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반윤핵관' 전략 사실상 실패…사면초가 놓인 나경원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중인 나경원 전 의원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친윤(윤석열)계의 불출마 압박에 이어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까지 공개 비판에 나서면서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과의 거리는 좁히되 ‘반(反)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구도를 만들려던 나 전 의원의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 전 의원은 18일 당초 참석 예정된 대전시당 신년 인사회 등 공개 일정을 전면 취소한 채 다시 ‘잠행’에 들어갔다. 나 전 의원은 그동안 대구 동화사 등 사찰을 돌며 사실상 당권주자 행보를 밟아 왔다. 나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 여부가 이번 전당대회의 최대 변수로 꼽힌 만큼 나 전 의원의 행보는 여론의 중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랬던 나 전 의원이 잠행에 들어간 데에는 전날 김대기 비서실장의 입장 발표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나 전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에 본인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해직을 두고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시기까지 저의 부족도 있었겠지만 전달과정의 왜곡도 있었다고 본다.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대통령실 참모가 윤 대통령에게 본인의 의사를 잘못 전달했다는 의미로 사실상 친윤계를 겨냥한 말이었다.

하지만 김대기 비서실장은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비판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이날까지 초선 의원 50명이 나 전 의원의 발언을 비판한 성명을 냈다. 여권에선 나 전 의원의 발언이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휘둘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은 대통령이 참모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지도자라는 의미 아니냐”며 “이는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향후 전당대회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통 당원의 지지가 두터운 나 전 의원은 그동안 본인을 친윤 주자라고 강조하는 동시에 윤핵관 등 친윤계 핵심 그룹과는 각을 세웠다. 집권 2년 차인 만큼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당원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대신 ‘반(反) 윤핵관’ 구도를 만들어 지지세를 모으려는 전략을 구상했다.

하지만 김 비서실장이 직접 비판에 나서면서 대통령과 친윤계 주류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 그룹을 분리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당권주자인 윤상현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나와 "(대통령) 동의 여부를 떠나 나 전 의원 본인이 친윤 후보로 자리매김하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결국 비윤의 이미지를 가지고 간 상황이 됐다"며 "반윤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친윤-반윤핵관' 전략 사실상 실패…사면초가 놓인 나경원
지지율도 영향을 받는 모습이다.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 14∼16일 전국 국민의힘 지지층 397명을 대상으로 차기 당 대표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김기현 의원이 35.5%로 1위를 차지했다. 나 전 의원은 21.6%로 2위다. 직전 조사(12월 27∼29일)에서 15.2%를 기록했던 김 의원 지지도는 이번 조사에서 20.3%포인트(p) 올랐고 나 전 의원은 9.2%p 내렸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번 나 전 의원 해임 사퇴로 윤심(윤 대통령 마음)이 김 후보에게 있다는 점이 알려지게 되면서 지지율이 급격하게 오른 것 같다”고 했다.

불출마 압박이 거세지는 만큼 일각에선 나 전 의원의 불출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퇴로가 이미 막힌 만큼 결국엔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한 중진의원은 “지금 안 나오면 지지층에선 반윤 이미지가 그대로 남고, 일반 대중에게는 나약하다는 인식을 줘 정치인 나경원은 잊혀질 수밖에 없다”며 “떨어지더라도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어느 정도의 득표율을 얻느냐에 따라 정치 명운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나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귀국하는 21일 전후로 출마 여부를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할 말이 없다"며 출마 여부 등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