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리더의 시각
이창민 KB증권 WM투자전략부 연구위원


최근 일주일간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기간 동안 생생하게 체감한 미국의 高 인플레이션, 경기 우려에 대한 현지의 생각, 달러, 그리고 내년 이후를 준비하는 투자 방향성을 고민했다. 할 말은 많지만 최대한 핵심 위주로 정리했다.
[매크로] 알 이즈 웰 (All is well). 물가와 경기에 대한 큰 걱정이 없다는 점에서 경계심 필요
[마켓PRO] 이제 분산투자는 '주식 vs 채권'이 아닌 '달러자산 vs 非달러자산'이 정답
물가, 고용 모두 ‘다 정상화될 것’이라는 막연하고 모순적인 낙관론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수의 기관은 뚜렷한 경기 침체 시그널들(ex. 장단기 금리 역전)을 보았을 때, 내년 하반기 (또는 내후년 초) 경기 침체를 전망했다. 하지만, 침체의 전망 여부와 관계 없이 강한 고용시장과 가계의 초과 저축 등 건전한 재무상황이 긴축으로 인한 경기 위축을 완화시킨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고용 환경이 좋아서 연준의 긴축이 더 강화될 가능성, 그리하여 내년 기준금리가 5%를 넘을 가능성(이 베이스 시나리오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마치 지금 시장의 모습같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혹은 좋더라도 물가 압력은 종국적으로 완화될 것이라는 엉성한 전망은 불안해 보였다.

또 흥미로웠던 점은 보고서 (written outlook)와 말 (oral outlook)이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는 좀 안좋아질 것’이라는 톤이지만 실제로 세미나 내내 말하는 톤은 ‘좀 안좋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좋아질 것이다’로 들렸다. 미래 경기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현 상황이 너무 좋아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10월 소비자물가에 시장은 환호했다. 이런 것 역시 시장에 여전히 희망회로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본다. 물가와 경기에 대한 큰 걱정이 없다는 점을 지속해서 경계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환율] 완만한 약세를 예상(희망)하는 달러. 단, 현 수준이 추세화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미국 vs. 非 미국’의 경제 체력, 통화 및 재정 정책, 금융시장 선호도를 감안할 때 강 달러의 장기화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현 위기 수준이 2008년 금융위기보다 낮다는 점(레버리지 규제 등 건전성 강화), 미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워낙 견고해 침체가 오더라도 마일드(mild)한 수준에 머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더불어 미팅 때 만난 모든 IB가 미국 가계와 기업 재무상황이 건전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최근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처럼 연준의 긴축을 반 강제적으로 따라가던 글로벌 주요국들은 금융시장에서 큰 홍역을 겪었다(영국 등). 연준의 통화정책이 오로지 미국에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만난 이들 역시 ‘글로벌 경제가 힘들더라도 미국은 제일 잘 버틸 것이며,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가장 안전한 자산(Safe Haven)인 미국에 투자할 것’이라는 것을 논리의 밑바탕으로 깔고 있었다.

다시 물가 이야기로 가면, 10월 일회성 물가 서프라이즈때문에 달러가 약세로 전환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는 관성처럼 이끌렸던 큰 폭의 달러 수요가 완화되면서 강세의 강도가 완화된 것 정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달러는 누가 뭐래도 달러다. 미국 경기가 좋아도 그리고 나빠도 달러는 강세라는 꽃놀이패를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가 있지만 아직은 희망에 불과하다. 달러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고 벌써부터 약세 기조 전환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한다.
[금리] 경기 우려가 채권 강세를 이끌 것이라는 컨센서스 vs. ‘Keep it higher’ Risk도 감안할 것
물가에서 경기로 이동할 투자 심리를 감안하면 내년에 채권이 주식의 대안투자처가 될 것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다만, 과거 경기 침체 시기처럼 장기금리가 빠르게 하락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공급과 수급의 괴리가 과거보다 크기 때문이다.

올 연말~내년 초는 단기물 중심, 그 이후부터는 장기물 중심의 분할매수 전략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큰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게 보지만, 부족한 채권시장 유동성이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채권 투자에 열정적인 개인투자자들에게 고한다. 초장기물 채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적절한 듀레이션을 가진(10년 정도) 장기물의 분할 매수를 권고드린다.



현지 IB 대부분 내년에는 미국 채권 금리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가가 잡히지 않아서 금리가 예상보다 더 높게 인상되어도 ‘경기’ 우려로 채권금리가 하락할 것이라는 게 논리의 배경이다. 채권 시장에서 큰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낮게 보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 강한 규제를 적용함에 따라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LR (Supplementary Leverage Ratio, 연준이 은행에 적용한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 NSFR (Net Stable Funding Ratio, 순안정자금조달비율, 유동성을 감안한 은행 보유자산대비 조달 자금의 비율, 100% 이상으로 유지)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 규제들은 은행의 건전성을 강화시켰다는 점에 이의가 없다.

다만, 현지 채권 애널리스트는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 시 미국 국채 시장은 훨씬 거대해졌는데, 각종 규제로 은행들이 레버리지를 줄인 결과, 국채를 과거보다 적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 요인으로 지적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유동성공급자 역할을 한 은행들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되면서 국채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국채의 양이 적어지는 유동성 축소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연준의 3대(?) 책무로 금융시장 안정이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헤지 비용이 증가 (또는 헤지를 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변동성 증가)하면서 외국인의 미국 국채 수요가 감소 (특히 일본 투자자)했고, 주요국 중앙은행의 양적긴축이 본격적으로 실시될 것이라는 점도 시장참여자들의 진입을 신중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런 요인들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이벤트 발생 시 대응의 차이를 만들 것이므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자산배분] 전통적 분산투자 전략이 안 먹힐 가능성. ‘주식 vs. 채권’이 아니라 ‘달러 자산 vs 비 달러 자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식 일색의 TINA(There Is No Alternative) 시대에서 엔데믹 이후의 시기는 TARA(There Are Reasonable Alternatives)로 정의할 수 있다. 주식을 대체할 대표 자산이 채권이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전통적인 개념의 ‘위험자산 vs. 안전자산’에 기반한 분산투자로는 포트폴리오 효과가 크게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이후를 준비하는 투자 전략으로 달러(USD) 표시 자산 비중 확대를 제안한다. 안전 마진 역할을 할 달러 자산 보유 여부가 투자 성과를 좌우할 것이다.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변동성(리스크)을 회피하기 위해 리밸런싱을 실시한다. 변동성을 높이는 자산을 매도(통상 주식)하고, 기존 포트폴리오와 상관계수가 낮은 자산(통상 채권, 현금성 자산)을 매수해 변동성을 축소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자산간 커플링이 심화되었다. 특히 지난 3분기는 달러를 제외하면 주식, 채권, 원자재, 금 등 그 어느 곳도 피난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경기 침체로 인한 기업 실적 우려로 주식시장은 조정을 겪었는데, 이런 전망을 미리 예측해 채권시장으로 피신했더라도, 예상을 상회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채권시장은 근래 보기 힘든 수준의 가격 조정이 발생했다.

다행히 최근 금융시장이 반등했는데 여전히 커플링의 모습이다. 이번 뉴욕 출장을 통해 변화된 전망이 있다면 바로 ‘달러’다. 자산배분 시 과거처럼 ‘위험자산 vs. 안전자산’의 개념이 아니라, 의미 있는 비중의 ‘달러(USD) 표시 자산’ 유무가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판단된다. 에너지 순 수출국 지위 속에 미국 무역수지는 크게 개선되었고, 향후 리쇼어링 정책이 힘을 발휘할 때 ‘미국으로의 달러 귀환’이 달러의 가치를 견고히 유지시켜줄 것이다. 어떻게 봐도 미국은 ‘상대적으로’ 괜찮을 것 같다. 올해 미국 S&P500 지수에 투자했다면 성과는 -16%이지만, 환차익은 +11%다 (11/11 기준). 달러 자산에 관심을 갖자. 우리가 언제 미국 국채를 4% 수익률에 매수해 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