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까지 흠뻑 젖었다…모든 걸 쏟아낸 김도현의 100분
가진 걸 다 쏟아낸 피아니스트의 얼굴과 머리카락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100분. 왜 세계가 그를 '미래가 기대되는 신성(新星)'으로 꼽는지 확인하는 데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김도현의 리사이틀은 한마디로 뜨거웠다.

오후 8시가 조금 지나서야 김도현은 터벅터벅 무대를 걸어 나왔다. 이어 건반 위에 손을 떨어뜨린 그는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 가곡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첫 곡은 ‘리타나이(위령기도)’. 김도현은 마치 건반을 스치듯 가볍게 손가락을 굴리면서 따뜻하면서도 애달픈 선율의 맛을 섬세하게 살려냈다. 제한된 음량에서 묘한 색채를 뽑아내는 그의 연주는 모든 영혼을 기리고자 한 슈베르트의 마음을 그대로 꺼내놓은 듯했다.

슈베르트의 명작 '마왕'에서는 김도현의 폭넓은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급박한 말발굽 소리를 묘사하기 위해 건조한 음색과 거친 타건으로 불안감을 유발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부드러운 터치와 감미로운 음색으로 마왕의 음성을 속삭이는 듯한 연주는 청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다음 곡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슈베르트 기악곡 중 가장 혁신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김도현은 시작부터 정제된 음색과 단단한 타건으로 역동적이면서도 활기 넘치는 작품의 매력을 펼쳐냈다. 절정으로 향할 때는 물리적인 힘을 가해 소리를 키우는 것이 아닌 건반에 무게감을 겹겹이 쌓아가면서 소리의 두께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슈베르트 특유의 시적인 정취와 입체감이 살아났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주 구간에서도 음악적 흐름은 놓치는 법이 없었다. 피아노 한 대로 만들어내는 거대한 음향은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다.

그 뒤로 라벨이 알루아시위스 베르트랑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밤의 가스파르’ 연주가 이어졌다. 첫 악곡 ‘물의 요정’에서는 가벼우면서도 명료한 타건으로 아주 옅게 찰랑이는 물결을, 건반 끝까지 깊게 누르는 선명한 터치로 요정의 노랫소리를 표현하면서 라벨의 신비로운 서정을 펼쳐냈다.

마지막 악곡은 피아노곡으로 최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한다는 ‘스카르보(요괴·교활한 요정)’. 그는 시작부터 건반을 누르는 깊이, 건반에 가하는 힘, 페달 움직임 등을 예민하게 조절해가며 스카르보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괴기스러움을 온전히 살려냈다. 한 음도 허투루 내지 않는 집중력과 음역에 따라 음색까지 변화시키는 기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을 선사했다. 응축된 음악적 표현을 증폭시키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그의 연주는 우레와 같은 함성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연의 막을 내리는 작품은 라벨의 ‘라 발스’였다. 그는 감미로우면서도 화려한 음색과 한 점을 향해 쓰러지듯 움직이는 리듬을 정교하게 표현해내면서 프랑스 음악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유려한 정취를 살려냈다.

연주 내내 건반 위에 줄줄이 떨어진 땀이 이날 연주의 모든 걸 말해줬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들려주겠다는 김도현의 마음이 피아노 선율을 타고 고스란히 관객의 귀에 들어왔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