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력 베테랑도 "그런 눈 평생 처음, 또 오면 힘 달려"
항공기 운항 중단 장기화…변덕스러운 날씨 등 여러 변수 작용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이다.

이맘때면 몇년 전 갑작스럽게 제주에 불어닥친 32년만의 폭설을 떠올리며, 따뜻한 남쪽 섬 제주도 결코 폭설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일깨운다.

당시 제주국제공항은 폭설피해로 전국의 어느 곳보다도 매우 긴박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7일 당시 제주공항 사람들의 속 사정을 들여다본다.

[제주공항 사람들] ⑦32년 만의 폭설 아찔…"치워도 치워도 끝 없었다"
◇ 32년 만의 폭설…긴박했던 제주공항 5일
2016년 1월 23일 제주 섬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따뜻한 남쪽 섬 제주에 7년 만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데 이어 32년만의 폭설이 몰아쳤다.

좀처럼 눈이 쌓이지 않는 제주지만 당시 12㎝ 눈이 내려 1984년 1월(13.9㎝) 이후 신(新)적설량으로는 32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쌓였다.

폭설로 인해 당일 오후 5시 50분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공항인 제주국제공항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군산항 대한항공 KE1918편 등 출발편 140여편이 결항, 관광객 등 2만여명이 제주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행기를 타려 대기하던 승객 대부분은 공항을 빠져나왔지만, 1천여명은 항공기 운항이 재개될 때 항공권을 먼저 구하려 공항에 남았다.

사람들은 공항 대합실 바닥에 종이상자 또는 신문지를 펴서 깔아 쪽잠을 자거나 이마저도 구하지 못하면 공항 의자 또는 바닥에 쪼그리고 누워 잠을 청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⑦32년 만의 폭설 아찔…"치워도 치워도 끝 없었다"
기상 악화가 계속 이어지면서 제주를 벗어나지 못한 체류객은 공항 공사 추산 8만9천여명으로 불어났고, 공항 인근 숙박시설과 식당·찜질방·사우나 등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특히, 공항에 남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숙식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도로가 얼어붙고 항공기·선박 운항이 중단되면서 물품 보급이 어려워지자 공항 안팎에 있는 편의점의 삼각김밥 등 신선식품과 과자가 바닥났다.

상황은 공항 내 커피전문점과 음식점 등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공항공사·유관기관·업체 등에서 모포와 담요·음식·식수 등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항공기 운항 중단 사태는 25일 오후 2시 47분 이스타항공 ZE236편이 승객 149명을 태우고 출발하면서 일단락됐다.

폭설로 활주로가 폐쇄된 지 44시간 만이었다.

제주에 발이 묶였던 체류객에 대한 수송작전은 밤낮없이 27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당시 국토부는 사상 처음으로 김포공항과 김해공항의 심야운항제한을 해제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⑦32년 만의 폭설 아찔…"치워도 치워도 끝 없었다"
◇ "치우고 치워도 끝 없었다"
"눈을 치우면 또 내리고, 치우고 또 치워도 계속 내리는데 끝이 없었어요.

"
30년 가까이 공항에서 근무한 A씨는 "2016년 당시와 같은 폭설은 평생 처음 경험해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당시 윈드시어(순간돌풍) 경보·대설경보가 공항에 발효된 데 이어 순간 초속 15m의 강한 돌풍이 몰아치는 최악의 기상조건에서 활주로 눈을 치우는 것은 무의미했다.

일반적으로 제주에선 밤 중에 눈이 내려 쌓이고 다음날 아침 해가 뜨면 자연스레 눈이 녹기 때문에 제설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32년만의 찾아온 한파 당시 많은 눈과 강한 바람이 밤낮으로 그칠새 없이 계속 이어지고, 눈보라가 일면서 시야도 확보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장비운영 인력 4명이 제설차 3대와 제설제 살포차 1대로 제주국제공항 제설 1순위 지역인 주활주로와 유도로 등 34만㎡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A씨는 "공항 제설 작업은 최단 시간 내에 많은 면적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무리가 따른다"며 "4박 5일간 잠도 제대로 못자고 풀로 일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제주공항 사람들] ⑦32년 만의 폭설 아찔…"치워도 치워도 끝 없었다"
23∼25일 44시간 활주로가 폐쇄됐지만, 항공기 운항이 재개된 뒤에도 눈이 계속 내려 27일까지 5일간 제설 작업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는 "당시 잠도 못자고 일을 하다보니 나흘째 되던 날에는 앞이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며 "이러니 우리가 실수할까봐 옆에 보조인력이 함께 타서 우리를 깨우며 일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공항 밖 도로에서 쓰는 일반 제설장비와 인력을 공항에 투입할 수도 없었다.

공항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활주로에 들어갔다가 비행기와 부딪히는 사고라도 내는 순간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공항 내에서 쓸 수 있는 장비는 고가의 특수 장비이기 때문에 아무나 운전해서도 안된다.

A씨는 "현재는 제설 장비와 인력도 늘고, 제설 능력도 많이 좋아졌지만 막상 또 폭설이 오면 힘이 달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제주공항 사람들] ⑦32년 만의 폭설 아찔…"치워도 치워도 끝 없었다"
◇ 공항 제설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눈이 얼마나 쌓이면 제주공항 활주로의 제설작업이 이뤄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육안으로 활주로 라인이 보이지 않을 정도면 바로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조종사들이 이착륙할 때 활주로 라인과 표시 등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눈에 덮이면 항공기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된다.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0.5㎝ 정도 적설량이면 활주로 라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기상청 기준 0.1㎝ 적설량이라고 하더라도 활주로 라인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 이때도 제설작업이 이뤄진다.

제주공항의 경우 제설작업이 이뤄진다는 것은 곧 '활주로 폐쇄', '항공기 운항 일시 중단'을 의미한다.

제주공항에는 동서 방향의 주활주로(길이 3천180m, 너비 45m)와 남동·북서 방향의 보조활주로(〃 1천900m, 〃 45m) 등 2개의 활주로가 있다.

보조활주로의 경우 이용율이 연간 0.5%에 불과할 정도로 낮아 사실상 제주공항의 활주로는 1개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인천·김포·김해 공항은 활주로가 2개 이상으로, 눈이 내릴 경우 제설작업을 하더라도 다른 활주로를 통해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지만 제주는 그렇지 않다.

[제주공항 사람들] ⑦32년 만의 폭설 아찔…"치워도 치워도 끝 없었다"
이러한 탓에 폭설이 올 경우 언론에는 '폭설로 제주공항 활주로 폐쇄…항공기 운항 차질'과 같은 제목의 보도가 이어지곤 한다.

이때마다 제설 작업을 하는 공항 관계자들은 '공항 이용객들이 마치 제설작업 지연으로 인해 공항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곤 한다.

폭설로 인한 장시간 항공기 운항 중단은 단순히 제설작업 지연 탓이라기 보다는 변덕스러운 제주의 날씨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현재 제주공항 제설장비 보유 능력으로 주활주로와 유도로의 제설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 내지 1시간 30분 가량이다.

이는 제설작업 이후 활주로 표면상태를 평가하고 마찰측정(마찰계수 0.4miu 이상)까지 마무리하는 등 항공기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 작업을 포함한 시간이다.

하지만 제설작업 완료 후에도 변덕스러운 제주의 날씨 탓으로 갑자기 눈이 다시 내려 쌓일 경우 다시 제설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활주로 폐쇄 시간은 연장될 수 밖에 없다.

또 공항에서 부는 측풍(Cross wind component)도 활주로 폐쇄의 하나의 원인이 된다.

겨울철 제주에 주로 부는 바람인 북서풍의 영향을 받게 되면, 동서 방향으로 난 주활주로의 항공기는 이착륙때 측풍을 맞게 된다.

이 때 항공기는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이착륙 때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송성진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토목부 과장은 "제주는 눈과 바람이 동시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한 시간 내외로 제설작업을 마무리해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측풍 또는 급변풍 탓으로 항공기 지연과 결항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⑦32년 만의 폭설 아찔…"치워도 치워도 끝 없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