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2' 정민찬 /사진=박지만 제공
'미스터트롯2' 정민찬 /사진=박지만 제공
구성진 트로트 가락에 얹힌 우아한 몸짓. TV조선 '미스터트롯2'에서 정민찬은 단연 눈에 띄는 참가자였다. 국립발레단 출신으로 뛰어난 발레 실력이 이미 입증된 그는 '발레 트로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들고 가장 대중적이라고 여겨지는 트로트 경연에 뛰어들었다.

1차 예선까지는 순조로웠다. 진시몬의 '도라도라'를 선곡한 그는 턴에 다리 찢기, 날렵한 점프까지 난도 높은 발레 동작을 소화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가창해 마스터들로부터 극찬받았다. 한쪽 다리를 위로 들어 올린 채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 장윤정은 "어느 누가 저렇게 발을 들고 노래할 수 있겠느냐"며 감탄하기도 했다.

본선 1차전 장르별 팀 미션에서는 아쉽게 올 하트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추가 합격으로 본선 2차전에 올라갔고, 이후 대 1 데스매치에서 탈락하며 경연을 마무리했다. 서울 모처에서 한경닷컴과 만난 정민찬은 마지막 무대를 떠올리며 "홀가분했으면 하는데 그게 아니라서…"라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사실 무대 준비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민찬은 여러 무용수와 무대를 꾸몄는데 인원을 모으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준비 기간 동안 일이 많았다"고 말문을 연 그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하는데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에 소속된 친구들은 출연이 안 되더라"고 밝혔다.

첩첩산중으로 확정됐던 후배의 출연이 갑작스럽게 어려워졌고, 녹화 전날 무용수 한 명이 다치기도 했다고. 정민찬은 "2주를 날렸다.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2주 동안 작품 구상이 안 될 정도였다"면서 "음악도 클래식이 나오다가 갑자기 트로트가 나와서 연결이 잘 안된 것 같다. 편곡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했어야 했다.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무대"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도 심란한 일이 있었다. 1대 1 데스매치 녹화 3일 전 전세 사기를 당한 것. 정민찬은 "경매가 진행되니 법원에 배당요구신청서를 제출하라더라. 집주인에게 전화하니 없는 번호라고 뜨고, 집 계약할 때의 부동산도 없어졌다"면서 "평생 모은 돈으로 들어간 집이라서 심적 압박을 떨쳐내면서 경연에 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불안한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미스터트롯2' 정민찬 /사진=박지만 제공
'미스터트롯2' 정민찬 /사진=박지만 제공
하지만 분명히 트로트 신에 유의미한 점을 찍은 그였다. 나태주의 태권 트로트를 보고 발레 트로트를 생각해 낸 정민찬은 노래하면서도 발레 역시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는 "순수예술을 했던 사람이 그런 모습으로 나온다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면서 "노래에 춤까지 남들보다 3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발레와의 인연은 고등학생 때로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축구, 중학교 때 기타와 드럼 등을 배웠던 정민찬의 마음속에 피어난 건 무용에 대한 욕구였다. 그는 "운동도 안 맞고, 악기도 안 맞는데 몸 쓰는 걸 좋아해서 춤이 추고 싶더라"고 했다. 그렇게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무용발레과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발레과를 졸업했다. 이후 국립발레단까지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수려한 외모에 마치 고생 없이 이 자리까지 왔을 것 같지만 정민찬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대학생 시절 보증금 500만원짜리의 좁은 원룸에서 생활하며 각종 무용, 뮤지컬 무대에 올랐던 그였다. 그렇게 쌓인 필모그래피가 곧 재산이라고 했다.

"지인이 '너 정말 열심히 살았다'면서 제 나무위키가 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보니까 정말 안 해도 될 것까지 했더군요. 돈은 목적이 아니에요. 잘 먹고 잘 입고 다니는 건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실제로 이력을 보면 돈이 되는 건 없어요. 여러 가지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죠. 재밌고, 보람차겠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했어요."
'미스터트롯2' 정민찬 /사진=박지만 제공
'미스터트롯2' 정민찬 /사진=박지만 제공
국립발레단에 들어간 건 군 제대 후 복학한 후였다. 하지만 2년이 채 되지 않아 "빨리 나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민찬은 "왜 나왔냐는 말을 많이들 한다. 실력이 안 돼서 나왔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사직서를 내고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며 "노래, 연기, 춤을 다 하고 싶었는데 그게 뮤지컬이었다. 발레단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게 이게 맞나?'라며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소속된 발레단에서는 프리랜서 개념이라 다른 활동에 제약이 없다. 그 덕에 발레리노 활동은 물론 뮤지컬에 '미스터트롯2' 출연까지 도전 정신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도 "본캐부캐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민찬은 "발레 트로트를 알렸으니까 지금은 트로트 가수로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아쉬웠던 데스매치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계속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월 초에 고향에서 3년 만에 매화 축제가 열리는데 거기에 참여하게 됐다. 정말 감사한 것과 동시에 남들은 서서 부르는 노래를 춤추면서 해야 하니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사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며 웃었다.

끝으로 향후 어떤 모습의 발레 트로트를 보여줄 것인지 물었다.

"기회가 된다면 진짜 클래식 왕자의 이미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가 지금까지 한 게 통통 튀는 호두까기 인형·강인한 모습의 돈키호테였다면, 백조의 호수나 지젤 같이 애절하고, 슬프고, 사랑스러운, 왕자와 공주의 관계성이 보이는 가요를 선곡해 그에 맞는 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발레 대중화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