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떠나는 김동욱 "'게으른 천재'가 41세까지…아버지 덕"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아버지, 내 '농구 교습' 부탁하러 각지로…훈련용품까지 제작하셔"
통산 673경기 출전…우승 합작한 추일승 감독 "농구 감각 천부적" 2005년 프로농구에 입성해 18시즌을 보낸 베테랑 포워드 김동욱이 결국 정든 코트를 떠나기로 했다.
현역 최고령 타이틀을 함지훈(38·현대모비스)에게 물려준 김동욱(41)은 2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1년 더 하자는 욕심도 있었지만 쉬면서 가족과 이야기해보니 은퇴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22-2023시즌 수원 kt 소속으로 정규리그 29경기 평균 5점·3점 성공률 48%를 기록한 김동욱은 이번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재계약·이적·은퇴의 갈림길에 섰다.
김동욱은 "kt 쪽에서 재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
거취를 두고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제 여기서 끝인가 보다',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돌아봤다.
정규리그 통산 673경기에 출전해 이 부문 역대 8위에 오른 김동욱은 "은퇴라는 게 시원섭섭하지만 이렇게 오래 뛸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마산고 시절 최고 유망주로 꼽혔던 김동욱은 고려대 재학 중 오른 발목을 크게 다치면서 부침을 겪었다.
수술 이후 체계적인 재활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운동량이 줄고 체중이 늘자 '게으른 천재'라는 별명이 붙었다.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노력 부족'을 꼬집는 농구계의 실망감이 담긴 달갑지 않은 수식어였다.
이 별명에 김동욱은 "어릴 때는 내가 실력만 믿고 실제로 게으른 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며 "다치고 나서 경기도 못 뛰고 또 다치고 이러니까 그런 말이 나왔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게으른 천재든 뭐든 이렇게 우리나라 나이로 43세까지 프로농구에서 뛴 건 개인적으로 몸 관리, 운동, 훈련을 잘해왔다는 방증"이라며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한편으로 이 별칭에는 숨길 수 없는 김동욱의 '농구 센스'에 대한 감탄도 섞여 있다.
김동욱은 190㎝ 중반의 신장에 100㎏가 넘는 거구인데도 가드처럼 경기를 읽고, 적재적소에 고난도 패스를 공급하며 다른 선수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했다.
육중한 체격에도 공중에서 신체 균형을 유지한 채 던지는 '무빙 슛'에 능했고, 통산 3점 성공률도 37.5%를 기록하는 등 포워드로서 기본기가 출중했다.
2011년부터 고양 오리온(현 데이원 점퍼스)에서 김동욱과 합을 맞춰 2016년 우승을 일군 추일승 감독은 "코트 상황을 가장 빨리 이해하는 선수다.
재빠르진 않지만 체격이 튼튼해 수비적으로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승 당시 챔프전에서 220㎝가 넘는 하승진 선수에 대한 수비도 시켰다.
농구 감각이 천부적이라 포인트가드부터 센터까지 전부 수비했다"며 "이런 선수들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게으르다'는 편견 속에서 꾸준한 기량을 선보일 수 있었던 비결로 김동욱은 아버지의 '조기 교육'을 꼽았다.
김동욱은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께서 주말마다 경남, 부산 지역에 계신 농구 코치들을 수소문해 날 데려가셨다.
개인 운동을 시켜달라고 부탁하셨던 거다"고 돌아봤다
이어 "집 근처 헬스장을 또 수소문해 거기 관장님들께 농구 선수로서 근육 운동법을 알려달라 했다.
매일 하체 운동을 한 것"이라며 "크고 무거운 선수를 힘으로 버티고, 슛 던질 때도 쉽게 공중에서 균형을 잡는 게 다 그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에 매진한 덕"이라고 했다.
당시 아버지의 직업은 농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택시를 몰면서 가족의 생계를 벌었지만, 훈련 중 수비수를 대신할 목재 장애물을 손수 만드는 등 열정으로 아들을 지원했다.
김동욱은 "아버지 덕에 어릴 때 여러 코치님께 지역 방어를 어떻게 깨야 하는지 등을 이론적인 부분부터 교육받았다"며 "그때는 주말에 운동하기 싫어서 버티려 했지만 억지로 끌려다녔다.
돌아보면 그게 내가 지금까지 선수로 버틸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고 했다.
농구 선수를 뒷바라지했던 아버지처럼 김동욱도 무용을 시작해 예체능계로 뛰어든 장녀를 조력하는 입장이 됐다.
"둘째 아들도 농구를 하고 싶다는데…"라고 웃은 김동욱은 "아내가 결혼하고 나를 10년 넘게 지원했는데 이제 또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게 됐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비시즌마다 체중 관리가 가장 어려웠다는 김동욱은 "원래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었는데 희한하게 수술을 몇 번 하니까 체질도 변했다"며 "몸 관리가 그간 제일 내게 스트레스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그런 삶에서 해방됐는데, 역설적으로 너무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관리하게 된다"며 "20년 가까이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기회가 돼 농구계에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통산 673경기 출전…우승 합작한 추일승 감독 "농구 감각 천부적" 2005년 프로농구에 입성해 18시즌을 보낸 베테랑 포워드 김동욱이 결국 정든 코트를 떠나기로 했다.
현역 최고령 타이틀을 함지훈(38·현대모비스)에게 물려준 김동욱(41)은 2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1년 더 하자는 욕심도 있었지만 쉬면서 가족과 이야기해보니 은퇴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22-2023시즌 수원 kt 소속으로 정규리그 29경기 평균 5점·3점 성공률 48%를 기록한 김동욱은 이번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재계약·이적·은퇴의 갈림길에 섰다.
김동욱은 "kt 쪽에서 재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
거취를 두고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제 여기서 끝인가 보다',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돌아봤다.
정규리그 통산 673경기에 출전해 이 부문 역대 8위에 오른 김동욱은 "은퇴라는 게 시원섭섭하지만 이렇게 오래 뛸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마산고 시절 최고 유망주로 꼽혔던 김동욱은 고려대 재학 중 오른 발목을 크게 다치면서 부침을 겪었다.
수술 이후 체계적인 재활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운동량이 줄고 체중이 늘자 '게으른 천재'라는 별명이 붙었다.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노력 부족'을 꼬집는 농구계의 실망감이 담긴 달갑지 않은 수식어였다.
이 별명에 김동욱은 "어릴 때는 내가 실력만 믿고 실제로 게으른 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며 "다치고 나서 경기도 못 뛰고 또 다치고 이러니까 그런 말이 나왔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게으른 천재든 뭐든 이렇게 우리나라 나이로 43세까지 프로농구에서 뛴 건 개인적으로 몸 관리, 운동, 훈련을 잘해왔다는 방증"이라며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한편으로 이 별칭에는 숨길 수 없는 김동욱의 '농구 센스'에 대한 감탄도 섞여 있다.
김동욱은 190㎝ 중반의 신장에 100㎏가 넘는 거구인데도 가드처럼 경기를 읽고, 적재적소에 고난도 패스를 공급하며 다른 선수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했다.
육중한 체격에도 공중에서 신체 균형을 유지한 채 던지는 '무빙 슛'에 능했고, 통산 3점 성공률도 37.5%를 기록하는 등 포워드로서 기본기가 출중했다.
2011년부터 고양 오리온(현 데이원 점퍼스)에서 김동욱과 합을 맞춰 2016년 우승을 일군 추일승 감독은 "코트 상황을 가장 빨리 이해하는 선수다.
재빠르진 않지만 체격이 튼튼해 수비적으로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승 당시 챔프전에서 220㎝가 넘는 하승진 선수에 대한 수비도 시켰다.
농구 감각이 천부적이라 포인트가드부터 센터까지 전부 수비했다"며 "이런 선수들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게으르다'는 편견 속에서 꾸준한 기량을 선보일 수 있었던 비결로 김동욱은 아버지의 '조기 교육'을 꼽았다.
김동욱은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께서 주말마다 경남, 부산 지역에 계신 농구 코치들을 수소문해 날 데려가셨다.
개인 운동을 시켜달라고 부탁하셨던 거다"고 돌아봤다
이어 "집 근처 헬스장을 또 수소문해 거기 관장님들께 농구 선수로서 근육 운동법을 알려달라 했다.
매일 하체 운동을 한 것"이라며 "크고 무거운 선수를 힘으로 버티고, 슛 던질 때도 쉽게 공중에서 균형을 잡는 게 다 그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에 매진한 덕"이라고 했다.
당시 아버지의 직업은 농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택시를 몰면서 가족의 생계를 벌었지만, 훈련 중 수비수를 대신할 목재 장애물을 손수 만드는 등 열정으로 아들을 지원했다.
김동욱은 "아버지 덕에 어릴 때 여러 코치님께 지역 방어를 어떻게 깨야 하는지 등을 이론적인 부분부터 교육받았다"며 "그때는 주말에 운동하기 싫어서 버티려 했지만 억지로 끌려다녔다.
돌아보면 그게 내가 지금까지 선수로 버틸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고 했다.
농구 선수를 뒷바라지했던 아버지처럼 김동욱도 무용을 시작해 예체능계로 뛰어든 장녀를 조력하는 입장이 됐다.
"둘째 아들도 농구를 하고 싶다는데…"라고 웃은 김동욱은 "아내가 결혼하고 나를 10년 넘게 지원했는데 이제 또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게 됐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비시즌마다 체중 관리가 가장 어려웠다는 김동욱은 "원래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었는데 희한하게 수술을 몇 번 하니까 체질도 변했다"며 "몸 관리가 그간 제일 내게 스트레스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그런 삶에서 해방됐는데, 역설적으로 너무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관리하게 된다"며 "20년 가까이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기회가 돼 농구계에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