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를 공부한 손세관 중앙대 명예교수는 도시를 그린 지도와 그림을 좋아해 유럽에 가면 고지도 파는 가게를 찾곤 했다.

또 도시를 담은 그림들의 복사본을 사 모으고 추적했다.

신간 '도시의 만화경'(도서출판 집)은 손 교수가 오랫동안 들여다봤던 동·서양의 도시를 담은 그림들을 통해 도시와 도시문명을 읽어내는 책이다.

도시를 그리는 방식과 기법은 동서양이 달랐다.

서양에서는 지도와 그림을 결합한 형식이었다면 동양에서는 평면지도나 그림지도, 도시 풍속화 방식으로 도시를 그렸다.

저자는 이 중에서도 시가지의 모습과 시민의 일상을 치밀하고 생생하게 담은 그림을 '도시그림'이라고 부르며 동서양 15곳 도시의 도시그림을 통해 당시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도시그림으로 떠나는 동서양 15개 도시여행…책 '도시의 만화경'
첫 여행지는 중세 시에나다.

시에나 시청사에 그려진 암브로조 로렌체티의 프레스코화 '좋은 정부의 도시'는 좋은 정부가 만들어 내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도시라는 정치적 이상을 담은 유럽 최초의 도시그림이다.

저자는 미술사적 설명에 더해 건축가, 도시설계가의 눈으로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그리고 성벽을 경계로 도시안팎의 사람들이 계층으로 구분된 모습을 발견한다.

건물로 가득했고 그사이를 길이 지나며 시장이 형성된 모습을 담은 도시그림에서 도시발전의 정점이었던 14세기 시에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중세 동양의 도시 모습은 어땠을까.

북송 말기인 1120년께 수도 개봉(開封·카이펑)을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홍교(다리)나 성문 같은 복잡한 건축물도 실제 비율과 구조에 맞춰 벽돌 한 조각, 기와 한 장까지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려냈다.

홍교를 중심으로 농촌과 수변 상업지, 성안의 도시지역, 찻집, 점집, 부채파는 행상, 꽃 파는 행상, 바퀴 수리점까지 번화했고 풍요로웠던 수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 이 그림을 두고 저자는 로렌체티의 그림보다 200년 앞서 태어난 '역사상 최초의 도시그림'이라고 평가한다.

도시그림으로 떠나는 동서양 15개 도시여행…책 '도시의 만화경'
조선 후기 서울의 모습은 '경기감영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서울 서대문 일대를 그린 이 그림에서는 솟을대문이 솟아있고 행랑채가 이어지는 사대부의 집과 직장과 주거가 같이 있었던 상인과 중인들의 중소규모 기와집 등 당시 주택 사정을 보여준다.

약국, 신발가게, 싸전 같은 가게와 물장수, 엿장수 등의 모습도 보인다.

책은 이 밖에도 피렌체와 베네치아, 암스테르담, 쑤저우, 이스파한, 파리, 로마, 런던, 빈, 베이징, 교토, 뉴욕을 도시 그림으로 읽어낸다.

저자는 "이렇게 열다섯 도시를 다 읽고 나면 동서양의 도시문명을 비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며 이 책을 두고 "도시문명의 '만화경'(萬華鏡)"이라고 자평했다.

책은 각 도시를 대표하는 도시그림 외에도 풍부한 도판으로 이해를 돕는다.

608쪽.
도시그림으로 떠나는 동서양 15개 도시여행…책 '도시의 만화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