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7월 9일까지 국보 6건·보물 14건 등 총 190건 선보여
대구 비산동 출토 청동기 등 고고 유물도 처음 다뤄…여러 회화 작품 주목
어둠 밝히는 '인왕제색도'의 멋…대구서 만나는 '이건희 컬렉션'(종합)
주변을 밝히던 빛이 사라지자 순간 정적이 흐른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공간을 몇 발짝 걷자 은은한 불빛이 나타난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비가 그친 뒤의 인왕산 모습이었다.

바위산과 골짜기, 구릉, 그리고 산자락에 걸친 구름까지. 짙고 연한 먹으로 하나하나 그려나간 그림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있지 않았다.

오랜 기간 봐온 인왕산의 모습 그대로였다.

진경산수화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건희 1' 즉,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다.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평생에 걸쳐 모았던 옛 그림과 도자 등 우리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대구에서 열린다.

국립대구박물관은 이달 11일부터 '어느 수집가의 초대' 특별전을 선보인다고 10일 밝혔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증 1주년 기념 전시를 일부 재구성해 대구·경북 지역에 소개하는 자리로, 광주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지역 순회 전시다.

전시에서는 국보 6건, 보물 14건을 포함해 총 190건 348점의 기증품을 소개한다.

어둠 밝히는 '인왕제색도'의 멋…대구서 만나는 '이건희 컬렉션'(종합)
개막을 하루 앞두고 언론에 공개된 전시장은 '어느 수집가의 정원'에서 시작됐다.

박물관 중앙홀에는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석인상(石人像·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조형물) 5점을 두고 꽃, 나무로 꾸몄다.

우리 전통 정원인 화계(花階)로 연출한 공간이다.

전시는 '어느 수집가'와 나누는 대화, 그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심취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책장에 서책과 문방구, 골동품을 그려 넣은 그림인 '책가도'(冊架圖)를 표현한 전시 영역에서는 중국 한나라 시대 도장부터 짐승 모양 조각, 촛대 받침, 연적 등까지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유물을 모았다.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수집가'와의 인연에 주목한 유물은 눈에 띈다.

대구 비산동 와룡산 북쪽에서 발견한 청동기, 경북 고령군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지는 보물 '전(傳) 고령 일괄 유물' 등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마치 도장으로 찍은 듯한 문양이 돋보이는 인화문(印花文) 분청사기도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전시품이다.

어둠 밝히는 '인왕제색도'의 멋…대구서 만나는 '이건희 컬렉션'(종합)
장진아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도장에 문양을 새겨 찍은 인화문은 영남 지역의 상징과도 같은 기법"이라며 "대구와 전시품 간 연결고리도 주목해서 감상해달라"고 조언했다.

1부 전시의 백미는 '인왕제색도' 그림 1점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약 400㎡ 규모 전시실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 공간에서는 대표 그림 1점을 감상할 수 있다.

장 학예연구관은 "'인왕제색도'는 진경산수화의 최고봉인 작품으로서 여러 수집품 가운데 상징적인 번호 1번을 부여했다"며 "비 온 뒤의 산과 숲의 기운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수집품으로의 심취' 전시실은 회화와 도자의 조화에 주목할 만하다.

강세황(1713∼1791)의 '피금정도'(披襟亭圖), 장승업(1843∼1897)의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병풍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기증품이 전시실을 가득 채운다.

어둠 밝히는 '인왕제색도'의 멋…대구서 만나는 '이건희 컬렉션'(종합)
꽃과 새, 동물을 소재로 한 '화조영모도'를 그릴 때 안중식(1861∼1919), 조석진(1853∼1920) 등의 서화가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하는 것도 감상의 한 포인트다.

전시장에는 '나라의 보물이 될 병'이라는 평가받았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진가를 알아본 이건희 회장 일가가 수집한 뒤 국보로 지정된 '백자 청화 대나무무늬 각병' 등도 볼 수 있다.

이번 특별전은 무료로 열린다.

다만 관람객 안전을 위해 실시간 입장 인원은 120명으로 제한된다.

김규동 국립대구박물관장은 "문화유산에 대한 기증자의 사랑을 많은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한 전시"라며 "대구와 관련한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고 박물관 공간도 전시의 한 부분으로 활용한 점을 주목해달라"고 밝혔다.

전시는 7월 9일까지.
어둠 밝히는 '인왕제색도'의 멋…대구서 만나는 '이건희 컬렉션'(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