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년째 복지관 쓸고·닦고…짝꿍과 이야기하며 활력 "나는 즐겁게 살아요.
일을 시켜주면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하고 싶어요.
"
지난 24일 부산 사상구 학장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채홍인 할머니는 "일이 힘들지 않으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채 할머니는 1916년 8월생으로 올해 나이 106세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공익형 일자리 사업으로 일하는 노인 가운데 최고령자다.
채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는 장사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노년에 접어들어서는 한동안 무료한 삶을 보냈다고 한다.
50여 년 전 남편을 여의고 아들과 함께 살며 15년 동안 경로당에 나가 하루를 보내던 것이 할머니 일상이었다.
하지만 2019년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노인 일자리 사업은 할머니의 100세 이후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냈다.
인터뷰를 위해 근무 장소를 찾아간 기자가 본 할머니 첫 모습은 놀라웠다.
한 손에 싸리 빗자루를 들고 난간 구석구석을 힘차게 쓸어내리고 있었는데 나이를 듣지 않았다면 70∼80대라고 생각할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백발에 이가 없는 것을 빼고는 소녀 같은 천진한 웃음을 짓고, 꼿꼿한 허리로 활기차게 걸으며 책상에 광을 내며 걸레질하는 모습이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보통 고령자 인터뷰 때는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할머니와는 모든 대화가 순조롭게 가능했고 할머니는 '트라우마'라는 영어 단어도 쓸 정도였다.
채 할머니는 78세 짝지 할머니와 함께 복지관 2층에 있는 방 5곳과 복도 청소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에 8번, 정해진 날짜에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출근해 꼬박 3시간을 일했다.
올해 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를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결근도 하지 않고 3년간 성실하게 일했다.
할머니는 지금도 보건소까지 1㎞가 넘는 길을 걸어서 다녀올 정도의 체력이 좋고, 큰 수술 한번 하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도 괜찮다고 말했다.
채 할머니 "내가 원래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다"라면서 "일을 하면 재밌고, 시간도 잘 가고, 돈도 벌고, 이야기도 하고 즐겁다"며 일을 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채 할머니가 일을 시작하면서 경제적·정서적·관계적인 모든 면에서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복지관 측 설명이다.
조용원 학장종합사회복지관 담당자는 "100세가 넘는 어르신 중에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정하시고 활동에 대한 의지가 있는 분도 있다는 걸 현장에서 보고 있다"면서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움직이게 되니 사회활동에 의지가 있으신 분들에게는 일하는 것이 행복한 노후를 위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 할머니의 짝지 채차순 할머니(78)는 "엄마 같은 나이인데 정정하시고 다리도 안 아프시고 일도 잘하고, 할머니는 아직 싱싱하다"면서 "국가 돈을 받으면 일을 가치 있게 해야지 (생각하면서) 우리는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채 할머니가 일하기 전에는 기초노령연금 30만7천500원이 한 달 생활비의 전부였지만, 일하고 난 뒤부터는 근로의 대가로 27만원을 추가로 더 받게 돼 생활에도 여유가 생겼다.
채 할머니는 "통장으로 돈을 받는데 새마을금고나 우체국도 가고, 내 돈을 내가 착착 (쓰고), 병원비로도 쓴다"면서 "없으면 없는 데로 있으면 있는 데로 사는 것이지만, 아무렴 낫다"고 말했다.
채 할머니는 건강 비결을 묻는 말에 "건강관리를 하는 게 없다"면서도 "웃으며 살라"고 말했다.
채 할머니는 "웃지, 운다고 되나요.
둥글둥글 살지, 즐겁게 살아요.
그냥 마음 편하게, 이것도 내복이지 하며 살아요"라면서 "나이 많다고 일을 안 시켜 주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건강할 때까지 시켜주면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일에 대한 의지를 재차 밝히기도 했다.
류승일 학장종합사회복지관장은 "항상 웃으시고 직원들도 반겨주는데 귀엽다는 말이 송구스럽지만 귀여우시다"면서 "경로당에서도 가장 고령자이지만 청소를 도맡아 할 정도로 먼저 움직이고, 많이 움직이시고, 그러면서도 적게 드시면서 마른 체형을 유지하는데 그것이 할머니 건강 비결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주민등록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전국에 100세 이상 인구는 7천745명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70년에는 국내에 100세 이상 인구만 5만7천330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하면 노인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감소하고 우울 수준 감소, 자존감 증대, 삶의 만족도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마라톤을 뛸 때 혼자 뛰려면 못 뛰지만 노인 일자리는 어르신들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고 어르신들을 움직이게 하는 활력소로 기능하기 때문에 향후 초고령화 시대에 좀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