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주제 다뤄도 소설 읽는 재미 잃지 말자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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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으로 세계문학상 받은 문미순 작가
간병·돌봄 홀로 감당하는 이들 이야기…"비천한 현실 속 인간적 진실 길어 올려" "다 큰 아들 둘이 있는데 책을 잘 안 읽거든요.
그런데 제가 쓴 이 소설은 몇 시간 만에 금방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독자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쓰면서 늘 염두에 뒀습니다.
"
올해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나무옆의자·2023)은 취약계층의 간병과 돌봄 노동이라는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다룬 장편소설이지만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 할 만큼 가독성이 좋다.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스릴러 같은 스토리 전개에 빛나는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다.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50대 이혼 여성 '명주'와 뇌졸중 아버지를 돌보는 20대 청년 '준성'. 이들은 가혹한 현실에서 잇따르는 불운과 직면해 좌절하던 중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게 되자 그 죽음을 은폐하고 유예한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이들이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선택의 과정들을 작가 문미순(57)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려냈다 특히,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들을 모면하는 명주의 삶은 스릴러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 긴박감을 준다.
9일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출간 기념간담회에서 만난 작가는 "단편과 달리 장편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면서 "퇴고하는 과정에서도 혹시 지루한 부분이 없을지, 중언부언하는 부분은 없을지 고민하며 많은 부분을 쳐냈다"고 했다.
"주인공의 엄마가 죽고 그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숨긴다는 설정을 먼저 정해 놓고 쓰기 시작했어요.
계획이 탄로 나지 않을지 독자들이 계속 궁금증을 갖게끔 의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건들을 이어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적인 느낌이 나기도 했을 것 같아요.
"
'재미가 있는 장편소설'을 위해 작가가 자주 염두에 둔 것은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완전한 행복' 등을 쓴 베스트셀러작가 정유정이었다.
그의 작품들을 왜 독자들이 좋아하고 또 잘 읽힌다고 하는지 궁금했다는 작가는 정유정의 소설들 속에서 극의 긴장감을 끌고 가는 힘과 장면 전환 방식 등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 소설에서 '재미'만 추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지만 동시대 우리 소설이 잘 다루지 않았던 간병과 돌봄 노동의 문제를 극심한 빈부 격차의 현실과 묶어 묵직한 사회소설을 탄생시켰다는 의미가 더 크다.
작품의 상당 부분은 제 몸도 못 가누는 늙고 병든 부모를 간병하는 일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생활고, 그로 인해 개인의 삶이 무너져가는 과정으로 채워졌다.
명주는 준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218쪽)
돌봄에 지쳐 벌어지는 간병 살인, 간병 비용을 감당 못 해 파산하는 사람들, 부모의 간병을 위해 직업까지 버리는 일 등이 사회의 병리를 드러내는 현상이라면, 이는 공동체가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명주와 준성은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돈이 많고 여유가 있다면 그렇게 힘든 간병을 하지 않아도 됐겠죠."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명주와 준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중요한 사회문제의 핵심을 건드린 이 작품을 두고 "가장 비천한 현실 속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소설의 본령"에 다가선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작가가 간병과 돌봄의 문제를 소설로 쓰려고 결심한 것은 몇 해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돌보며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고통을 알게 된 개인적 체험 때문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서 뇌졸중으로 몇 달 입원했는데, 이때 늙은 부모를 돌보는 가족과 간병인들의 삶을 알게 됐어요.
80대 모친이 60대 아들을 간병하는 것도 봤고요.
간병과 돌봄노동에 대해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미순은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단편집 '고양이 버스'를 펴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그의 첫 장편이다.
어려서부터 소설가를 꿈꿨지만 등단 전까지는 전업주부로 지냈다는 작가는 등단 후에는 글을 쓰는 틈틈이 베이비시터나 마트 점원 등으로 아르바이트도 했다.
늦은 나이에 최저 시급을 받는 일을 하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실감하게 됐고 사회를 보는 눈도 많이 달려졌다고 했다.
"그런 대접을 받는 분들은 쉽게 다치고 아프고 또 죽기도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인 단편들을 쓰기 시작했지요.
"
작가는 "이 소설이 돌봄에 지친 누군가에게 짧은 휴식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고 다행이겠다"고 했다.
앞으로도 그는 사회와 이 시대가 안은 문제들을 건드리는 소설을 계속 써볼 생각이다.
"첫 장편으로 큰 상을 받게 돼 놀랐어요.
앞으로 문학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요.
세대 갈등과 지방 소멸 같은 문제, 정보화시대에 뒤처진 디지털 약자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계속 써보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
간병·돌봄 홀로 감당하는 이들 이야기…"비천한 현실 속 인간적 진실 길어 올려" "다 큰 아들 둘이 있는데 책을 잘 안 읽거든요.
그런데 제가 쓴 이 소설은 몇 시간 만에 금방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독자들을 지루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쓰면서 늘 염두에 뒀습니다.
"
올해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나무옆의자·2023)은 취약계층의 간병과 돌봄 노동이라는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다룬 장편소설이지만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 할 만큼 가독성이 좋다.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스릴러 같은 스토리 전개에 빛나는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다.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50대 이혼 여성 '명주'와 뇌졸중 아버지를 돌보는 20대 청년 '준성'. 이들은 가혹한 현실에서 잇따르는 불운과 직면해 좌절하던 중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게 되자 그 죽음을 은폐하고 유예한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이들이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선택의 과정들을 작가 문미순(57)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려냈다 특히,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들을 모면하는 명주의 삶은 스릴러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 긴박감을 준다.
9일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출간 기념간담회에서 만난 작가는 "단편과 달리 장편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면서 "퇴고하는 과정에서도 혹시 지루한 부분이 없을지, 중언부언하는 부분은 없을지 고민하며 많은 부분을 쳐냈다"고 했다.
"주인공의 엄마가 죽고 그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숨긴다는 설정을 먼저 정해 놓고 쓰기 시작했어요.
계획이 탄로 나지 않을지 독자들이 계속 궁금증을 갖게끔 의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건들을 이어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적인 느낌이 나기도 했을 것 같아요.
"
'재미가 있는 장편소설'을 위해 작가가 자주 염두에 둔 것은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완전한 행복' 등을 쓴 베스트셀러작가 정유정이었다.
그의 작품들을 왜 독자들이 좋아하고 또 잘 읽힌다고 하는지 궁금했다는 작가는 정유정의 소설들 속에서 극의 긴장감을 끌고 가는 힘과 장면 전환 방식 등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 소설에서 '재미'만 추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지만 동시대 우리 소설이 잘 다루지 않았던 간병과 돌봄 노동의 문제를 극심한 빈부 격차의 현실과 묶어 묵직한 사회소설을 탄생시켰다는 의미가 더 크다.
작품의 상당 부분은 제 몸도 못 가누는 늙고 병든 부모를 간병하는 일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생활고, 그로 인해 개인의 삶이 무너져가는 과정으로 채워졌다.
명주는 준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218쪽)
돌봄에 지쳐 벌어지는 간병 살인, 간병 비용을 감당 못 해 파산하는 사람들, 부모의 간병을 위해 직업까지 버리는 일 등이 사회의 병리를 드러내는 현상이라면, 이는 공동체가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명주와 준성은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돈이 많고 여유가 있다면 그렇게 힘든 간병을 하지 않아도 됐겠죠."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명주와 준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중요한 사회문제의 핵심을 건드린 이 작품을 두고 "가장 비천한 현실 속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소설의 본령"에 다가선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작가가 간병과 돌봄의 문제를 소설로 쓰려고 결심한 것은 몇 해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돌보며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고통을 알게 된 개인적 체험 때문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서 뇌졸중으로 몇 달 입원했는데, 이때 늙은 부모를 돌보는 가족과 간병인들의 삶을 알게 됐어요.
80대 모친이 60대 아들을 간병하는 것도 봤고요.
간병과 돌봄노동에 대해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미순은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하며 첫 단편집 '고양이 버스'를 펴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그의 첫 장편이다.
어려서부터 소설가를 꿈꿨지만 등단 전까지는 전업주부로 지냈다는 작가는 등단 후에는 글을 쓰는 틈틈이 베이비시터나 마트 점원 등으로 아르바이트도 했다.
늦은 나이에 최저 시급을 받는 일을 하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실감하게 됐고 사회를 보는 눈도 많이 달려졌다고 했다.
"그런 대접을 받는 분들은 쉽게 다치고 아프고 또 죽기도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인 단편들을 쓰기 시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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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소설이 돌봄에 지친 누군가에게 짧은 휴식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고 다행이겠다"고 했다.
앞으로도 그는 사회와 이 시대가 안은 문제들을 건드리는 소설을 계속 써볼 생각이다.
"첫 장편으로 큰 상을 받게 돼 놀랐어요.
앞으로 문학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요.
세대 갈등과 지방 소멸 같은 문제, 정보화시대에 뒤처진 디지털 약자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계속 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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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