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영토 넓혀라"…여성 CEO 모시는 럭셔리 브랜드
글로벌 명품업계에는 “럭셔리업계에 관한 가장 잘못된 고정관념은 이곳이 여성의 세계라는 것”이란 말이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상당수 럭셔리 브랜드는 남성이 이끌고 있다.

주 고객은 여성이지만 제품을 디자인하고 회사를 이끄는 영역에서는 남성 비중이 더 높다. 이런 럭셔리 브랜드들이 최근 들어 여성 대표를 적극 임명해 브랜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

세계 5대 하이엔드 시계 제조회사로 꼽히는 스위스의 오데마피게가 새 최고경영자(CEO)로 일라리라 레스타를 22일(현지시간) 내정한 게 그런 사례다. 그는 오데마피게의 첫 여성 CEO다.

레스타 내정자는 스위스 향수업체 퍼메니시 대표 출신으로 그전에는 P&G에서 근무했다. 명품업계에선 오데마피게가 필수소비재 기업에서 일한 그를 대표직에 앉히기로 한 것은 대중화 의지의 반영이란 해석도 나온다.

2012년부터 오데마피게를 이끌어온 프랑수아 앙리 베나미아스 CEO는 일체형 시계의 유행을 이끌며 대표 모델 ‘로열 오크’를 부상시켰다. 하지만 다른 시계 라인의 명성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시계업계 관계자는 “전문성을 강조하는 보수적 문화의 시계업계에서는 외부 인재 영입이 드물었다”며 “레스타 내정자에게 다양한 라인 개발을 주문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알레산드로 볼리올로 오데마피게 회장은 “오데마피게의 유산은 다가올 세대와 관련이 있으며 새 대표는 오데마피게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레스타 내정자는 오는 8월 회사에 합류해 내년 1월 1일부로 임기를 시작한다.

글로벌 시계업계의 여성 CEO로는 스위스 예거르쿨트르의 캐서린 레니에 대표(2018년 선임)와 스와치그룹의 나일라 하이에크 회장(2009년)이 있다. 이 중 하이에크 회장은 스와치의 오너 일가다. 피아제의 벤저민 코마(2021년), 바쉐론콘스탄틴의 루이 펠라(2017년), 롤렉스의 장-프레데릭 뒤포(2015년), 랑에운트죄네의 빌헬름 슈미트(2011년) 등 하이엔드 시계 회사들의 수장은 모두 남성이다.

샤넬도 지난해 초 인도 출신 리나 나이르를 글로벌 대표직에 앉힌 바 있다. 그는 샤넬의 첫 여성 대표, 비(非)백인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았다.

나이르 대표는 30년간 유니레버에서 근무하며 이 회사 최고 인사책임자에까지 올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로 등장하며 기업들이 여성 임원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더 활발해지고 있다”며 “소비재기업 출신을 영입하는 것도 트렌드”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럭셔리 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맏딸 델핀 아르노를 크리스찬디올의 새 CEO로 올해 초 임명했다. 그는 2013년부터 루이비통 부사장으로 재임하며 루이비통의 매출 급증을 이뤄내 능력을 인정받았다. 아르노 회장의 5남매 중 유일한 LVMH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