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느려진 타워크레인에 한숨"…"월례비 없애려면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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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준법투쟁' 현장 가보니 실제 공사속도 2배 이상 느려져
현장에선 "안전 내세우면 제재할 도리 없어…공사지연 불 보듯 뻔해"
건설노조 소속 조종사 "위험한 작업 지시도 사라져야 마땅"
전문가 "수익 앞세워 안전은 뒷전 미뤄온 건설문화 바꿔나갈 과제" 지난 8일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아침 7시부터 10여분 간의 짧은 조회를 마친 근로자들은 "안전!" 구호를 외치고 각자 작업 구역을 향해 바쁜 걸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장 한복판에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도 인양 준비에 나섰다.
조종사가 조종석에 자리를 잡고 나서도 자재 인양을 위한 첫 줄이 내려오기까지는 10분 넘게 소요됐다.
아직 아무것도 들지 않았는데도 줄은 느린 속도로 내려왔다.
현장 관계자는 "원래 타워크레인을 이용해 하루에 철근이나 거푸집 같은 자재를 100다발 옮겼다면 준법투쟁을 시작한 지난 2일부터는 50~60다발밖에 옮기지 못한다.
이런 식이면 공사 기간 지연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0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건설노조는 이달 2일부터 월례비를 받은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면허를 정지하는 정부 대책에 반발해 '준법투쟁'에 나섰다.
월례비를 받지 않는 대신 그 대가인 장시간·위험 작업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 주 52시간 노동 준수 ▲ 순간풍속이 초속 10m를 초과하는 바람이 불 경우 작업 중지 ▲ 인양물이 명확히 보일 경우에만 작업 실시 ▲ 인양물을 사람 위로 통과시키는 행위 금지 ▲ 땅속에 박혀있거나 불균형하게 매달린 인양물 인양 작업 금지 등이다.
인천의 또 다른 아파트 공사 현장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설 현장 관계자는 "자재를 들고 내리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고, 조종사가 신호수 숫자를 늘려달라고 하거나 작업할 때 주변 작업 통제 범위를 넓혀달라고 하는 등 요구가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순간풍속이 초속 10m를 넘지 않는데도 조종사 본인이 느끼기에 바람이 세게 분다고 생각하면 작업을 멈추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이 관계자는 푸념했다.
건설 현장 관계자들은 이런 식의 준법투쟁은 사실상 공사 현장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전 규정 자체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탓에 졸지에 법을 지키는 일이 '투쟁'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현장 관계자는 "평소보다 작업 속도가 느린 이유로 안전을 내세우면 제재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며 "크레인 작업 속도에 대한 규정이 없고, 조종사가 안전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서 조종사 개인 판단에 따라 속도나 작업 진행 여부가 정해지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추가 근무도 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그날 해야 하는 공정을 마치지 못하면 초과 근무 수당을 받고 추가로 근무하기도 했다.
건설공사 특성상 하나의 공정이 끝나지 않으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없어 후속 작업이 줄줄이 미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건설노조 소속 조종사는 정해진 업무 종료 시간인 오후 5시가 되면 작업을 마치지 않았어도 무조건 추가 근무 없이 퇴근한다.
일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노조 방침대로 하지 않으면 고용 등에서 불이익이 돌아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에서 감시하러 다니면서 추가 근무하는 조합원을 단속해 조합에서 탈퇴시키는 불이익을 준다고 들었다"며 "어떤 기사는 본인도 추가 근무를 하고 싶지만 노조 눈치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미안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조만간 비노조원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2교대로 투입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일하는 타워크레인 조종사 대다수가 양대 노총 소속인데다가 노조의 눈총을 받으면서 추가 근무에 나설 조종사 수가 어느 정도 될지를 따져보면 비노조원 투입 방안의 현실성이 크진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건설노조 측은 월례비가 초과 근무와 위험한 작업에 대한 대가인 만큼, 월례비를 근절하겠다고 나섰다면 그간 관행처럼 해왔던 작업도 중단하는 게 당연한 처사라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현직 타워크레인 조종사 A씨는 "월례비는 성과금이자 사례금 개념"이라며 "건설 현장이 워낙 돌발적인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공기를 지키기가 빠듯하기 때문에 서로 협조적으로 도와가며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관행적으로 줘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조종사들은 월례비를 받는 대신 조금 위험한 공정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신경 써서 해주고, 원래대로라면 추가로 비용을 들여 다른 장비를 투입해야 하는 공정도 타워크레인을 이용해서 해주는 식의 편의를 제공해왔다"고 털어놨다.
준법투쟁 후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안전 규정을 철저히 지켜서 한다면 원래 그 정도 속도가 정상이라고 반박했다.
그동안에는 작업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안전 규정을 위반하면서라도 빠르게 작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준법투쟁이 월례비를 다시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조종사들도 노조원이기 이전에 노동자이기 때문에 건설 현장의 잘못된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며 "정부가 월례비는 악습이라고 매도하고 건설노조를 '건폭'이라며 조폭 취급을 하면서도 본인들에게 유리한 건설 근로자의 위험한 작업, 초과 근무 등의 관행은 눈 감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험한 작업에 대해 월례비라는 음성적인 형태로 대가를 지불해왔다면 이제는 급여를 높이는 방식 등으로 양성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대기업 건설사 등 원청업체도 책임을 다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8일 전문건설협회가 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 참석해 원청업체에 "정신 차려야 한다"며 하청업체에 힘든 것을 떠넘기지 말고 원청도 책임을 지라고 질타했다.
원청이 타워크레인 조종사 월례비나 추가 근무 비용 문제 등을 하도급사에 떠넘겼다는 취지다.
이에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청 입장에서는 하도급사가 관행적으로 월례비를 지급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명시만 하지 않을 뿐 기성금에 이미 다 포함해서 주고 있다"며 "서로 입장이 다르니 나오는 얘기다.
원청사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필요한 동시에 그간 뿌리 깊게 자리 내렸던 건설문화를 바꾸는 데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히 월례비 문제가 아니라 그간 비용과 수익을 우선시하면서 안전을 뒷순위로 미뤄뒀던 건설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의 문제"라며 "다만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현장에선 "안전 내세우면 제재할 도리 없어…공사지연 불 보듯 뻔해"
건설노조 소속 조종사 "위험한 작업 지시도 사라져야 마땅"
전문가 "수익 앞세워 안전은 뒷전 미뤄온 건설문화 바꿔나갈 과제" 지난 8일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아침 7시부터 10여분 간의 짧은 조회를 마친 근로자들은 "안전!" 구호를 외치고 각자 작업 구역을 향해 바쁜 걸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장 한복판에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도 인양 준비에 나섰다.
조종사가 조종석에 자리를 잡고 나서도 자재 인양을 위한 첫 줄이 내려오기까지는 10분 넘게 소요됐다.
아직 아무것도 들지 않았는데도 줄은 느린 속도로 내려왔다.
현장 관계자는 "원래 타워크레인을 이용해 하루에 철근이나 거푸집 같은 자재를 100다발 옮겼다면 준법투쟁을 시작한 지난 2일부터는 50~60다발밖에 옮기지 못한다.
이런 식이면 공사 기간 지연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0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건설노조는 이달 2일부터 월례비를 받은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면허를 정지하는 정부 대책에 반발해 '준법투쟁'에 나섰다.
월례비를 받지 않는 대신 그 대가인 장시간·위험 작업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 주 52시간 노동 준수 ▲ 순간풍속이 초속 10m를 초과하는 바람이 불 경우 작업 중지 ▲ 인양물이 명확히 보일 경우에만 작업 실시 ▲ 인양물을 사람 위로 통과시키는 행위 금지 ▲ 땅속에 박혀있거나 불균형하게 매달린 인양물 인양 작업 금지 등이다.
인천의 또 다른 아파트 공사 현장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설 현장 관계자는 "자재를 들고 내리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고, 조종사가 신호수 숫자를 늘려달라고 하거나 작업할 때 주변 작업 통제 범위를 넓혀달라고 하는 등 요구가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순간풍속이 초속 10m를 넘지 않는데도 조종사 본인이 느끼기에 바람이 세게 분다고 생각하면 작업을 멈추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이 관계자는 푸념했다.
건설 현장 관계자들은 이런 식의 준법투쟁은 사실상 공사 현장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전 규정 자체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탓에 졸지에 법을 지키는 일이 '투쟁'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현장 관계자는 "평소보다 작업 속도가 느린 이유로 안전을 내세우면 제재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며 "크레인 작업 속도에 대한 규정이 없고, 조종사가 안전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서 조종사 개인 판단에 따라 속도나 작업 진행 여부가 정해지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추가 근무도 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그날 해야 하는 공정을 마치지 못하면 초과 근무 수당을 받고 추가로 근무하기도 했다.
건설공사 특성상 하나의 공정이 끝나지 않으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없어 후속 작업이 줄줄이 미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건설노조 소속 조종사는 정해진 업무 종료 시간인 오후 5시가 되면 작업을 마치지 않았어도 무조건 추가 근무 없이 퇴근한다.
일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노조 방침대로 하지 않으면 고용 등에서 불이익이 돌아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에서 감시하러 다니면서 추가 근무하는 조합원을 단속해 조합에서 탈퇴시키는 불이익을 준다고 들었다"며 "어떤 기사는 본인도 추가 근무를 하고 싶지만 노조 눈치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미안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조만간 비노조원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2교대로 투입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일하는 타워크레인 조종사 대다수가 양대 노총 소속인데다가 노조의 눈총을 받으면서 추가 근무에 나설 조종사 수가 어느 정도 될지를 따져보면 비노조원 투입 방안의 현실성이 크진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건설노조 측은 월례비가 초과 근무와 위험한 작업에 대한 대가인 만큼, 월례비를 근절하겠다고 나섰다면 그간 관행처럼 해왔던 작업도 중단하는 게 당연한 처사라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현직 타워크레인 조종사 A씨는 "월례비는 성과금이자 사례금 개념"이라며 "건설 현장이 워낙 돌발적인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공기를 지키기가 빠듯하기 때문에 서로 협조적으로 도와가며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관행적으로 줘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조종사들은 월례비를 받는 대신 조금 위험한 공정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신경 써서 해주고, 원래대로라면 추가로 비용을 들여 다른 장비를 투입해야 하는 공정도 타워크레인을 이용해서 해주는 식의 편의를 제공해왔다"고 털어놨다.
준법투쟁 후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안전 규정을 철저히 지켜서 한다면 원래 그 정도 속도가 정상이라고 반박했다.
그동안에는 작업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안전 규정을 위반하면서라도 빠르게 작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준법투쟁이 월례비를 다시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조종사들도 노조원이기 이전에 노동자이기 때문에 건설 현장의 잘못된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며 "정부가 월례비는 악습이라고 매도하고 건설노조를 '건폭'이라며 조폭 취급을 하면서도 본인들에게 유리한 건설 근로자의 위험한 작업, 초과 근무 등의 관행은 눈 감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험한 작업에 대해 월례비라는 음성적인 형태로 대가를 지불해왔다면 이제는 급여를 높이는 방식 등으로 양성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대기업 건설사 등 원청업체도 책임을 다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8일 전문건설협회가 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 참석해 원청업체에 "정신 차려야 한다"며 하청업체에 힘든 것을 떠넘기지 말고 원청도 책임을 지라고 질타했다.
원청이 타워크레인 조종사 월례비나 추가 근무 비용 문제 등을 하도급사에 떠넘겼다는 취지다.
이에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청 입장에서는 하도급사가 관행적으로 월례비를 지급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명시만 하지 않을 뿐 기성금에 이미 다 포함해서 주고 있다"며 "서로 입장이 다르니 나오는 얘기다.
원청사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필요한 동시에 그간 뿌리 깊게 자리 내렸던 건설문화를 바꾸는 데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히 월례비 문제가 아니라 그간 비용과 수익을 우선시하면서 안전을 뒷순위로 미뤄뒀던 건설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의 문제"라며 "다만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