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되살린 팝 황제의 'G장조 변주'…왜 빌보드에선 사라졌을까 [오현우의 듣는 사람]
음악학자들이 ‘팝의 황제’로 일컫는 마이클 잭슨(사진)은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곡이 있다. 1988년 2월 발매한 노래 ‘맨 인 더 미러’다. 클래식 전문 매체 클래식 FM은 마이클 잭슨의 ‘맨 인 더 미러’를 두고 “100년 넘는 팝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변주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대중문화 비평지 숏리스트는 이 곡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준 19곡’ 중 하나로 꼽았다.

평단의 폭발적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장조 ‘변주(Modulation)’ 때문이다. 노래의 전반부는 장음계 중 G장조로 진행된다. 2분50초 무렵 화음이 바뀐다. 가스펠 음악에서 나올 법한 합창이 터져 나오면서 G#장조(내림 A장조)로 바뀐다. 집중하지 않으면 조성이 달라진 걸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 곡은 변주의 교과서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이클 잭슨을 중심으로 미국 대중음악에선 장음계 변주가 유행했다. 후반부에 코러스와 함께 화음 체계를 바꾸는 식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음정을 바꾸며 흐름을 박진감 있게 바꿨다. 한동안 대중음악을 지배한 양식이다.

실제로 1958~1990년 빌보드 핫100 차트 1위 곡을 살펴보면 52%가량이 이 방식으로 연주된다. G장조를 중심으로 C장조와 D장조가 주로 쓰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아노와 기타로 연주하기 쉬운 코드라서다. 이 시기 빌보드 핫100 차트 1위 곡 가운데 C장조는 13%로 가장 많이 쓰였고, G장조는 9%, D장조가 8%를 차지했다. 세 장조가 12음계 중 대표적으로 쓰였다.

악보를 지배하던 세 가지 장조는 1990년대 들어 자취를 감추게 된다. 힙합이 대중음악을 장악하기 시작해서다. 선율과 화음보다는 리듬을 강조한 음악이 대두됐다. 또 디지털 녹음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타와 피아노의 중요도가 줄었다. 키보드를 몇 번 누르면 장음계가 달라지고 화음을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2020년 빌보드 차트 1위 곡은 12장조 모두 두루 쓰이게 됐다. 조 베넷 버클리음대 교수는 “클릭 몇 번이면 작곡 프로그램 위에 화음이 초 단위로 쌓이다 보니 작곡가들이 점점 선형적인 흐름을 무시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BTS)
방탄소년단(BTS)
대중의 관심이 분산되면서 장조 사용이 다채로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1990년을 기점으로 빌보드는 차트 집계 방식을 바꿨다. 음반 판매점의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 데이터로 측정하는 사운드 스캔을 도입했다. 이전까진 음반사에 전화를 걸어 판매량을 집계했다. 대형 음반사는 로비를 통해 이 지표를 왜곡했다. 소수의 특정 음반사만 상위권을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집계 방식이 바뀐 뒤 힙합 작곡가와 인디 밴드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불후의 록밴드 너바나, 스키드로 등이 이름을 알린 시점이다.

대중음악이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게 되면서 마이클 잭슨이 창시한 변주 방식도 자취를 감췄다. 2004년 빌보드 차트 1위 곡 중 변주를 쓴 곡이 10% 미만으로 줄더니 2010년부터 0%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다만 BTS가 2020년 선보인 디스코풍의 노래 ‘다이너마이트’에는 장조 변주가 계속된다. 작곡부터 레트로 방식을 택한 것이다.

오늘날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음악들에도 이런 특성이 반영됐다. 가수가 노래하기 전에 나오는 ‘전주’와 절과 절을 이어주는 ‘간주’ 등의 길이가 짧아졌다. 자연스레 한 곡의 평균 연주 시간도 줄었다. 스태티스타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발매된 곡의 평균 재생 시간은 197초를 기록했다. 1990년 259초에서 대폭 줄었다. 녹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1930년(195초)보다 2초 길다.

전문가들은 음악 청취의 방식이 달라지며 곡 길이가 짧아졌다고 분석한다. 쇼트폼(짧은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의 영향도 컸다. 특정 부분만 잘라 동영상에 붙여넣어서다. 노래를 감상하는 데 쓰지 않고 영상을 꾸미는 데 쓰는 것이다. 작곡가들도 이 현상을 따라 후렴구와 클라이맥스를 쓰는 데 주력한 셈이다. 영국 가디언은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버글스의 곡을 소개하며 “틱톡이 ‘간주’를 죽였다”고 은유하기도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