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은 어떻게 돈 찍어내는 기계로 전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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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문 저널리스트가 쓴 신간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토마스 호니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장은 2010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12명의 위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6주에 한 번씩 열리는 FOMC에서 그는 벤 버냉키 의장이 지지하는 정책에 6번 연속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의장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만장일치 표결이 전통인 FOMC에서 반대표를, 그것도 연속으로 던지는 건 이례적인 경우였다.
마치 허먼 멜빌의 중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주인공 바틀비처럼 그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정중하게 반대'만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9월 FOMC에서도 그는 버냉키가 제안한 '양적완화'를 정중히 반대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배분적 효과를 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에 대해 우리가 매우, 매우 깊이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호니그는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또다시 엄청난 돈을 시장에 푼다면 자산 버블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 것을 근심했다.
프린스턴대 교수 출신인 버냉키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실업률이 9%를 넘어가고 있었다.
"안전한 선택지란 없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재닛 옐런 부의장을 비롯한 나머지 위원들도 모두 버냉키를 지지했다.
11대1. 버냉키의 완승이었다.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레너드가 쓴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원제:The Lords of Easy Money)은 1970년대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2020년대 초반까지 호니그 행장의 활동을 중심으로 연준의 경제 정책을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양적완화 등 돈을 찍어내는 정책이 초래한 막대한 부작용, 시장에 포획된 연준의 현 모습 등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책에 따르면 호니그는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입사 초기부터 산하 은행들을 감독하는 일을 했다.
은행 건전성 심사가 그의 주된 업무였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석유 파동과 저금리 기조 속에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에 따른 위기를 그는 목도했다.
은행들이 자산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한계기업(영업활동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에 목돈을 빌려주면서 초래한 위기를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는 이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기업에 이어 은행마저 부실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걱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연준은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지금은 전설이 된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이 총대를 멨다.
그는 1979년 10%였던 금리를 1981년 약 20%까지 끌어 올렸다.
유례없이 높은 수준이었다.
경제는 황폐해졌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치솟던 인플레이션은 거짓말처럼 잡혔다.
호니그는 이렇게 힘겨운 시절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에게 저금리의 지속은 모럴해저드와 그에 따른 고통을 의미했다.
그런데 2010년 9월 버냉키가 하려는 일은 저금리 상황에서 시장에 돈을 쏟아붓는 일이었다.
설상가상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호니그가 보기에 양적완화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통화를 시장에 공급하는 일이었다.
연준은 통상 단기 국채만 매입하며 시장의 자금을 조절해왔는데, 양적완화 정책은 연준이 10년 만기 국채와 같은 장기 채권까지 대거 매입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안전 자산인 장기 국채 공급량이 줄어들게 되고, 유동성이 풍부해진 시장은 공급이 줄어든 안전 자산 대신 새로운 투자처를 찾게 된다.
즉 수익률은 높지만 안전하지 않은 '위험자산'으로 돈이 몰리게 되는 것이다.
은행들은 예전 같으면 대출해주지 않았을 기업에 자금을 댈 전망이 커졌다.
버냉키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이었고, 호니그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버냉키는 한계기업이나 새로운 기업의 고용 증가 효과를 기대했으나 호니그는 한계기업 증가와 도덕적 해이를 우려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호니그의 예측이 더욱 부합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양적완화로 연준은 '수렁'에 빠졌다.
실업률은 쉽게 잡히지 않았고, 시장이 위험신호를 보낼 때마다 연준은 막대한 돈을 뿌릴 수밖에 없었다.
한계기업과 은행, 헤지펀드는 수많은 상품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어느새 하나만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모든 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로 미국 경제가 재편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자들은 엄청난 돈을 거머쥐었다.
예컨대 헤지펀드는 어떤 식으로든 연준이 도와줄 거라 생각해 수익률이 크지만, 위험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시장에 자금 경색이 오면 연준은 어김없이 돈을 풀었다.
장기 국채뿐 아니었다.
연준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회사채, 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 정크본드(부실채권)까지 매입했다.
그 과정에서 연준의 자산은 늘어만 갔다.
2023년을 기준으로 연준의 자산은 8조 달러가 넘었다.
이는 제2차 양적완화 기간 전인 2010년 1월 2조 달러를 약간 웃돌던 수준에 견줘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호니그가 양적완화 등을 반대한 또 다른 이유는 이 같은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한번 시작하면 종결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비록 실업률 하락 등 약간의 개선을 유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준의 자산매입에 따른 통화량 증가는 경제 전반에 "불안정의 씨앗을 심는다"고 여겼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호니그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우리가 지어놓은 복잡성을 보세요.
이것은 우리가 계속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이에요.
"
세종서적. 김승진 옮김. 468쪽. /연합뉴스
6주에 한 번씩 열리는 FOMC에서 그는 벤 버냉키 의장이 지지하는 정책에 6번 연속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의장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만장일치 표결이 전통인 FOMC에서 반대표를, 그것도 연속으로 던지는 건 이례적인 경우였다.
마치 허먼 멜빌의 중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주인공 바틀비처럼 그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정중하게 반대'만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9월 FOMC에서도 그는 버냉키가 제안한 '양적완화'를 정중히 반대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배분적 효과를 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에 대해 우리가 매우, 매우 깊이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호니그는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또다시 엄청난 돈을 시장에 푼다면 자산 버블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 것을 근심했다.
프린스턴대 교수 출신인 버냉키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실업률이 9%를 넘어가고 있었다.
"안전한 선택지란 없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재닛 옐런 부의장을 비롯한 나머지 위원들도 모두 버냉키를 지지했다.
11대1. 버냉키의 완승이었다.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레너드가 쓴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원제:The Lords of Easy Money)은 1970년대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2020년대 초반까지 호니그 행장의 활동을 중심으로 연준의 경제 정책을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양적완화 등 돈을 찍어내는 정책이 초래한 막대한 부작용, 시장에 포획된 연준의 현 모습 등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책에 따르면 호니그는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입사 초기부터 산하 은행들을 감독하는 일을 했다.
은행 건전성 심사가 그의 주된 업무였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석유 파동과 저금리 기조 속에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에 따른 위기를 그는 목도했다.
은행들이 자산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한계기업(영업활동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에 목돈을 빌려주면서 초래한 위기를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는 이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기업에 이어 은행마저 부실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걱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연준은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지금은 전설이 된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이 총대를 멨다.
그는 1979년 10%였던 금리를 1981년 약 20%까지 끌어 올렸다.
유례없이 높은 수준이었다.
경제는 황폐해졌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치솟던 인플레이션은 거짓말처럼 잡혔다.
호니그는 이렇게 힘겨운 시절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에게 저금리의 지속은 모럴해저드와 그에 따른 고통을 의미했다.
그런데 2010년 9월 버냉키가 하려는 일은 저금리 상황에서 시장에 돈을 쏟아붓는 일이었다.
설상가상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호니그가 보기에 양적완화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통화를 시장에 공급하는 일이었다.
연준은 통상 단기 국채만 매입하며 시장의 자금을 조절해왔는데, 양적완화 정책은 연준이 10년 만기 국채와 같은 장기 채권까지 대거 매입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안전 자산인 장기 국채 공급량이 줄어들게 되고, 유동성이 풍부해진 시장은 공급이 줄어든 안전 자산 대신 새로운 투자처를 찾게 된다.
즉 수익률은 높지만 안전하지 않은 '위험자산'으로 돈이 몰리게 되는 것이다.
은행들은 예전 같으면 대출해주지 않았을 기업에 자금을 댈 전망이 커졌다.
버냉키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이었고, 호니그가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버냉키는 한계기업이나 새로운 기업의 고용 증가 효과를 기대했으나 호니그는 한계기업 증가와 도덕적 해이를 우려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호니그의 예측이 더욱 부합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양적완화로 연준은 '수렁'에 빠졌다.
실업률은 쉽게 잡히지 않았고, 시장이 위험신호를 보낼 때마다 연준은 막대한 돈을 뿌릴 수밖에 없었다.
한계기업과 은행, 헤지펀드는 수많은 상품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어느새 하나만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모든 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로 미국 경제가 재편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자들은 엄청난 돈을 거머쥐었다.
예컨대 헤지펀드는 어떤 식으로든 연준이 도와줄 거라 생각해 수익률이 크지만, 위험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시장에 자금 경색이 오면 연준은 어김없이 돈을 풀었다.
장기 국채뿐 아니었다.
연준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회사채, 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 정크본드(부실채권)까지 매입했다.
그 과정에서 연준의 자산은 늘어만 갔다.
2023년을 기준으로 연준의 자산은 8조 달러가 넘었다.
이는 제2차 양적완화 기간 전인 2010년 1월 2조 달러를 약간 웃돌던 수준에 견줘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호니그가 양적완화 등을 반대한 또 다른 이유는 이 같은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한번 시작하면 종결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비록 실업률 하락 등 약간의 개선을 유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준의 자산매입에 따른 통화량 증가는 경제 전반에 "불안정의 씨앗을 심는다"고 여겼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호니그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우리가 지어놓은 복잡성을 보세요.
이것은 우리가 계속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이에요.
"
세종서적. 김승진 옮김. 46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