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대러제재·군사지원 주도하며 연대…스웨덴·핀란드 '70년 중립'도 포기
러는 북·중·이란과 밀착, 美 연일 경고…'슈퍼파워' 부재속 진영화·다극화 현상도 가속
[우크라전쟁 1년] ② 신냉전, 서방 대 중·러로 갈라진 세계…안보 지형 재편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발한 최대 규모의 열전(무력전쟁·hot war)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신(新)냉전 시대'의 본격적인 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무엇보다 서방 대 친러로 대변되는 반(反)서방,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세력의 지정학적 대결구도가 이번 전쟁을 계기로 한층 선명해졌다.

미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대(對)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주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냉전 시대 종식 이후 역할론에 회의감마저 제기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전선을 확장하며 모처럼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반대편에선 상대적으로 서방 동맹에 비해 '동상이몽' 관계로까지 평가절하되던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이 관계 재정립에 나서며 밀착하고 있다.

[우크라전쟁 1년] ② 신냉전, 서방 대 중·러로 갈라진 세계…안보 지형 재편
◇ 끈끈한 미·EU…존재감 부상 나토, 러 이어 중국도 '경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미국과 EU는 대러 제재로 응수하며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고 제재는 지금도 계속 추가되고 있다.

미국은 전쟁 두 달여만인 작년 4월 우크라이나 지원 공조를 위한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그룹'(UDCG)를 출범하는 등 군사 지원을 주도했고, 미국이 주축이면서 상당수 유럽 국가가 회원국으로 속한 나토의 '집단방위체제'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됐다.

지난달 나토와 EU가 5년 만에 발표한 공동선언문이 단적인 예다.

이 선언문에서 양측은 "나토는 동맹을 위한 집단방위의 토대이자 유럽-대서양 안보에 필수"라며 "나토와 EU는 국제 평화 및 안보를 지원하는 데 있어 상호 보완적이며 일관적이고 강화된 역할을 한다"고 명시했다.

자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EU로선 부족한 방위력을 메우기 위해선 나토의 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더 명확히 한 셈이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미중 패권 경쟁에도 중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썼지만, 안보 불안감에 대중 관계도 '유턴'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토는 한발 더 나아가 '가치 연대'를 앞세워 인도·태평양과 접점도 넓히고 있다.

작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2022년 전략개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도전'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중국의 막대한 군사력 증강 등이 유럽-대서양 안보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명분에서다.

당시 정상회의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 정상을 처음으로 초청한 것 역시 유럽-대서양과 아시아 안보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며 자유민주주의 세력 진영 확장을 추진하는 흐름의 연장선이다.

◇ 중·러 전략적 연대 강화…북·이란과도 '밀월' 강화
'느슨한 관계'였던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연대를 한층 공고히 하는 분위기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연합군사훈련을 확대하는 등 협력을 강화해온 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작년 2월 '무제한 협력'(no-limits partnership) 관계를 대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중국은 서방의 대중국 제재를 유발하지 않도록 러시아에 무기 지원 등 직접 개입은 자제하고 있지만, 동시에 서방의 제재 동참을 거부하며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합병을 규탄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당시에도 기권하는 등 '서방 일변도' 흐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간 '밀월'도 눈에 띄게 강화됐다.

미국은 작년 1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돕고 있는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와그너 그룹에 북한이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 등 무기와 탄약을 판매했다고 공개했다.

혼돈의 국제 정세를 틈타 북한은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으로 전례 없는 무력 시위를 잇달아 벌였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듭된 반대로 안보리 규탄 성명조차 번번이 무산되기도 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모두 미국과 서방의 포괄적 고강도 제재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향후에도 이를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와 밀착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 밖에 이란은 서방 경고에도 러시아에 군사용 드론 등 무기 지원을 이어가는 한편 중국과는 전방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반미 연대를 돈독히 했다.

반서방 연대를 구축하고 있는 이른바 친러 국가간 밀착 움직임에 대한 미국의 견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물자를 지원할 가능성을 주장하며 공개 경고장을 날린 상황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전격 회동을 한 자리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해 경고했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소개했다.

앞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도 지난 15일 싱크탱크 행사에서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패배할 것이라며 중국, 이란, 북한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는 국가들이 결국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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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핀란드마저 '70년 중립' 포기…유럽 정치안보지형 격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의 정치·안보지형의 일대 격변도 초래했다.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에 따라 70년 넘게 지킨 중립 노선을 포기한 스웨덴과 핀란드가 대표적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나토 가입을 신청했고, 30개국 가운데 28개국이 가입 비준안을 가결했다.

튀르키예, 헝가리 등 2개국의 최종 비준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두 나라는 이미 나토의 공식 회의에 직접 참석하면서 사실상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U는 소위 '확장 정책'(Enlargement Policy)을 통해 동유럽 개발도상국 등 인접국들을 반(反)러 전선에 합류시키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고,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와 EU 가입 협상을 개시하며 동쪽으로 외연 확대에 나섰다.

각종 제재에는 엄정한 중립 노선을 지켜온 스위스까지 일부 동참하면서 러시아 옥죄기에 힘을 보탰다.

전쟁 이후 덮친 초유의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와 이민자 급증 등은 유럽 각국의 국내 정치에도 직접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00년 만의 극우 성향의 총리'라는 타이틀과 함께 집권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대표적으로, 그는 EU 정상회의에서 '불법이민 유입 방지' 대책에 거침없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 상반기 EU 순환의장국인 스웨덴 역시 작년 9월 총선에서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SD)이 득표율도 20.5%를 기록하며 원내 2당이 됐다.

새 연립정부는 다른 우파 정당 3당 연합으로만 구성됐지만, 정책 추동력을 위해선 스웨덴민주당과 협력이 필수여서 극우 세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우크라전쟁 1년] ② 신냉전, 서방 대 중·러로 갈라진 세계…안보 지형 재편
◇ '내 편인 듯 아닌 듯'…실리외교 추구 '중추 국가' 부상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은 서방과 반서방 대립 속에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실리외교를 추구하는 국가들이 설 자리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강대국 리더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아닌 권력의 중심이 다양한 지역으로 분할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인도가 단적인 사례로, 인도는 미국의 대중 견제를 위한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의 일원임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러시아와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산 원유를 값싸게 사들이는 등 경제적, 외교적 실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나토의 '이단아'로 불리는 튀르키예 역시 개전 초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판매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곡물 수출 협상 당시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가 하면, 최근엔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 현안에서 사실상 '캐스팅 보트'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서방의 애를 태우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인도와 함께 '브릭스(BRICS)'로 불리는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실익을 챙기는 국가들로 분류된다.

통일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들 국가를 '중추 국가'로 규정하면서 "현재 및 향후의 국제질서는 강대국 중심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이어 "각자도생의 자국 우선주의 대외 행태의 흐름이 강화되는 가운데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이를 지탱하는 다양한 제도 및 규범 등을 둘러싸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력과 중국 주도의 권위주의 세력 간의 체제적 경쟁을 중심으로 느슨한 지정학의 이중적 진영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