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희 넬보스코 남촌빵집 총괄 파티셰가 갓 구운 두유 소금빵을 들고 오븐 앞에 서 있다. /사진= 임대철 기자
이충희 넬보스코 남촌빵집 총괄 파티셰가 갓 구운 두유 소금빵을 들고 오븐 앞에 서 있다. /사진= 임대철 기자
서울 시내 한복판 남대문시장을 마주 본 회현동. 큰 길에서 80m쯤 벗어났을까. 남산 방향으로 이어진 골목 한 귀퉁이 갓 구운 빵 냄새가 솔솔 난다. '넬보스코 남촌 빵집'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개점 후 2년도 되지 않아 '두유 소금빵' 등 속이 편한 빵으로 일대에선 이미 유명한 장소다. 이곳에서 베이킹을 책임지고 있는 이충희 총괄 파티셰(40)를 24일 만났다.

○'속 편한 빵' 비결은?

넬보스코 남촌 빵집이 '베지밀'을 만드는 정식품의 베이커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식품이 남촌에 베이커리를 개점할 때부터 합류한 이 파티셰는 제품 개발부터 베이킹까지 총괄하고 있다. 그를 발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정성수 정식품 회장.

이 파티셰는 "겉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속이 편안한 빵,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빵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의 제과제빵 원칙은 '건강식'을 고집하는 정식품의 경영철학에 맞아 떨어졌다.

그는 베지밀을 활용해 소금빵, 식빵, 스콘, 도넛 등을 개발해 연달아 히트상품으로 만들었다. 넬보스코 빵은 시중 빵보다 설탕 함량을 20% 낮추고 천연 발효종으로 저온 장시간 숙성을 거친다. 신제품을 개발할 땐 정 회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의 시식과 평가를 반복적으로 거친다. 두유로 만든 10여종의 빵은 입소문이 나면서 올 1분기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35% 늘었다.

"'호텔 베이커리 품질에 합리적 가격을 적용한다'는 넬보스코의 원칙을 어떻게 사수할 수 있을까." 최근 이 파티셰의 고민이다. 베이커리 업계는 공통적으로 원재료비 상승과 인력난 압박을 받고 있다. "다행인 것은 주요 원재료 중 하나인 두유를 마음껏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파티셰는 웃었다.

○"무대 올랐지만 베이킹 진심은 변함 없어"

두유로 만든 식빵. /제공= 넬보스코 남촌 빵집
두유로 만든 식빵. /제공= 넬보스코 남촌 빵집
그는 일본 양대 제과학교 중 한 곳인 도쿄제과학교 출신이다. 일본 유명 파티셰인 다카기 야스마사의 '르 파티셰 다카기'에서 파트장을, 글로벌 레스토랑 체인인 '이탈리' 다이칸야마점에서 제과장을 지내는 등 탄탄한 이력을 쌓았다.

이렇게 파티셰로 자리잡기까지 그는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대전 지역 최대 베이커리인 성심당에서 보조 일을 하다 2005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비싼 학비를 벌기위해 편의점, 호텔 등 시간이 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다. 교통비를 아끼려 매일 1시간 넘게 자전거로 학교에 가고, 반찬을 살 돈이 없어 아침에 남긴 국물로 저녁밥을 말아먹는 시간을 견뎌야했다.

그러던 중 일본 방송사 KNTV에서 상금 30만엔(약 300만원)이 걸려있는 K팝 콘테스트에 참여해 대상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낮엔 베이킹 공부를 하고 밤엔 연습생 생활을 했다. 방학때는 당시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으로 일본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류시원씨의 코러스 활동도 했다.

그 뒤 파티셰의 길을 걸었지만 무대 위에서 느꼈던 행복을 잊지 못했다. 2013년 일본 기획사 오디션에 도전해 가수로 공식 데뷔한 이유다. 'LG루키스'라는 3인조 보이그룹으로 활동하며 오리콘차트 8위까지 올랐다. 그는 "가수 데뷔이후 한일관계가 악화하고 한류 열풍은 꺾이기 시작했다"며 "여러 문제로 공황장애까지 오면서 결국 2015년 가수활동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두유 베이커리로 새로운 장르 열 것"

그에게 고생스러웠던 일본 생활은 인생의 자양분이 됐다. 그는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파티셰와 가수는 닮은 점이 있다"면서 "베이킹에 대한 진심은 평생 흔들린 적이 없다"고 했다.

이 파티셰는 앞으로 두유와 쌀을 이용해 소화가 잘 되는 여러가지 빵을 추가로 개발할 계획이다. 그는 "두유 베이커리라는 새로운 베이킹의 장르를 확실히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1973년 설립된 정식품은 소아과 의사였던 고(故) 정재원 명예회장이 유당불내증을 앓는 유아들을 위해 개발한 베지밀을 50년간 판매해왔다.

2021년 처음으로 외식업에 진출해 연면적 967㎡(262평) 규모로 넬보스코를 개점했다. 베이커리와 이탈리안 레스토랑, 루프탑 라운지&바 등을 운영하고 있다. 향후 넬보스코 2호, 3호점 등을 개점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