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희 넬보스코 남촌빵집 총괄 파티셰가 18일 서울 회현동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이충희 넬보스코 남촌빵집 총괄 파티셰가 18일 서울 회현동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서울 시내 남대문시장을 마주 본 회현동. 큰길에서 80m쯤 벗어났을까. 남산 방향으로 이어진 골목 한 귀퉁이에서 갓 구운 빵 냄새가 솔솔 났다. ‘넬보스코 남촌 빵집’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개점해 2년이 채 안 돼 ‘두유 소금빵’ 등 속 편한 빵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베이킹을 책임지고 있는 이충희 총괄 파티시에(40·사진)를 26일 만났다.

넬보스코 남촌 빵집이 ‘베지밀’을 생산 판매하는 정식품의 베이커리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파티시에는 정식품이 베이커리를 개점할 때 정성수 정식품 회장의 러브콜을 받아 합류했다. 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총괄한다.

이 파티시에는 “화려하지 않더라도 속이 편안한 빵,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빵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건강식’을 고집하는 정식품의 경영철학과 닮았다고 평가받는 부분이다.

그는 베지밀을 활용해 소금빵, 식빵, 스콘 등을 개발해 연달아 히트 상품으로 만들었다. 넬보스코 빵은 시중 빵보다 설탕 함량을 20% 낮추고 천연 발효종으로 장시간 저온 숙성한다.

신제품을 개발할 땐 정 회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의 시식·평가를 반복적으로 거친다. 두유로 만든 빵 10여 종이 입소문 나면서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 늘었다.

‘호텔 베이커리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합리적 가격을 적용한다는 넬보스코의 원칙을 어떻게 사수할 수 있을까.’ 최근 이 파티시에의 고민이다.

베이커리업계는 공통으로 원재료비 상승과 인력난 압박을 받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요 원재료 중 하나인 두유를 마음껏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이 파티시에는 활짝 웃었다.

이 파티시에는 일본 양대 제과학교 중 한 곳인 도쿄제과학교 출신이다. 일본 유명 파티시에인 다카기 야스마사의 ‘르 파티시에 다카기’에서 파트장, 글로벌 레스토랑 체인 ‘이탈리’ 다이칸야마점에서 제과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그는 대전 최대 베이커리 성심당에서 보조를 하다 2005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학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호텔 등에서 시간이 나는 대로 아르바이트했다.

그러던 중 일본 방송사 KNTV에서 상금 30만엔(약 300만원)이 걸린 K팝 콘테스트에 참가해 대상을 받으면서 인생이 확 바뀌었다. 낮엔 베이킹 공부, 밤엔 연습생 생활을 했다.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으로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류시원 씨의 코러스 활동도 했다.

2013년 일본 기획사 오디션에 도전해 가수로 공식 데뷔했다. ‘LG루키스’라는 3인조 보이그룹으로 활동하며 오리콘차트 8위까지 올랐다. 그는 “데뷔 직후 한·일 관계가 악화하고 한류 열풍이 꺾이기 시작했다”며 “공황장애까지 오며 2015년 가수 활동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고생스러웠던 일본 생활은 자양분이 됐다.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파티시에와 가수는 닮은 점이 있어요. 가수 생활을 하면서도 베이킹에 대한 진심은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이 파티시에는 앞으로 두유와 쌀을 이용해 소화가 잘되는 여러 가지 빵을 추가로 개발할 계획이다. 그는 “두유 베이커리라는 새로운 베이킹 장르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이 즐기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1973년 설립된 정식품은 소아과 의사였던 고(故) 정재원 명예회장이 유당불내증을 앓는 유아들을 위해 개발한 베지밀을 50년간 판매해왔다. 2021년 처음으로 외식업에 진출해 연면적 967㎡(262평) 규모로 넬보스코를 개점했다. 정식품은 넬보스코를 추가로 여는 것도 검토 중이다.

글=하수정 기자/사진=임대철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