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열흘 앞두고 허리 부상…통증 사라진 게 원동력"
"올림픽 메달, 세계신기록, 이상화 언니와 비교…모두 부담스럽지 않아"
"진천선수촌 근처에서 만난 유기견 모카, 가장 힘이 되어주는 친구"

'스피드는 나의 힘' 김민선 스토리…"첫 대회 3명 중 3등 했죠"
스피드스케이팅 김민선(23·의정부시청)이 '이상화 후계자'라는 수식어를 벗고 '신(新) 빙속여제'라는 타이틀을 얻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주니어 시절 세계 정상급 기량을 펼치며 큰 기대를 받았던 김민선이었지만, 시니어 무대 입성 후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쉬운 평가를 받아온 김민선은 지난해 겨울부터 스스로 '만년 유망주'라는 껍질을 깨고 놀라운 성과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 실력의 선수들이 겨루는 2022-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여자 500m 금메달을 차지하더니 이어진 국제대회마다 '금빛 질주'를 이어가며 빙속판을 뒤흔들었다.

그동안 국제대회에 집중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삼갔던 김민선은 2022-2023시즌을 마친 뒤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민선은 2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약 한 시간에 걸쳐 유년 시절부터 올 시즌까지 이어진 '스피드스케이팅 인생 스토리'를 풀어놨다.

'스피드는 나의 힘' 김민선 스토리…"첫 대회 3명 중 3등 했죠"
◇ 친구 따라 배운 스케이트…첫 대회 성적은 3명 출전에 3등
김민선이 처음 스케이트를 배운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취미로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는 친구를 따라 경기도 과천 빙상장을 따라갔다가 스케이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씩씩한 성격의 김민선은 피겨스케이팅보다 쇼트트랙이 어울릴 것 같다는 아버지의 조언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쇼트트랙 교습을 받았고, 그 빈도가 주 2회, 주 3회로 늘어났다.

김민선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정식 대회에 출전했는데 출전한 3명의 선수 중 3등을 했다"고 웃은 뒤 "경기를 본 선생님이 스피드스케이팅을 권유해 그해 겨울부터 종목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때 견문을 넓힌 것이 전문 선수로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소개했다.

김민선은 중학교 1학년 재학 당시 국제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잡았고, 조금씩 전문 선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가파른 발전 속도를 지켜본 부모님은 딸의 도전을 응원했고, 김민선은 오롯이 훈련에만 전념했다.

김민선은 "부모님은 내가 행복한 일을 하길 바랐다"며 "부모님의 교육 철학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살 위의 언니와 5살 터울의 남동생이 적잖은 희생을 했다"며 "언니와 동생에게 매우 미안하고 고맙다"라고도 했다.

'스피드는 나의 힘' 김민선 스토리…"첫 대회 3명 중 3등 했죠"
◇ 날아간 주니어 세계기록…도전을 배우다
김민선은 서문여고 입학 후 국내 최고의 주니어 선수로 성장했다.

당시 외국 선수들보다 왜소한 체격(현재 신장 168㎝)을 지녔지만, 타고난 승리욕을 바탕으로 악바리처럼 훈련해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는 2017년 10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ISU 인터내셔널 대회 폴클래식 여자 500m에서 37초70을 찍으며 이상화(은퇴)가 갖고 있던 세계주니어기록(37초81)을 10년 만에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김민선은 주최 측이 도핑 검사를 하지 않는 과실로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김민선은 "당시 숙소에서 소식을 듣고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민선은 주저앉지 않았다.

두 달 뒤 열린 ISU 월드컵 4차 대회에서 37초78을 찍어 다시 한번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해당 대회는 주니어 선수로 뛸 수 있는 마지막 무대였다"며 "힘든 일이 있더라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던 시기"라고 돌아봤다.

'스피드는 나의 힘' 김민선 스토리…"첫 대회 3명 중 3등 했죠"
◇ 평창올림픽 코 앞서 다친 허리…좌절의 기억
승승장구하던 김민선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열흘 앞두고 허리를 다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줄을 잡고 코너링 훈련을 하다가 극심한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며 "여러 군데 병원에서 많은 검사를 받았고 치료했지만, 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쟁은 불가능했다.

그는 16위의 아쉬운 성적으로 첫 올림픽 무대를 마쳤다.

허리 상태는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계속 김민선을 괴롭혔다.

그는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어서 웨이트 훈련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근력, 체력 훈련이 부족해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힘든 건 나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라며 "몸이 나아진 뒤에도 좋은 모습을 보일지 확신이 없었다.

참 답답했던 시기"라고 돌아봤다.

이때 소속팀 지도자인 제갈성렬 감독이 큰 힘이 됐다.

김민선은 "제갈 감독님은 기술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줬지만, 내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주셨다"며 "나조차 확신할 수 없었던 내 능력을 믿어주셨고 자신감을 끌어올려 주셨다"고 전했다.

'스피드는 나의 힘' 김민선 스토리…"첫 대회 3명 중 3등 했죠"
◇ 사라진 허리 통증, 김민선은 우뚝 섰다
끊임없이 괴롭힌 허리 통증이 잡히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다.

김민선은 조금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김민선은 알을 깨고 나와 접혔던 날개를 펴고 하늘로 비상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여자 500m 7위는 그 시작점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ISU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우승하며 '김민선 시대'를 활짝 열었다.

한국 여자 선수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건 이상화 이후 7년 만이었다.

이후 승승장구했다.

그는 1~6차 월드컵 여자 500m에서 금메달 5개와 은메달 1개를 휩쓸었고, 여자 1,000m에서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아울러 ISU 사대륙선수권대회에선 2관왕에 올랐고, 2023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세계대학경기대회와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동계체전)에선 각각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동계체전 여자 500m와 1,000m에선 이상화(은퇴)가 갖고 있던 대회 기록을 갈아치우며 실력을 과시했다.

김민선은 이달 초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이번 시즌 강행군을 펼친 탓에 체력이 바닥나 메달 획득에는 이르지 못했다.

김민선은 "사실 나조차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둘지 몰랐다"며 "이 때문에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해 시즌 막판 아쉬운 성적을 냈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다음 시즌엔 체력을 잘 안배해서 세계선수권대회 등 시즌 막판에 열리는 큰 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피드는 나의 힘' 김민선 스토리…"첫 대회 3명 중 3등 했죠"
◇ 긍정의 아이콘 김민선 "허리 부상 재발? 걱정 안 해"
허리 부상은 재발 우려가 작지 않다.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선수들에겐 치명적이다.

무엇보다 '또 다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정신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부상을 겪은 선수들은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부담을 이겨내는 길은 오로지 선수 자신에게 달렸다.

김민선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갑자기 허리 통증이 찾아와 다시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런 걱정에 사로잡힌다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는 "난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선수"라며 "불안함이 없지는 않지만,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민선은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선수다.

'어떤 스타트 코스를 좋아하나'라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은 그의 성격을 잘 대변한다.

김민선은 "원래는 아웃코스에서 출발하는 걸 좋아했다"며 "그래야 레이스 막판 함께 뛰는 선수의 등을 보고 뛰어 더욱 스피드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최근엔 인코스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아졌다"며 "첫 코너링 각도가 작아서 가속이 수월하고 마지막 코너링에선 원심력을 덜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특정한 출발 코스를 좋아하면, 그 코스에서 출발하지 못할 경우 심리적인 타격을 받은 채로 레이스를 꾸려야 한다.

억지로라도 특정 코스에 관한 애착을 지우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피드는 나의 힘' 김민선 스토리…"첫 대회 3명 중 3등 했죠"
◇ 김민선이 말하는 세 가지 키워드…올림픽·세계기록·이상화
올 시즌 김민선은 메달을 획득할 때마다 3가지 질문을 쉼 없이 받았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 관한 목표와 '원조 빙속여제' 이상화와 비교하는 질문, 이상화가 가진 여자 500m 세계 기록(36초36) 도전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 김민선에겐 부담스러운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민선은 특유의 밝은 표정을 지으며 "세 가지 모두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은 선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한 뒤부터 잡은 꿈의 무대"라며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도전하려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세계 기록은 더욱 부담이 안 된다"며 "이상화 언니가 어떤 몸 상태로 기량으로 세운 기록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아직은 세계 기록 경신은 내게 멀리 있는 목표"라고 덧붙였다.

'제2의 이상화'라는 수식어에 관해선 "처음엔 그렇게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 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며 "지금은 매우 자랑스럽고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런 평가가 감사할 뿐이며 제2의 이상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스피드는 나의 힘' 김민선 스토리…"첫 대회 3명 중 3등 했죠"
◇ 우연히 만난 입양 강아지 모카 "힘든 훈련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
김민선은 취미를 묻는 말에 머뭇거렸다.

운동 외엔 특별히 관심을 두는 게 없다고 했다.

스트레스 관리법도 따로 없다.

그러나 김민선은 반려견 '모카'를 통해 고단함을 깨끗하게 씻어낸다고 했다.

김민선은 지난해 7월 모카와 처음 만났다.

그는 "진천 선수촌 인근 카페에서 유기견을 임시로 키우고 있었는데, 그 유기견이 낳은 강아지 중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이어 "숙소에 들어와서도 그 강아지가 눈에 아른거렸고, 무척 보고 싶었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입양했다"고 소개했다.

김민선은 "모카는 믹스견이지만, 내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며 "지금은 내게 가장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고 말했다.

2022-2023 시즌을 마친 김민선은 요즘 모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하고 있다.

그는 "이제 2023-2024시즌을 향해 다시 뛰어야 한다"며 "언제나 변함없이 씩씩하게 달리겠다"는 환한 웃음으로 인터뷰의 마침표를 찍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