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를 졸업한 이현지 씨(27·가명)는 지난해 하반기 취업 시장에서 혹독한 현실을 마주했다. 학점 4.16(4.5 만점), 토익 930점, 토익스피킹 AL(170)에 1년8개월간 세 곳에서 인턴 경험을 쌓고, 마케팅 공모전에서 세 차례 수상하는 등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스펙을 갖춰 취업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이씨가 40여 개 중견·대기업에 지원한 결과 서류라도 통과한 곳은 9곳에 불과했다. 이씨는 “이 정도 스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고스펙 인재가 넘쳐나는 느낌”이라며 “올해 상반기에도 취업이 안 되면 계약직이라도 입사를 고민 중”이라고 하소연했다.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공채 한파는 올해 상반기에도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즉시 전력 투입이 가능한 인력만 선별해 뽑는 ‘체리피킹(cherry-picking) 채용’을 강화하면서 청년 취업 시장은 역대 최악 수준의 한파를 맞고 있다. 정부도 청년 취업률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내고 있다.취업 한파 넘어 채용 빙하기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조사한 ‘2025년 기업 채용 계획’에 따르면 채용 계획을 확정한 기업 비율은 65.6%로 최근 3년 중 가장 낮았다. 특히 대기업의 확정률은 전년 대비 13%포인트 하락한 54.0%에 그쳤다. 채용 규모도 줄어드는 추세다. 한 자릿수 채용을 계획하는 기업이 76.8%에 달하며, 대기업 중 세 자릿수 이상을 채용하겠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정부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에서 집계한 지난달 구직자 대비 일자리 수(구인배수)는 0.28(100명당 28개꼴)로 외환위기 때인 1999년 1월(0.23) 후 2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좁아진 취업문은 SKY(서
“대학 생활 내내 동기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졸업했어요. 취업 문제로 서로 의지하거나 고민을 공유할 사람이 별로 없어요.”18일 경기 양주시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업준비생 A씨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서 실습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대학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사회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며 “막상 취업하려고 보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A씨는 21학번이다.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2020년 이후 대학에 입학한 코로나19 세대가 올해 사회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코로나19학번’이란 코로나19 유행 당시 대학에 입학해 ‘제대로 된 대학 생활을 해보지 못한 세대’를 일컫는다. 코로나 시기에 취업 준비에 매달렸을 18·19학번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들은 정상적인 대면 교육은 물론 MT, 동아리 등 사회적 관계를 맺을 기회도 현저히 부족했다. 선배나 교수로부터 ‘암묵지’를 전수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것은 물론 인턴, 아르바이트 등 일 경험을 쌓을 기회도 크게 부족했다. 그렇다 보니 심리 상태도 취약하다. 보건복지부의 ‘우울증·조울증·조현병 초진 환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대학생의 36.4%가 경증 이상 우울증을 겪었다. 한 간호학과 교수는 “코로나19를 전후해 대학 생활을 한 청년들의 상당수가 사회적 상호작용 부족에 따른 ‘사회공포증’을 갖고 있다”며 “최근엔 ‘MZ세대’로 치부되지만 전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세대”라고 말했다.정부는 코로나19학번 세대가 취업활동 능력이 떨어지고 심리적 취약성이 크다는 판단 아래 지원 사업
취업이 힘들어 음식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던 20대 A씨는 하던 일과 비슷한 물건 배송 일을 찾아보던 중 한 회사에서‘서류 배송 업무를 의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의 ‘고객’으로부터 ‘대출 상환금’을 전달받아 회사에 입금하면 건당 5만~10만원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회사의 제안대로 수개월간 일한 A씨는 여느 때처럼 고객에게 돈을 건네받던 중 잠복 경찰에 체포돼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알고 보니 이 ‘꿀알바’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을 받아 전달하는 일이었던 것.1심 법원은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지만 2심 법원은 “범죄 집단이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취업이 절실한 사회초년생에게 접근해 속이고 있다”며 A씨에게 범죄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최종 판단을 기다리는 A씨는 “고액 아르바이트(알바)에 눈이 멀어 인생을 망칠 판”이라며 “온라인 면접까지 봤기 때문에 정상적인 회사인 줄 알았다”고 고개를 숙였다.1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최악의 불황이 불어닥치면서 혹한 마음에 ‘고액 알바’에 뛰어들었다가 전과자로 전락하는 청년이 부쩍 늘고 있다. 한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청년들이 고액 알바, 고소득 부업을 찾다가 사기 범죄집단에 휘말리는 사례가 최근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취업난과 생활고에 절박한 청년들이 자기 몸을 내주면서 임상시험 알바를 뛰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취업준비생 C씨는 한 유명 제약사 ‘생동성 실험’에 참여해 2박3일 동안 각종 약을 먹고 검사를 마친 뒤 122만원을 받았다. 화장품 시용 알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