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마련…"취재진도 트라우마 겪는다"
"취재진 공격에는 회사 차원에서 대응해야"
"피해자 감정을 기자 판단으로 줄이고 단정하지 말아야"
재난 취재 과정에서 취재원이나 언론인이 트라우마를 겪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언론계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여성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가 언론인의 트라우마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한 '언론인 트라우마 위원회'는 19일 서울 중구 소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다트센터, 구글뉴스이니셔티브와 공동으로 '언론인 트라우마 실태 및 가이드북 1.0 발표회'를 열었다.

언론인 트라우마 위원회 위원장인 이정애 SBS 미래팀장은 취재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요소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제언을 담은 '언론인 트라우마 가이드북 1.0'을 제안했다.

그는 우선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경우 상황에 따라 취재진도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으며 트라우마를 경험한 취재원이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려 인터뷰하는 것이 때로는 일주일간 앓아누울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취재에 응하면서 겪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인터뷰 시간·장소 등 작은 사안이라도 취재원이 직접 정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덧붙였다.

만약 취재원이 인터뷰 도중 울면, 가급적 끊지 않고 충분히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 상처 치유에도 도움이 되며 이왕이면 취재원의 치유나 회복에까지 도움이 되는 방식을 택하라고 이 팀장은 권했다.

그는 간혹 트라우마를 경험한 취재원이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트라우마 반응 중 하나이며 이런 가능성을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데스크가 유의할 부분을 설명했다.

보도 과정에서는 피해를 겪은 취재원의 상황이나 감정을 취재진의 판단으로 줄여서 단정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감정을 기자 판단으로 줄이고 단정하지 말아야"
이와 관련해 세월호 참사 때 유족들은 '슬픔에 빠져 있다'는 식의 관행적인 표현에 대해 '나는 화가 나는데 언론은 왜 유족들이 슬프다고 주장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고 예를 들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보도 당시 영웅으로 부각된 인물이 이후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던 것처럼 특정 사건의 인물로 부각되면, 회복이 힘들어지고 다시 사회로의 복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신중한 보도를 촉구했다.

언론인이 재난 취재 후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 이를 동료들과 충분히 공유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안현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의 그룹 인터뷰에 따르면 재난 취재로 심리적 외상을 경험한 경우 신뢰하는 선후배나 동료와 고충을 나누며 지지를 받는 것이 공감과 유대감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있었다.

언론인에 대해 이른바 '좌표 찍기' 등으로 온라인상에서 공격하는 경우 언론사는 이를 회사나 유관 기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안으로 인지해야 하며 오프라인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 안전 확보 조치를 하라는 권고도 가이드라인에 담겼다.

이 팀장은 "언론인이 건강해야 건강한 보도를 할 수 있다"며 "언론인뿐만 아니라 취재원, 나아가 독자와 시청자의 심리적 안전까지 고려하는 '트라우마 이해 기반 조직'으로 나아갈 때 사회로부터 더 신뢰받고 지속 가능한 조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