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미국 공군의 비행 훈련에서 충돌 사고가 빈번해지자 군 상부에선 기체 결함이나 오류의 증거를 찾으려 했다. 원인을 밝힐 수 없자 과학을 전공한 길버트 대니얼스 중위가 조종사들과 조종석의 물리적 구조를 파악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좌석, 등받이, 페달, 손잡이 등 조종석의 모든 구조물이 ‘평균적인’ 병사에 맞게 제작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종사가 된 사람들은 어느 정도 평균치에 맞춰 선발됐기 때문에 각 부품의 사양이 대체로 이들에게 적합할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대니얼스 중위가 조종사 4063명의 신체를 측정한 결과, 조사 항목 10개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몸에는 변이가 있었고, 평균적인 조종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책마을]'평균'이라는 기준을 거부하다…세상을 재설계하는 움직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평균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을까. 미국 올린공과대 교수인 사라 헨드렌은 신간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에서 이런 물음을 던진다. 그는 세상이 재단해놓은 평균을 거부하고, 장애인을 위해 구조물을 바꾸는 디자인 연구가다.

헨드렌은 2010년 미국의 장애인 마크를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보다 능동적인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기존의 장애인 표지판에 자신이 디자인한 마크를 붙였다. 이는 미국 전역에서 큰 지지를 받았고, 뉴욕시는 그의 디자인으로 장애인 마크를 교체했다.

2016년에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이 열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입구 앞 광장에 경사로를 설치했다. 작품의 이름은 ‘끼어든 경사로’. 경사로는 보통 휠체어 사용자가 쉽게 건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구조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는 전시에서 스케이트 보더가 경사로를 역동적인 놀이기구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장애 보조 장치로 여겨지는 경사로를 신나고 활동적인 이미지로 환기시킨 것이다.

헨드렌이 장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들이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장애라는 건 활동할 수 없는 몸의 상태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단절이라는 걸 깨달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구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전 세계 인구의 16%인 13억 명가량이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 평균이라는 기준으로 설계된 세상에서 거부당한 몸을 가진 사람이 13억 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그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가르는 간극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며 이같이 강조한다.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는 당신이 세상을 다니는 데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바로 계단에 의한 장애이고 경사로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장애를 직접 겪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평균으로 불리는 것 앞에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주저하고 있는지. 책을 읽은 뒤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이 세상은 누구를 위해 지어졌는가?’

이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