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존재들에 힘입어 성장하는 이야기…섬세한 문장 돋보여
다정함이 우리를 구원한다…백수린 첫 장편 '눈부신 안부'
타인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성실하게 거짓말을 해야 했던 소녀 '해미'. 1994년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친언니를 잃고 너무 일찍 인생의 비극을 깨달아버린 아이다.

새 삶을 위해 해외로 이주하기로 한 엄마를 따라 독일 땅을 밟은 해미는 그곳의 파독 간호사 출신 이모들과 새로 사귄 친구들의 힘을 빌려 다시 일상을 가동하기 시작한다.

독일에서의 삶이 행복한 것 같다고 느낄 무렵 또 한 번 거대한 상실의 파도가 해미에게 밀려온다.

백수린의 장편 '눈부신 안부'는 작가가 등단 12년 만에 내놓은 첫 장편소설이다.

2020년 세 번째 단편 소설집 '여름의 빌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뒤 2021년부터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이토록 아름다운'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것을 새 제목을 붙여 출간했다.

어린 시절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 출신 이주여성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를 찾으려 했던 해미가 20여 년이 지나 다시 한번 그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 이 소설의 굵직한 줄기다.

비극적인 사건을 회피하려 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던 한 인물이 어른이 된 뒤에서야 서툴렀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작가는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듯한 섬세한 문장들로 그려냈다.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와 성장에 도달하려는 해미가 여정에는 그를 품어주고 지지해주는 다정한 타인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캐릭터는 독일에서 행복한 유년의 기억을 만들어준 파독 간호사 출신 이모들이다.

해미의 친이모 오행자는 학창 시절 수재로 소문나 외교관을 꿈꿨지만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독일로 건너온 인물.
독일에서 조카를 만난 첫날 그는 해미에게 "혼자 짊어지려고 하면 안 돼. 아무리 네가 의젓하고 씩씩한 아이라도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라고 당부한다.

행자 이모 외에도 부유한 집안에서 고리타분하게 생활하고 싶지 않아 독일을 탈출구로 삼은 최말숙, 문학소녀로 독일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임선자까지 파독 간호사 출신 이모들은 낯선 독일에서 해미의 친구가 되고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
작가가 출판사 측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꼽은 소설 속 이 한 문장이 작품의 다정다감한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작품 속 선자 이모가 누군가에게 쓴 편지를 끝맺은 말이다.

작가는 "이 책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잘 가닿아 눈부신 세상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문학동네. 31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