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회계 의무 안 지키는 노조 지원 배제…조합비 세액공제 재검토"
양대노총 "노동탄압 중단해야"…내일 노란봉투법 통과 여부도 뇌관
회계자료 제출 거부에 지원금 중단·환수까지…노정갈등 최고조
정부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20일 회계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노조에 대해 정부 지원금 중단과 환수까지 포함한 초강수 조치까지 예고하면서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서 촉발된 노정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여기에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도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상정을 앞둔 가운데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가 서로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며 국회를 압박하고 있어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 과태료 부과에 지원금 환수까지…한국노총 "지원금과 회계자료는 별개"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핵심 개혁과제 가운데 '노동개혁'을 최우선으로 추진해 온 윤석열 정부는 최근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내세워 압박 수위를 계속 높여왔다.

우선 고용노동부는 지난 1∼15일 조합원 수가 1천명 이상인 단위 노조와 연합단체 327곳에 재정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요청에 응하지 않은 노조에 대해서는 17일부터 2주간 시정 기간을 주고, 그럼에도 계속해서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소명을 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른 현장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노조에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근거로 노조법에 규정된 조항을 들고 있다.

노조법 제14조는 '노조는 조합 설립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조합원 명부, 규약, 임원 성명·주소록,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를 작성해 사무소에 비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같은 법 제27조는 '노조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제96조는 '서류를 비치·보존하지 않거나 허위의 보고를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은 정부가 조합원 1천명 이상인 노조에 무조건 일괄적으로 회계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노동탄압이자, 노조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특히 정부가 회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에 과태료 부과와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른 현장 조사를 예고한 데 대해 "정부는 노동관계의 특성을 반영한 노조법이 아닌 '질서위반규제법'을 들어 노조에 대한 현장 조사를 운운하며 협박하고 있다.

노조법마저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고용노동부 자료 등을 인용,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지난 5년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받은 지원금 규모가 1천500억원에 달한다는 자료까지 공개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날 대통령 보고를 통해 과태료 부과와 현장 조사를 진행했음에도 노조법상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를 비치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노조를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고, 이미 지급된 보조금에 대해서도 부정하게 사용됐을 경우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지원 배제, 중단뿐 아니라 대규모 환수까지 포함한 초강경 카드를 내놓은 셈이다.

또 노조 회계감사 사유를 확대하고 전문자격을 갖춘 회계감사인이 노조 회계를 들여다보도록 법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다음 달까지 마련해 발표하고,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도 기존 발표대로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현행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라 노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노조 조합비 15%에 대해 세액을 공제하는 제도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이 장관은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라며 "노사 법치는 노조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보호하고 조합원의 알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양대노총이 천문학적 지원금을 받아놓고 법에 명시된 의무조차 거부하며 법 위에 군림하려 들고 있다"라며 "사용처조차 불분명한 지원금 지급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동부와 지자체로부터 받는 지원금에 대해서는 이미 회계자료를 제출하고 있다면서, 국고 지원금과 회계자료 제출 의무는 별개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회계자료 제출 거부에 지원금 중단·환수까지…노정갈등 최고조
◇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노란봉투법…여야 협의 요원
이런 상황에서 여야와 정부·노동계가 대립을 거듭해온 노란봉투법이 오는 21일 국회 환노위에 상정될 예정이다.

지난 15일 환노위 소위원회, 17일 환노위 안건조정위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파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기존엔 불법이던 쟁의의 일부를 합법 영역에 포함했다.

특히 쟁의행위 탄압 목적의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정부는 노란봉투법이 파업을 부추겨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사회 갈등과 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키워 경제 전반에 심대한 부정적 여파가 예견된다"라고 말했다.

이정식 장관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이라면서 "권리분쟁이 법률적 판단이 아닌 파업 등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게 돼 노사갈등 비용이 커질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경제계도 공동성명을 내며 노란봉투법 추진에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사용자와 노동쟁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닌 기업까지 쟁의대상으로 끌어들여 결국 기업·국가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고 했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노란봉투법 처리를 이끌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노란봉투법을 '합법파업 보장법'으로 규정하고 "노사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최소한의 균형추"라고 평가했다.

노동계도 하청 노동자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힘을 보태고 있다.

양대노총은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사용자 단체와 기업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켜 노동자 스스로 임금과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극한 대립을 풀어나갈 협상 테이블이 국회에서 마련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복수의 국회 관계자는 전했다.

한 관계자는 "소위에서 처리한 법안을 의결하기 위해 전체회의를 잡아놓은 것"이라면서 "(여야 간사 간 협의 등을 통해) 법안을 재검토하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이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을 의결하더라도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위원장인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민주당은 본회의 직회부를 예고한 상태다.

법사위가 특정 법안 심사를 60일 안에 마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원회는 표결로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다.

회계자료 제출 거부에 지원금 중단·환수까지…노정갈등 최고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