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자영업자의 빚이 지난해 200조원 넘게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8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회사채 시장 위축으로 ‘돈줄’이 막힌 기업들이 은행 창구로 몰리면서 고금리에도 빚이 더 늘어난 것이다. 자영업자 빚도 120조원에 육박했다.

한은이 8일 발표한 ‘2022년 4분기 중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에 따르면 지난해 말 예금취급기관의 기업·자영업자 대출금은 1797조7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17조원(13.7%) 늘었다.

기업·자영업자 끌어 쓴 빚 1년간 217조원 늘어 '역대 최대'
기업의 빚 증가가 두드러졌다. 기업의 예금은행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805조7000억원으로, 전년 말(703조9000억원)보다 101조8000억원 급증했다. 국제 원자재값 상승으로 수입액이 늘어난 데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은행 대출이 증가한 여파로 분석된다. 박창현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회사채 시장 위축 등으로 기업들이 금융회사 대출을 주된 자금조달 창구로 활용한 영향이 크다”며 “예금취급기관 입장에서도 기업 대출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고, 수요가 커지니 대출을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종별로는 서비스업 대출이 지난해 말 767조5000억원으로, 1년 전(687조5000억원)보다 14.5% 증가했다. 서비스업 가운데 정보통신업(30.1%)의 대출 증가율이 높았고, 도매·소매업(15.9%)과 숙박·음식점업(10.7%)도 대출이 급증했다.

지난해 말 제조업 대출은 전년(365조3000억원)보다 7.8% 늘어난 393조9000억원이었다. 세부적으론 코크스·연탄·석유정제품(21.3%), 화학제품·의료용 제품(20.8%)의 대출 증가세가 컸다.

자영업자의 빚 증가도 계속됐다. 지난해 말 예금은행이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의 비법인기업(자영업)에 내준 대출 잔액은 117조3000억원으로, 1년 새 6조9000억원 늘었다. 특히 지난해에만 기준금리가 2.5%포인트 인상돼 자영업자의 부담이 더 커졌다. 변동금리 비중을 감안해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자영업자의 추가 이자 부담은 지난해에만 2조원 가까이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대출도 지난해 534조4000억원으로 전년(440조1000억원) 대비 94조3000억원 늘었다.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은 기업 대출과 자영업자 대출이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은행과 비은행의 대출을 분기별로 보면 증가세가 둔화했다. 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은 작년 2분기만 해도 전분기 대비 68조4000억원 증가했지만 3분기엔 56조6000억원, 4분기엔 28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고금리 여파 외에 연말 재무비율 관리를 위한 기업들의 대출금 일시 상환 등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하지만 기업과 자영업자의 빚 규모가 커지면서 한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Fed)이 오는 21~22일 예정된 통화정책회의에서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은이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맞춰 다시 금리 인상에 시동을 건다면 한계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부실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