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선비들의 문학 교류…새로운 시조 200수 담긴 가집 확인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구사회 선문대 명예교수, 충남 아산서 편찬된 '직암영언' 자료 분석
"시조-화답 시조 함께 수록한 형태 드물어"…문학적 가치·의의 주목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시조 작품 200수를 수록한 조선 후기 가집(歌集·시가를 모아 엮은 책)이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구사회 선문대 명예교수는 "19세기 충남 아산에서 활동했던 직암(直菴) 조태환(1772∼1836)을 포함해 3명의 시조 작품을 담은 자료인 '직암영언'(直菴永言)을 새로 발굴했다"고 24일 밝혔다.
구 명예교수는 10여 년 전 자료를 입수한 뒤, 기존의 시조 작품들과 비교·분석해왔다.
연구 결과, 이번에 확인된 직암영언은 순조(1800∼1834) 재위기인 1826년 편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17.2㎝, 세로 26.5㎝ 크기의 서책 형태인 이 자료는 총 47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목인 '직암영언'은 조태환의 호를 따서 지었으며 총 200수의 시조와 가사 2편이 담겨 있다.
시조 가운데 조태환이 지은 작품이 135수이고 정덕유(1795∼1829)와 이석빈(1795∼1832)이 이에 화답한 시조가 각각 12수와 10수다.
이석빈이 지은 시조 43수도 포함됐다.
작품은 성리학의 우주론적인 문제나 인간의 심성 문제, 유학 경전의 주요 내용을 다룬 것부터 서원을 방문한 뒤 느낀 소감이나 내면 의식을 형상화한 작품까지 내용이 다양하다.
직암영언은 내용이나 구성에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여겨진다.
구 명예교수는 "직암영언에 수록된 시조들은 '한국시조대사전', '고시조대전' 등 역대 시조 사전에 수록된 작품과 비교했을 때 기존 작품과 어절도 거의 겹치지 않는다"며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이라고 밝혔다.
정덕유, 이석빈 두 사람이 화답 시조와 함께 각자의 소감을 다룬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구 명예교수는 "서문은 정덕유가, 간행 경위 등을 간략하게 정리한 발문(跋文)은 이석빈이 썼다.
특정인의 시조 작품에 후학들이 화답 시조를 지어 수록한 가집 형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조태환과 정덕유, 이석빈 모두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으리라 추정했다.
구 명예교수는 "세 명 모두 이렇다 할 관직에 오른 적이 없는 무명에 가까운 선비"라며 "문중 족보 등을 통해 각각의 생몰 연대와 행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산에서는 18세기 전반기에 초기 형태의 시조집으로 보이는 자료도 나온 바 있으나, 직암영언을 통해 지방 문인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일련의 시조 활동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구 명예교수는 직암영언이 19세기 사대부들의 시조 창작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시조 작품이 200수라는 점은 보기 드문 사례로, 우리 (시조) 문학사의 범위를 넓힌 셈"이라며 "19세기에 나온 '3대 사대부 시조집' 중 하나로 규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를 다음 달 20일 열리는 국어국문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시조-화답 시조 함께 수록한 형태 드물어"…문학적 가치·의의 주목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시조 작품 200수를 수록한 조선 후기 가집(歌集·시가를 모아 엮은 책)이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구사회 선문대 명예교수는 "19세기 충남 아산에서 활동했던 직암(直菴) 조태환(1772∼1836)을 포함해 3명의 시조 작품을 담은 자료인 '직암영언'(直菴永言)을 새로 발굴했다"고 24일 밝혔다.
구 명예교수는 10여 년 전 자료를 입수한 뒤, 기존의 시조 작품들과 비교·분석해왔다.
연구 결과, 이번에 확인된 직암영언은 순조(1800∼1834) 재위기인 1826년 편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17.2㎝, 세로 26.5㎝ 크기의 서책 형태인 이 자료는 총 47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목인 '직암영언'은 조태환의 호를 따서 지었으며 총 200수의 시조와 가사 2편이 담겨 있다.
시조 가운데 조태환이 지은 작품이 135수이고 정덕유(1795∼1829)와 이석빈(1795∼1832)이 이에 화답한 시조가 각각 12수와 10수다.
이석빈이 지은 시조 43수도 포함됐다.
작품은 성리학의 우주론적인 문제나 인간의 심성 문제, 유학 경전의 주요 내용을 다룬 것부터 서원을 방문한 뒤 느낀 소감이나 내면 의식을 형상화한 작품까지 내용이 다양하다.
직암영언은 내용이나 구성에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여겨진다.
구 명예교수는 "직암영언에 수록된 시조들은 '한국시조대사전', '고시조대전' 등 역대 시조 사전에 수록된 작품과 비교했을 때 기존 작품과 어절도 거의 겹치지 않는다"며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이라고 밝혔다.
정덕유, 이석빈 두 사람이 화답 시조와 함께 각자의 소감을 다룬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구 명예교수는 "서문은 정덕유가, 간행 경위 등을 간략하게 정리한 발문(跋文)은 이석빈이 썼다.
특정인의 시조 작품에 후학들이 화답 시조를 지어 수록한 가집 형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조태환과 정덕유, 이석빈 모두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으리라 추정했다.
구 명예교수는 "세 명 모두 이렇다 할 관직에 오른 적이 없는 무명에 가까운 선비"라며 "문중 족보 등을 통해 각각의 생몰 연대와 행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산에서는 18세기 전반기에 초기 형태의 시조집으로 보이는 자료도 나온 바 있으나, 직암영언을 통해 지방 문인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일련의 시조 활동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구 명예교수는 직암영언이 19세기 사대부들의 시조 창작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시조 작품이 200수라는 점은 보기 드문 사례로, 우리 (시조) 문학사의 범위를 넓힌 셈"이라며 "19세기에 나온 '3대 사대부 시조집' 중 하나로 규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를 다음 달 20일 열리는 국어국문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