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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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자전거로 타는 법을 배웠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아버지가 나갔다 오면 자전거 바큇살까지 윤이 나게 닦는 게 내 일이었다. 틈틈이 타봤지만 쉽질 않았다. 아버지 몰래 자전거 수리도 여러 번 했다. 한참 만에야 용기 내 타고 나갔다. 어머니가 놀라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키가 작아 엉덩이를 이리저리 씰룩거려야 페달에 발이 닿았다. 뒤뚱거리며 시장길을 걷는 것보다 못하게 자전거를 몰았다. 지팡이를 짚지 않은 아버지가 손뼉 치며 좋아라 하시는 모습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점포 앞에 놓인 채소들을 깔고 뭉개며 백여 미터쯤 가다 작은 도랑에 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넘어졌다. 자전거 배워 처음 타던 날 풍경이다.

자전거 핸들을 양옆에서 나눠 잡고 걸어오는 길에 아버지는 큰소리로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아버지에게 자전거는 제2의 다리였다. 6·25 동란에 참전해 오른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는 재활훈련으로 어렵게 자전거 타는 법을 다시 배웠다고 했다. 성한 왼쪽 다리 쪽으로 자전거를 기울여 힘없는 의족인 오른발을 페달에 묶고 반 바퀴쯤 밀면서 왼발로 페달을 힘차게 밟아 균형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재활훈련 지도사가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당신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며 힘겹게 가르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큰 힘이 되는 말이었다고 되뇌었다. 알고 보니 저 말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3025일 아들 에두아르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힌 인생 조언이다.

동네 분들 모시고 잔치를 벌인 그날 밤 손님들이 가시고 나서 알려주신 고사성어가 다다익선(多多益善)’이었다. 마침 아는 글자여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는 뜻이다. 훗날 알게 됐지만,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한신(韓信)과 함께 여러 장군의 능력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과인과 같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군대의 장수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한신이 폐하는 한 10만쯤 거느릴 수 있는 장수에 불과합니다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대는 어떠한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한신이 대답한 말에서 유래했다. “,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多多益善].” 고조가 다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10만의 장수 감에 불과한 과인의 포로가 되었는고?”라고 비웃자 한신은 하오나 폐하,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폐하는 병사의 장수가 아니라 장수의 장수이십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또 폐하는 이른바 하늘이 준 것이옵고 사람의 일은 아니옵니다.”

아버지는 가끔 한신의 통찰력을 칭찬하며 저 고사성어를 몇 번 더 말씀하셨다. 고조는 천하를 통일한 후 왕실의 안정을 위해 개국 공신들을 차례로 숙청했다. 초왕(楚王) 한신(韓信)은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으로 항우 군의 토벌에 결정적으로 공헌했지만, 통일이 완성된 한 왕실로서는 위험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여후(呂后)에 의해 처형되었다.

아버지는 자전거는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는 탈것 중에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전제하고, “언제 어느 때고 바퀴가 빠져 넘어지는 도랑을 만나는 게 인생이라고 설명했다. “빠지지 않을 방법은 바퀴를 도랑보다 더 크게 만들면 된다면서 다다익선 고사성어를 길게 인용해 위험을 알아채는 지식의 바퀴는 크면 클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지식은 배운 정보의 축적이다. 지혜는 지식을 적용하는 방법이다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이어서 아버지는 지혜 없는 지식은 가능하지만, 지식이 없는 지혜는 불가능하다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먼저 지식의 바퀴를 키울 것을 주문했다. 지식은 탐구심이 있어야 얻는다. 목표를 향한 강한 투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마음이 탐구심이다. 자전거를 배우기 이전에 먼저 가르쳐야 할 소중한 성품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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