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법 공포 후 첫 입장 발표 "필요한 개혁…대화의 문 열려있다"
야당·노조는 "국민 분노 이해 못해"…5월 1일 대규모 시위 예고
마크롱 "연금개혁 합의 못이뤄 유감…100일간 다른 개혁에 속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하는 연금 개혁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해 유감이라면서도 이는 필요한 개혁이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TV로 방송한 대국민 연설에서 정년 연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연금을 줄이거나, 납입금을 높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주말 사이 연금개혁법을 공포하고 처음으로 입장을 밝힌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 수개월 동안 협의했어도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 반대 시위를 언급하면서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며 노동조합과 대화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주 노조 대표들에게 18일 엘리제궁에서 만나 대화하자고 제안했으나, 노조는 연금개혁법에 서명한 마크롱 대통령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거절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앞으로 100일 동안 교육, 의료 환경을 개선하고 청소년 범죄와 불법 이주 통제를 강화하는 등 프랑스를 위한 개혁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조만간 구체적인 로드맵을 공개할 예정이며, 프랑스 국경일인 7월 14일에 맞춰 첫 번째 성과를 발표할 수 있도록 개혁에 속도를 내겠다고 덧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나서 연금 개혁을 비판해온 야당 정치인들과 노조는 연설에 알맹이가 없었다며 프랑스인들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하원 제1야당인 좌파 연합 뉘프(Nupes)의 주축인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는 트위터에 마크롱 대통령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마크롱 대통령과 2017년, 2022년 대선에서 맞붙은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등을 돌리고 고통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12년만에 연합 전선을 구축한 8개 주요 노조는 성명을 내어 마크롱 대통령이 "여전히 국민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5월 1일 프랑스 전역에서 국민의 진짜 분노를 들려주겠다고 경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월 하원에서 연금개혁법안의 부결 가능성이 커지자 표결을 생략하는 헌법 특별 조항을 사용했고, 이를 계기로 연금 개혁에 대한 불만이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다.

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인 헌법위원회는 지난 14일 연금개혁법안에 담긴 36개 조항 중 정년 연장 조항을 포함한 30개항이 헌법에 합치한다고 판단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마크롱 대통령은 헌법위원회의 결정이 나온 당일 법안에 서명했고, 다음날 관보에 게재하면서 연금 개혁법은 법률로서 효력을 가졌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퇴직 연령은 현행 62세에서 올해 9월 1일부터 매년 3개월씩 늘어나 2030년 64세가 된다.

아울러 연금을 100% 받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 기간은 기존 42년에서 2027년부터 43년으로 1년 늘어난다.

대신 최소 연금 상한을 최저임금의 75%인 월 1천15유로(약 146만원)에서 최저임금의 85%인 월 1천200유로(약 173만원)로 인상한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고령 노동자 고용 지표 공개를 의무화하고, 고령 노동자를 위한 특별 계약을 신설하는 조항 등은 헌법위원회의 헌법 불합치 판단에 따라 삭제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