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은 내가 지킬게, 내 남자니까."
스웨덴 출신이어서 그런지, 레베카 퍼거슨은 과거의 잉그리드 버그먼을 떠올리게 한다. 버그먼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절세의 미인이었고, ‘만인의’ 라는 표현을 넘어 불멸의 연인이었다. 레베카 퍼거슨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사랑받는 배우가 되기까지 일정한 변곡점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열광하는 사람은 이미 열광하고 있는 여배우란 얘기다.

이 ‘여배우 열전’은 공식적인 조사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물을 선정하는 코너가 아니다. 이건 순전히 필자의 ‘마음 가는 대로’ 식의 취향에 따른 것이어서 불만과, 때론 반론도 예상된다. 분명한 것은 지나치게 올드 스타로 가지는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MZ세대를 겨냥할 생각은 없으나 그래도 잉그리드 버그먼이나 마를렌 디트리히는, 아쉽지만, 리스트에서 뺄 생각이다. 나이 드신 독자분들(만약 이 코너를 읽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이제 당신은 내가 지킬게, 내 남자니까."
잉그리드 버그먼을 연상케 한다는 점 외에도 레베카 퍼거슨은 또 하나의 편견을 가져다 준다. 스웨덴 출신 여배우는 다 미인이라는 것인데, 그건 남아프리카 출신이 그런 것(샤를리즈 테론 등)과 동구 우크라이나 출신이 그렇다는 것(‘블랙 스완’의 밀라 쿠니스), 그러니까 여배우는 비(非)할리우드 출신이 훨씬 예쁘고, 그래서 결국 이름을 얻는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당신은 내가 지킬게, 내 남자니까."
레베카 퍼거슨의 영화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얘기할 것이다. 특히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에서 상대 조직의 시스템 칩 카드를 바꿔치기 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물탱크로 들어간 이단 헌트(톰 크루즈)가 그 자신답게 임파서블한 임무를 수행했지만, 익사 직전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런 그를 구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옷을 벗은 후, 언더웨어 차림으로 물속에 뛰어들어 유영(遊泳)하던 늘씬한 그녀의 반(半)나신의 몸매를 기억하는 사람들(남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제 당신은 내가 지킬게, 내 남자니까."
또 하나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원래 영국 첩보부 MI6 요원인 그녀, 곧 일사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황금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늘씬한 각선미의 허벅지를 무릎 받침으로 저격용 라이플을 들고 있는 컷이다.(이 한 장면을 위해 여배우들은 허벅지 다이어트를 몇 개월간 해야만 했을까. 아마도 그것 역시 계약사항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가장 가슴 ‘쿵’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물은 2018년에 나온 ‘폴 아웃’이다. 여기서 둘, 곧 이단 헌트와 일사는 이미 연인 사이다. 역시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한 후 간신히 살아 남아 야전병원 같은 곳의 침상에서 눈을 뜬 이단 앞에 그가 그렇게 사랑하고 보호하려 했던, 무엇보다 여전히 사랑하는 전처 줄리아(미셸 모나한)가 서있다.

줄리아는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다쳐 누어 있는 헌트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현재의 연인 일사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본다. 한 여자는 남자 곁을 떠나고, 한 여자는 남자 곁으로 다가서면서 스치듯 귓속말을 나눈다. 서로 미소를 머금은 채. 이때, 줄리아의 귀에 살짝 입을 대고 있는 일사, 레베카 퍼거슨의 표정이 극도로 사랑스럽다. 근데 그게 레베카 퍼거슨의 연기가 매력적이어서 그런 건지, 모든 남자라면 갖고 있을 법한 (치사한) 욕망 곧, 현재의 애인이 전처와 사이 좋게 지냈으면 하는 욕심을 자극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당신은 내가 지킬게, 내 남자니까."
일사와 줄리아는 귓속말로 무슨 얘기를 했을까. ‘저 남자를 잘 부탁해요’, ‘걱정 말아요. 이젠 내가 지킬께요’, 였을까. 아니면 ‘바로 너구나. 내 남자를 가로 챈 여자가?’나 ‘저 남자는 이제 내 거야!’같은 식이었을까. 왓에버(whatever).
각본과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시나리오를 정말 잘 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맥쿼리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시나리오 작가로 시작해 그간 ‘잭 리처’나 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탑 건 : 매버릭’의 각본 연출로 할리우드에서 승기를 잡은 감독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것은 ‘웨이 오브 더 건(2000)’이다. 역시 초기작이 가장 발칙하고 좋을 때가 많다.

레베카 퍼거슨이 갖고 있는 외모, 표정, 몸매, 신체의 특징은 바로 우아함이다. 그녀는 걸작 반열에 오를 예정인 드니 빌뇌브의 ‘듄’에서 실로 품위와 격조를 갖춘 신비의 여인 레이디 제시카로 나온다. 그녀의 아들이자 왕자인 폴(티모시 살라메)은 곧 듄 행성을 구원할 메시아가 될 것이다. 성서와 석유 정치학을 결합한 이 기이한 소설(프랭크 허버트)이자 영화는 레베카 퍼거슨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로 만들어 낸다. 이 영화에서 퍼거슨은 마리아처럼 아름답고 마리아와는 다르게 매우 전투적인 여성상을 연기한다.
"이제 당신은 내가 지킬게, 내 남자니까."
레베카 퍼거슨의 최고작은,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도 아니고 억울하게도 저평가돼 있는 작품이지만, 리사 조이 감독이 만든 2021년작 ‘레미니센스’이다. SF스릴러, 보다 정확하게는 SF느와르였던 이 영화는 꽤나 복잡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 여자 메이, 곧 퍼거슨은 남자 닉(휴 잭맨)을 사랑하는 척 한껏 이용하고 버리는 팜므 파탈로 나온다. 하지만 나중에 모든 진실을 알고 나니 그런 게 아니었다는, 남자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여자가 남자를 배신하고 버린 셈이 됐다는 고전 신파의 러브 스토리로 사람들을 내몰기 시작한다. 그렇게 가슴 아픈 감동이 있는 작품이다. 레베카 퍼거슨 때문에 가슴이 쿵쿵대다가 나중에는 쿵쾅거리게 된다.

느와르 스릴러의 특징은 아주 작아 보이는, 영화 저 구석에 처박혀 있는 듯한 작은 에피소드에 모든 사건의 시작과 진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레미니센스’는 한 늙은 부호의 혼외정사, 그의 젊은 여자가 낳은 아기가 키워드였다. 특히 늙은 갑부의 바로 이 대사, “너와 너의 아이를 끝까지 돌봐 줄게”가 핵심이다. ‘레미니센스’는 근래 찾아 보기 힘든 러브 스토리이며 뛰어난 이야기 구조를 지녔고, 그걸 SF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상상력이 남다른 작품이다. 감독 리사 조이의 남편이자 제작자는 조나단 놀란이고, 성(姓)으로도 알 수 있듯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이다.

레베카 퍼거슨은 이 영화에서 한마디로 절정이다. 메이는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다 그렇게 돼 듯이) 영화 속의 덜 떨어진 남자 닉, 곧 휴 잭맨이 아니더라도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여자다. 이 영화에 출연할 때 레베카 퍼거슨은 우리 나이로 39살이었다. 현재 41살인 레베카 퍼거슨은 애플TV 10부작 드라마 ‘지하 창고 사일로의 비밀, SILO’의 주인공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여자는 역시 나이 40이 다 되거나, 40이 넘어야 가장 아름답다는 이 코너의 ‘지론(持論)’이 어김없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암 그렇고 말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