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필리핀 한인 살해사건, 진실 더 밝혀야죠"

현지서 사건 뛰어든 서승환 경정 "국민적 관심" 당부

마침내 범인들은 6년여만에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을 말했다.

2016년 10월 필리핀에서 발생한 현지 경찰의 지익주씨 살해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겪은 서승환(46·마포경찰서 교통과장) 경정 얘기다.

그는 2012년 2월부터 2017년 7월까지 필리핀 마닐라 경찰청에서 코리안데스크로 일했고, 2020년 5월 경찰 영사 자격으로 다시 필리핀에 파견돼 지난달 귀국했다.

필리핀 앙헬레스 법원은 6일(현지시간) 지씨를 납치해 살해한 전직 경찰관과 정보원에게 1심에서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런데도 서 경정의 말처럼 이 사건의 전모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퍼즐 조각인 범행 동기가 미궁인 채인 데다 현지에서는 '꼬리 자르기식' 수사였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리핀 경찰청 납치수사국(AKG)은 지씨가 앙헬레스의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금품을 갈취한 공무원들에게 상납을 거부하다가 보복을 당한 것으로 추정했을 뿐이다.

서 경정은 사건이 발생했을 땐 코리안데스크로 근무했고, 1심 공판이 진행된 시기엔 경찰 영사로 매번 공판장에 나갔다.

그는 9일 연합뉴스에 "지씨가 상납을 거부해 본보기로 죽였다는 것도 사실은 추정"이라며 "배후가 누구인지, 지씨를 왜 납치해서 죽였는지 등 범행 이유는 여전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사건 현장에서 치러진 6주기 추도식 사진과 함께 '정의가 실현되기를'이라는 글을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린 것도 이런 바람에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필리핀 현지 상황에 비춰봤을 때 1심 결과가 '신속히' 나왔다는 점이라고 했다.

현지에선 피고인과 증인의 불출석이 다반사여서 1심 판결이 10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2014년 3월 필리핀에서 발생한 '한인 여대생 납치살해 사건'의 중요 증인 중 한 명인 서 경정은 약 9년 뒤인 지난해 8월에야 현지 법원에서 증인 출석을 통보받았을 정도다.

서 경정은 "우리 정부가 필리핀 사법부에 신속한 판결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1심이 6년 만에 선고됐다"며 "2심과 대법원을 거쳐 진실을 밝히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1심 선고 사흘이 지난 이날 아침에도 서 경정은 지씨의 아내 최경진(56)씨와 통화했다고 한다.

비록 귀국했지만 긴 시간 싸움을 치러야 하는 최씨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유족에겐 위로가 된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면 20년도 더 들어드릴 수 있어요.

"
2012년 이후로 필리핀에서 일어난 한인 살해 사건은 지씨를 포함해 57건, 피해자는 63명에 달한다.

이 중 필리핀에서 범인이 검거돼 기소된 사건은 29건에 그친다.

재판 기간이 길고 증인 불출석, 증거 부족으로 소송이 기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탓이다.

29건 중 2건은 유죄협상제(플리바게닝)로 유죄가 선고됐고 10건은 기각됐다.

정식 재판을 거쳐 유죄가 선고된 것은 지씨 사건이 처음이다.

지씨를 살해한 범인들에게 이례적으로 중형이 선고되기까지 6년이 얼마나 지난하고 애끓는 세월이었을지 짐작할 만하다.

서 경정은 "지씨 사건을 포함해 재판 중인 17건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면서 "이 사건들이 기각되지 않도록 국민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