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외부 감사 대상 기업 약 2만500개에 적용되는 표준감사시간 적용을 유연화한다. 기업과 회계법인간 감사 비용 등을 놓고 분쟁이 벌어질 경우 이를 조정할 기구를 마련한다. 회계법인이 감사 비용·시간 등을 기업과 합의한 뒤 내용과 근거 등을 금융감독원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칙도 신설한다.

금융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주요 회계제도 보완방안’을 11일 발표했다. 최근 수년간 주기적 지정감사제 도입 등의 이유로 기업이 직접 감사인을 지정하지 못하고 당국의 지정을 받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 부작용이 커지자 보완책으로 내놓은 조치다.

금융위는 연내 외부감사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 표준감사시간 유연화에 나선다. 표준감사시간은 감사 기준에 부합하는 감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평균적인 감사 시간을 뜻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가 업종·규모별로 결정해 3년 주기로 재조정한다.

금융위는 한공회와 협의해 한공회 회칙과 행동강령 상 표준감사시간이 강행규범으로 오인될 수 있는 관련 조항을 폐지하기로 했다. 회칙 중 ‘표준감사시간 준수’를 회원의 의무로 기재한 내용을 삭제하는 등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정 감사제 비중이 높아지면서 감사인의 지위가 기업에 비해 올라가자 감사인이 표준감사시간을 단순 적용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이 경우 감사 품질이 올라가긴 하지만 개별 기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감사 시간과 비용이 늘어난다는 기업들의 불만도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표준감사시간심의위원회 구성 방식도 일부 바꾼다. 이 위원회는 기업계 5인, 회계법인 5인, 회계정보이용자 4인, 금감원 1인 등 총 15인으로 구성된다. 이중 회계법인 5명과 회계정보이용자 4명은 한공회장이 위촉한다. 회의에 기업계 인사가 모두 빠져도 한공회장이 위촉한 위원 9명과 금감원 추천위원 1명만 출석하면 개의·결의를 할 수 있는 구조다. 일부 기업들이 심의위의 독립성을 우려했던 이유다.

금융위는 위원회의 회계정보이용자 위원 규모를 2명으로 줄이고, 추천기관은 금감원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두 명 중 한명은 학계 인사로 위촉한다.

금융위는 회계법인과 기업간 감사시간 산출 과정도 개선하기로 했다. 회계법인이 감사 시간·보수·투입인력 등 세부사항에 대해 기업과 합의한 후 내용을 금감원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존엔 감사인이 제안한 안을 기업과 협의해 결정하는 구조다. 경쟁입찰의 경우엔 그렇지 않지만 지정감사를 하는 경우엔 회계법인이 '깜깜이 제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계법인이 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표준감사시간 등을 기반으로 내용을 제안하고, 기업들은 세부내용을 모르는 채 제시받은 감사 시간·비용 등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회계법인이 지정감사때도 산업을 잘 아는 인력을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규칙도 만든다. 상장사를 지정감사할 때 산업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감사팀을 구성한 회계법인에 대해선 불이익 조치를 하기로 했다.

기업이 경쟁입찰을 통해 회계법인을 선임할 땐 경험과 전문성이 높은 감사팀을 구성하지만, 지정감사때는 회계사들이 단순히 연령순으로 돌아가면서 조를 짜서 맡는 일 등을 막겠다는 취지다. 금융위는 해당 산업에 대한 감사 경력자가 전혀 없는 감사팀을 구성한 회계법인에 대해 차기년도 감사인 지정시 팀 하나당 기업 두 개씩을 차감할 방침이다. 감사팀의 산업전문성은 감사수행 이사의 성과평가지표에도 반영한다.

감사인 지정점수 산정 방식도 바꾼다. 기존엔 등록 회계사 수를 기반으로 점수를 산정한다. 회계사의 경력에 따라서 가중치를 적용받는 구조다. 고연차 회계사가 많을수록 인력 대비 지정 감사 수가 크게 증가한다는 얘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데 따라 실무에선 은퇴한 고연차 회계사들이 갑자기 지정감사에 투입되고, 투입 인력 수도 부족한 등 감사 품질이 악화된다는 기업들의 불만이 컸다"며 "앞으로는 인력 대비 적정한 기업이 배정되도록 고연차 회계사의 점수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한다"고 했다. 금융위는 30년 이상 경력 회계사에 대해 기존 대비 10점 낮은 110점을, 40년 이상 회계사에 대해선 100점을 적용하기로 했다.

기업과 회계법인간 중립적 분쟁조정기구도 신설한다. 기존엔 금감원과 한공회에 지정감사인 부당행위 신고센터가 있으나 기업들의 활용도는 높지 않았다. 기업들이 한공회는 회계법인에 판단이 치우칠 확률이 높고, 금감원은 감리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향후 감리 과정에서 불이익을 우려했다고 금융위는 보고 있다.

금융위는 작년 9월 한국거래소에 설치된 중소기업 회계지원센터를 대안으로 쓰기로 했다. 분쟁 신고가 들어온 경우 이 기구가 사실관계 조사 역할을 맡는다. 기구가 실제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할 경우 금융위 증선위에 건의하면 증선위가 심의 판단을 거쳐 조치하는 식이다. 금융위는 "감사인이 합리적인 사유 없이 조정에 불응하거나, 권한 남용 행위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면 지정을 취소하고 관계자를 징계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