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 고질적 일손부족에 날씨마저 안 도와줘"…농민들 시름
지자체들, 피해 복구비 지원 등 대책 마련 분주

종잡을 수 없이 변덕을 부리는 날씨 탓에 전국 과수 농가들의 시름이 깊다.

예년보다 이르게 찾아온 포근한 날씨가 영하권 꽃샘추위로 돌변하면서 열매를 맺어야 할 과수 꽃은 얼어붙어 성장을 멈췄다.

때아닌 우박과 해충으로 일부 농가에선 2차 피해 예방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만성적인 농촌 일손 부족 문제까지 더해져 농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과수농가 냉해·우박·해충 피해 속출
◇ 냉해에 우박, 해충 피해까지
충북도는 봄철 저온 현상으로 인해 도내 1천323개 과수농가 641.5㏊에서 냉해가 발생했다고 27일 밝혔다.

피해는 사과 378.5㏊, 복숭아 145.1㏊, 배 32.9㏊, 자두 7.3㏊ 등 과수에 집중됐으며 감자·옥수수 등 기타 작물 냉해 규모도 77.7㏊에 이른다.

도는 올해 3월 말부터 4월 초 기온이 평년보다 다소 높아 과수의 개화 시기가 5∼10일 앞당겨졌는데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냉해로 된서리를 맞은 지역은 충북뿐이 아니다.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소현리에서 배 농사를 짓는 홍영화(79)씨는 최근 1만평 규모의 과수원에서 긴 막대기에 꽃가루를 발라 배꽃에 묻히는 인공수정 작업을 재차 했다.

이달 초 한차례 수정 작업을 했지만, 배꽃이 냉해를 입은 탓에 조금이라도 수정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안성에서는 지난달 27일 영하 5도 안팎을 기록한 이상 저온현상으로 배꽃의 꽃잎과 암술이 까맣게 괴사하는 냉해가 발생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과수농가 냉해·우박·해충 피해 속출
최근엔 강풍에 새벽 서리까지 내려 일찍 핀 배꽃이 땅에 떨어지는 피해까지 발생했다.

홍씨는 "퇴직 후 올해로 30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초봄에 꽃이 괴사하는 피해를 본 건 처음"이라며 "작년에 배를 15㎏짜리 상자로 1만 개 수확했는데 올해는 절반도 채 안 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남 순천, 나주, 곡성 지역 과수농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달 초순 최저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내려가 개화 중인 매실, 배, 복숭아 등 약 828ha에 저온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16일 포항, 경주, 청송, 영양 등 경북 북부와 동부 지역에는 직경 10㎜ 내외의 우박이 쏟아져 사과, 감자 등 농작물 5.2㏊에서 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우박은 봄철에서 여름철로 접어드는 5월에서 6월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4월에 내렸다.

우박은 과수 가지, 어린잎 등에 손상을 입혀 과일 수량에 영향을 미치고 상처 입은 곳에서는 병해 등 2차 피해가 발생한다.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와 대림리에서는 지난 18일 '열대거세미나방' 성충이 발견됐다.

이는 국내에서 올해 들어서는 처음 확인된 사례로 시기적으로는 지난해(5월 17일)보다 한달가량 빨리 발견됐다.

열대거세미나방은 편서풍을 타고 국내로 유입되는 비래(飛來) 해충으로 옥수수와 벼 등 작물을 가리지 않고 갉아먹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준다.

도 농업기술원은 올해 열대거세미나방 유입 시기가 빨라지고 이상 고온 현상이 발생하면서 국내로 유입될 비래해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과수농가 냉해·우박·해충 피해 속출
◇ 농번기 고질적 일손 부족
설상가상으로 농촌 일손 구하기도 녹록지 않아 농민들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충북에서는 올해 2천152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입국해 730개 농가에 배치된다.

예년과 비교하면 약 2배 증가했지만 지난해 하반기에 진행한 수요조사 인원(2천542명·1천180개 농가)보다는 부족한 실정이어서 인력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급감했던 계절근로자 배정 규모가 점차 회복되고 있다"며 "다만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농번기 인력난은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창 농번기를 맞은 경기도 여주에서는 최근 법무부의 외국인 불법체류자 집중 단속으로 영농작업에 투입된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잇따라 적발돼 농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주시 여주읍에서 30여년간 고구마 농사를 짓는 노모(50)씨는 "3~4월은 파종하고 고구마순을 옮겨심고 출하용 고구마 세척 등을 하느라 일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이때 불법체류 단속을 하는 건 농가 여건을 생각하지 않는 처사"라고 말했다.

단속당한 농가들은 대부분 고구마와 감자, 땅콩 등 밭농사를 짓는 농가다.

농기계를 많이 사용하는 논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작업이 많다고 한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과수농가 냉해·우박·해충 피해 속출
◇ 지자체들 대책 마련 안간힘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에선 관련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히 나서는 모습이다.

전남도는 내달 12일까지 저온 피해 신고를 받아 복구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복구비는 피해 정도에 따라 과수류 1ha 기준 농약대 249만원을 지원한다.

피해율 50% 이상 농가에는 생계비와 농업정책자금 상환 연기 및 이자 감면, 재해 대책경영자금 융자 지원, 고등학생 학자금 감면 등을 한다.

경남도는 봄철 농번기를 앞두고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안정적인 인력 수급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도는 농촌인력중개센터를 지난해 18개소에서 2개소를 추가해 내국인 근로자 23만여명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1개월 미만의 단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고용인력이 필요한 농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함양군에서 처음으로 '공공형 계절근로제도'를 시범 도입해 농번기 일손을 돕는다.

공공형 계절근로제도는 지자체가 선정한 운영 주체(농협)가 외국인 계절근로자와 근로계약을 하고 농가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농가는 노동력 이용료를 운영 주체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은 기후 영향으로 인한 꿀벌 개체수 감소 등에 대비해 드론을 활용한 인공수분에 나섰다.

울주군은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6개 과수원에서 드론 활용 배꽃 수분 작업을 벌여 착과량과 인건비 절감액 등 효과를 분석하기로 했다.

(백나용 박정헌 이우성 이승형 이상현 전승현 천경환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