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서 모순적 행동하는 中…북핵해결에 진정성 있는지 의문
[특파원시선] 민망한 상투구…진심으로 중국에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나
한국과 중국 당국자의 각종 회담시 배포되는 보도자료에는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이 표현은 양국 수교 직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정부가 사용했지만, 맥락은 현재와 크게 달랐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를 예방한 톈지윈 중국 전인대 제1부위원장에게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노력하고 있는 것을 평가한다"라며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이 '중국의 노력'을 언급한 것은 북한이 전년도인 1993년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이후 유엔에서 벌어진 긴박한 상황 전개 때문이다.

당시 북한의 NPT 탈퇴 선언에 국제사회가 받은 충격과 분노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중국은 당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맹방인 북한의 핵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를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버텼지만, 결국 국제 여론에 밀려 북한의 NPT 복귀 촉구 결의안 수정안에 동의했다.

이어 중국은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비토권 행사를 포기,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처럼 진통 끝에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했다는 맥락에서 김 전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당시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한 건설적 역할'이라는 표현에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기억해둘 만한 대목이다.

같은 해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김 전 대통령이 다시 한번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언급하자 당시 장쩌민 주석은 "중국의 북한 설득에도 한계가 있다"고 손을 내저었다.

실제로 중국은 이후 북한이 2017년 6차 핵실험까지 대량살상무기 기술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을 보인 적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중국의 '선한 영향력'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북핵을 방관하고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될 정도다.

[특파원시선] 민망한 상투구…진심으로 중국에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나
그러나 어느 사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은 외교 이벤트마다 반드시 사용되는 상투적인 덕담으로 정착했다.

이 과정에서 초강대국 반열에 오른 중국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30년 전에는 북핵 문제에서 역할을 하라는 당부에 "북한 설득에도 한계가 있다"며 발을 뺐지만, 이제는 스스로 '건설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미화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북핵 문제를 넘어서 바라지도 않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까지 자신들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북한이 8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포함해 탄도미사일을 70회 이상 발사하는 과정에서 안보리의 발목을 잡은 중국이 어떤 근거로 저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안보리는 지난 2017년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북한이 ICBM을 발사했을 때 자동으로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하지만, 번번이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막혔다.

이 같은 중국의 행위는 결코 '건설적'이라는 표현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황준국 주유엔대사가 유엔 총회 비공개회의에서 지적한 대로 '자기모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행동 방식이다.

현재 갈수록 고조하는 미중 갈등을 고려한다면 중국의 북핵 감싸기는 더욱 노골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파원시선] 민망한 상투구…진심으로 중국에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나
물론 한국 정부가 지난 30년간 상투적으로 중국을 향해 사용했던 '북핵 문제에 대한 건설적인 역할'이라는 표현은 외교적인 수사로 넘겨줄 측면이 있다.

다만 북핵 문제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악화한 상황에서 정부가 중국에 기계적으로 이 같은 덕담을 하는 것 자체를 민망하게 여기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