 대상에는 마러라고 저택을 방문한 작가 등이 포함됐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이란 포르도에 있는 핵 시설 폭격 계획 관련 내용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기밀문서를 보여줬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이는 모두 펜스 전 부통령,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저지른 적 없는 행위다.

이 같은 사항을 모두 고려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 건 오히려 그에 대한 특별대우가 됐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그가 만약 바이든 대통령, 펜스 전 부통령, 클린턴 전 국무장관처럼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기밀문건을 즉시 반환했다면 기소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적 수사'의 표적이 됐다는 주장은 여전히 흔히 들어볼 수 있다.

현재 공화당 유권자 가운데 81%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번 기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전했다.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에서 전체 미국인으로 풀을 넓혀도 미국인의 50%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양당정치를 하는 미국이 서로 상대를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이념적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더타임스는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