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사한 전우 향한 노병의 거수경례…네덜란드 한국참전부대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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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회츠 부대, 횡성전투 등서 활약…참전 기념행사 韓언론 첫 공개
전사자 일일이 호명하며 추모…韓정부, 전쟁때 사용 전투기에 새 깃띠 전달 지팡이를 짚은 구순의 노병들이 영정도 명패도 없는 조화 앞에 멈춰 서더니 거수경례를 한다.
노인용 보행기로 몸을 겨우 지탱한 이도, 휠체어 없이는 거동 자체가 불가능한 이도 예외는 아니다.
70여년 전 이역만리 한반도 전선에서 먼저 떠나보낸 전우들에게 건네는 네덜란드 생존 참전용사들의 인사다.
연합뉴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동부 아른험에 위치한 육군 보병부대이자 6·25 전쟁 참전부대인 '판회츠(Van Heutsz) 연대'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기념행사를 찾았다.
판회츠 연대와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협회가 매년 공동 주최하는 행사가 한국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군부대인 만큼 협회 측은 군사시설 등 민감한 사진·영상 촬영은 삼가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기도 했다.
부대 연병장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네덜란드 각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참전용사 16명과 참전용사들의 배우자, 자녀 등 가족들, 외부 인사 등 40여명 정도가 자리했다.
15도 안팎의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정복을 갖춰 입은 구순의 참전용사들도 한 명도 빠짐없이 2시간가량 진행된 야외 기념식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다가도 네덜란드와 한국 국기 게양되고 양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췄다.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한국전쟁 당시 연인원 기준 5천322명을 파병했다.
당시 해군 병력을 제외한 육군 병력은 전원 판회츠 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모두 자원병으로, 이들은 횡성 전투(1951년 2월 4∼12일)를 비롯해 '철의 삼각지대'에서 벌어진 대다수의 중요한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당시 연대 소속 122명이 전사했다고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협회는 전했다.
3명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 상태로 기록돼 있다.
부대 측은 이날 행사를 위해 군악대를 포함해 현역 병사 150명 정도를 동원했다.
부대 측이 한국전 참전에 두는 의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행사 규모는 물론 내용 측면에서도 곳곳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건 '전사자 호명' 순서다.
기념식 중 전사자 이름이 차례로 한명씩 호명되자 이들의 후임 격인 현역 병사들이 돌아가며 '프레젠트'(present·이곳에 있다)라고 화답했다.
전사자들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의미로, 먼저 간 전우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속뜻이 담겼다.
당시 판회츠 파병 병력에 배속돼 격전을 치르다 전사한 한국인 참전용사들의 이름도 일일이 호명됐다.
한국전쟁 파병 당시 실제 사용한 전투 깃발(battle flag)도 등장했다.
평상시에는 부대 내 박물관에서 보관되고 있다.
특히 이 깃발에는 과거 한국 정부가 수여한 깃띠 형태의 대통령 부대 표창 수치(綬幟)가 부착돼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수치가 훼손돼 정부는 새 수치를 부대측에 교부하기로 했다.
박성호 주벨기에 한국대사관 무관(대령)이 이날 직접 새 수치를 전투 깃발에 달았다.
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 중에는 귀가 잘 들리지 않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대화 자체가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철원, 횡성 등 한국 지명을 정확히 언급하며 당시 기억을 생생하게 다시 끄집어냈다.
1952년 3월 한국에 도착했다는 테오도뤼스 휘베르튀스(91) 씨는 "여기저기 목통이 나뒹굴고, 곳곳이 심하게 파손되고 불에 탄 장면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가보훈처의 재방한 행사 계기로 7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며 "한국이 발전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가서 보니 생각보다 더 엄청났다.
이렇게 엄청난 발전의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기여한 사실에 정말 뿌듯했다"고 웃었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전사한 전우 덕분이라는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1949년까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태생인 참전용사 페르디난트 티탈렙타(90) 씨는 "부산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인들이 대거 부산으로 피란을 내려오는 상황에서 파병 군인들만 '북진'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남은 건 다른 전우들이 나 대신 전사했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안혜정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공사는 기념행사에서 "네덜란드는 유엔군 깃발 아래 제일 먼저 참전한 국가 중 하나"라며 "한국의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참전용사에게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을 대표해 감사를 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연합뉴스
전사자 일일이 호명하며 추모…韓정부, 전쟁때 사용 전투기에 새 깃띠 전달 지팡이를 짚은 구순의 노병들이 영정도 명패도 없는 조화 앞에 멈춰 서더니 거수경례를 한다.
노인용 보행기로 몸을 겨우 지탱한 이도, 휠체어 없이는 거동 자체가 불가능한 이도 예외는 아니다.
70여년 전 이역만리 한반도 전선에서 먼저 떠나보낸 전우들에게 건네는 네덜란드 생존 참전용사들의 인사다.
연합뉴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동부 아른험에 위치한 육군 보병부대이자 6·25 전쟁 참전부대인 '판회츠(Van Heutsz) 연대'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기념행사를 찾았다.
판회츠 연대와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협회가 매년 공동 주최하는 행사가 한국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군부대인 만큼 협회 측은 군사시설 등 민감한 사진·영상 촬영은 삼가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기도 했다.
부대 연병장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네덜란드 각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참전용사 16명과 참전용사들의 배우자, 자녀 등 가족들, 외부 인사 등 40여명 정도가 자리했다.
15도 안팎의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정복을 갖춰 입은 구순의 참전용사들도 한 명도 빠짐없이 2시간가량 진행된 야외 기념식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다가도 네덜란드와 한국 국기 게양되고 양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췄다.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한국전쟁 당시 연인원 기준 5천322명을 파병했다.
당시 해군 병력을 제외한 육군 병력은 전원 판회츠 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모두 자원병으로, 이들은 횡성 전투(1951년 2월 4∼12일)를 비롯해 '철의 삼각지대'에서 벌어진 대다수의 중요한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당시 연대 소속 122명이 전사했다고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협회는 전했다.
3명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 상태로 기록돼 있다.
부대 측은 이날 행사를 위해 군악대를 포함해 현역 병사 150명 정도를 동원했다.
부대 측이 한국전 참전에 두는 의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행사 규모는 물론 내용 측면에서도 곳곳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건 '전사자 호명' 순서다.
기념식 중 전사자 이름이 차례로 한명씩 호명되자 이들의 후임 격인 현역 병사들이 돌아가며 '프레젠트'(present·이곳에 있다)라고 화답했다.
전사자들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의미로, 먼저 간 전우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속뜻이 담겼다.
당시 판회츠 파병 병력에 배속돼 격전을 치르다 전사한 한국인 참전용사들의 이름도 일일이 호명됐다.
한국전쟁 파병 당시 실제 사용한 전투 깃발(battle flag)도 등장했다.
평상시에는 부대 내 박물관에서 보관되고 있다.
특히 이 깃발에는 과거 한국 정부가 수여한 깃띠 형태의 대통령 부대 표창 수치(綬幟)가 부착돼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수치가 훼손돼 정부는 새 수치를 부대측에 교부하기로 했다.
박성호 주벨기에 한국대사관 무관(대령)이 이날 직접 새 수치를 전투 깃발에 달았다.
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 중에는 귀가 잘 들리지 않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대화 자체가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철원, 횡성 등 한국 지명을 정확히 언급하며 당시 기억을 생생하게 다시 끄집어냈다.
1952년 3월 한국에 도착했다는 테오도뤼스 휘베르튀스(91) 씨는 "여기저기 목통이 나뒹굴고, 곳곳이 심하게 파손되고 불에 탄 장면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가보훈처의 재방한 행사 계기로 7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며 "한국이 발전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가서 보니 생각보다 더 엄청났다.
이렇게 엄청난 발전의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기여한 사실에 정말 뿌듯했다"고 웃었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전사한 전우 덕분이라는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1949년까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태생인 참전용사 페르디난트 티탈렙타(90) 씨는 "부산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인들이 대거 부산으로 피란을 내려오는 상황에서 파병 군인들만 '북진'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남은 건 다른 전우들이 나 대신 전사했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안혜정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공사는 기념행사에서 "네덜란드는 유엔군 깃발 아래 제일 먼저 참전한 국가 중 하나"라며 "한국의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참전용사에게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을 대표해 감사를 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