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근거 법규 없어…연금개혁 논의 맞물려 또다시 찬반 의견 팽팽
[이슈 In] 1천500조원 추산 국민연금 부채…공식 계산도 안한다는데
"2006년 현재 국민연금 적립금은 180조원이고 미적립부채는 210조원으로 지금도 국민연금의 잠재부채가 하루에만 800억원씩, 연간 30조원씩 쌓여가는 등 연금재정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으로 국민연금 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중대사안입니다.

"
2007년 2차 국민연금 개혁을 앞두고 한창 개혁 논의가 불붙을 2006년,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중대 민생현안인 국민연금 개혁의 절박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항상 빼놓지 않고 언급했던 말이다.

연금개혁을 미루면 미룰수록 후세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재정부담을 짊어지게 되니,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는 논리를 '미적립 부채'라는 개념을 활용해 구체적 수치를 들어 설명하며 국민설득에 나선 것이다.

당시 이런 호소가 먹혔는지,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기를 늦추기 위해 보험료율을 월 소득의 9%에서 12~13%로 올리려던 계획이 무산돼 비록 반쪽짜리에 그치긴 했지만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내리는 연금개혁을 달성했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현재 5차 재정계산을 토대로 국민연금 개혁논의가 다시 달아오르는 상황에서 그동안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던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 공무원·군인연금으로 나갈 돈만 1천138조원…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현재 우리나라 공적연금 중에서 법으로 이른바 '충당부채'를 계산해서 공개하도록 한 것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뿐이다.

연금 충당부채는 공적연금을 받는 사람이 평균수명까지 살 경우에 지급할 연금 추정액과 현재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의 불입 기간에 대해 법적으로 지급할 연금 추정액을 합쳐서 현재 시점에서 미리 계산한 금액이다.

계산 기간은 보통 70년 이상이다.

미적립 부채는 이런 연금 충당부채에서 적립기금을 뺀 금액이다.

이는 당장 갚아야 하는 빚이라고 볼 순 없지만, 연금 지급액이 부족하면 후세대가 세금이나 보험료를 내서 메꿔야 하는 만큼 잠재부채라 할 수 있다.

정부의 2021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말 기준 우리나라의 공무원·군인 연금 충당부채는 1천138조2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93조5천억원 늘었다.

장래 공무원·군인 연금 지급액이 재무제표상 국가부채(2천196조4천억원)의 절반 이상(51.8%)을 차지한 것이다.

종류별로는 공무원 연금 충당부채가 904조6천억원으로 전년보다 74조8천억원 늘었고, 군인 연금 충당부채(233조6천억원)도 18조7천억원 증가했다.

사학연금의 충당부채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 보고되긴 했지만,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베일에 싸여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충당부채는 아예 공식적으로 계산조차 되지 않은 채 비밀에 부쳐져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통해 대략적인 규모를 추산할 수 있다.

계산 방법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부 전문가는 국민연금이 수급자와 가입자에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충당부채는 2021년 현재 약 2천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여기에서 2021년 현재 국민연금 곳간에 쌓여있는 적립금 950조원을 차감하면 미적립 부채는 1천550조원이 된다.

이는 후세대가 보험료나 세금 등으로 부담해야 할 빚인 셈이다.

[이슈 In] 1천500조원 추산 국민연금 부채…공식 계산도 안한다는데
◇ "미적립 부채 규모 계산해 공개해야 제대로 된 연금개혁 가능"
연금 개혁을 위해 정부가 구성해 가동 중인 5차 재정계산위원회에서도 이런 국민연금의 잠재부채 공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현재 국민연금이 처한 재정 실상을 국민에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만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할 수 있다며 미적립 부채를 미리 계산해서 공개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연금 충당부채를 계산해 정부 대차대조표에 포함할 경우 국가부채가 과도하게 계상돼 국가 신인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은 "모든 공적연금이 낸 것보다 더 많이 받는 제도로 운영되며 매년 미적립 부채가 더 늘어나는 상황인데도, 미적립 부채 현황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너무도 중요한 이슈이고 이번 연금개혁의 성패가 달린 문제로 공개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급여의 충당부채는 우발 채무여서 정부 대차대조표의 부채에는 넣지 않더라도 정부 대차대조표의 주석사항에는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한 점을 들어 미적립 부채를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공무원과 군인처럼 고용 주체가 국가이며, 교환적 거래일 경우에는 정부가 사용자로서 지급해야 할 확정 부채이기 때문에 연금 충당부채로 계산하지만, 공무원·군인 연금과 달리 일반 국민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둘 다 해당하지 않아 연금 충당부채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자 재정계산위원회는 산하의 재정추계전문위원회와 국민연금 충당부채와 관련해 합동회의를 열어 논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