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니부터 아르테미스까지…美 달 탐사 6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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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스푸트니크 발사에 충격…1969년 아폴로11호 달착륙 선점
70년대 비용 문제로 중단됐다 21세기 뉴 스페이스 시대 개막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6일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의 첫 단추격인 아르테미스Ⅰ 미션을 수행할 우주발사시스템(SLS) 로켓을 발사하면서 50년만에 달 탐사의 부활을 알렸다.
1950∼1970년대 미국과 옛 소련 간 가열된 우주경쟁에서 정점에 달했던 달 탐사 프로젝트는 냉전 시대 종식을 전후로 수십 년간 소강상태에 빠졌으나, 21세기 들어 민간 자본이 대거 유입되며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는 모습이다.
우주전문 매체 '스페이스닷컴'(space.com)은 아르테미스Ⅰ 로켓 발사와 관련, 아폴로 프로젝트에서 아르테미스까지 60여 년에 걸친 NASA의 여정을 소개했다.
달 탐사 계획의 대명사가 된 미국의 아폴로 계획은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깊어가던 1950년대 말 태동했다.
이미 서방과 동유럽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력에 직결되는 로켓 개발 경쟁을 벌이던 상황에서 1957년 10월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엄청난 충격을 뜻할 때 '스푸트니크적 충격'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당시 미국이 받은 '쇼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연설을 통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 공언하며 달 탐사 경쟁의 서막을 알렸다.
NASA는 1959년부터 머큐리 계획을 통해 유인 우주선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렸다.
이는 1960년대 제미니 계획으로 이어지며 우주 비행사를 달 표면으로 보내기 위한 조종법과 부품 개발 연구가 가속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61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하는 아폴로 프로젝트가 시작됐지만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1967년 1월 아폴로1호의 테스트 훈련 도중 발생한 화재로 거스 그리섬 등 비행사 3명이 숨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아폴로4·5·6호 무인 비행으로 노하우를 쌓은 NASA는 1968년 10월 아폴로7호로 첫 유인 발사에 성공했다.
당시 월터 쉬라 등 비행사가 11일간 지구 궤도를 선회했다.
같은 해 12월 아폴로8호가 최초로 지구 궤도를 떠나 달을 선회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프로젝트에 속도가 붙었고, 9·10호 발사가 이어지며 점점 더 달 표면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폴로 8호는 탐사 과정에서 달 표면 위로 지구가 떠 오르는 장면을 촬영한 유명한 사진 한 컷을 남겼다.
국제천문연맹(IAU)은 지난 2018년 8호의 달 도착 50주년을 기념하며 이 사진에 '지구돋이'(Earthrise)라는 이름이 붙이기도 했다.
1969년 7월 마침내 아폴로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며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겼다.
당시 달 표면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아직 달 전토층(regolith)에 남아 있다고 한다.
암스트롱은 버즈 올드린과 함께 총 21시간 36분 동안 달 표면에 머물렀다.
같은 해 11월 아폴로12호 역시 성공적으로 달 표면에 도달하며 아폴로 계획이 궤도에 안착하는 듯했지만, 이듬해인 1970년 4월 발사된 아폴로13호는 달로 향하던 중 산소탱크 폭발 사고를 겪고 겨우 지구로 귀환했다.
13호가 겪은 실패 과정은 1995년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져 다시금 세간에 회자하기도 했다.
NASA는 1972년 12월 월석 채취 등 과학 임무에 중점을 둔 아폴로17호를 마지막으로 달 표면 탐사를 중지했다.
아폴로 11∼17호(13호 제외)까지 달에 착륙한 우주인은 모두 12명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 아폴로 계획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다는 여론이 거세졌고,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이 예산을 베트남 전쟁과 같은 곳에 돌려쓰기로 했다.
NASA는 달 탐사를 준비하면서 아폴로11호에 쓰인 새턴V(5호) 로켓 개발 등 여러 기술적인 업적을 남겼다.
약 36층 건물 높이(약 111m)에 달하는 새턴V는 인류가 개발한 로켓 중 가장 강력한 추력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1주일간 달 탐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아폴로 사령선, 달 궤도를 도는 사령선에서 분리돼 표면에 착륙했다가 자체 엔진을 이용해 다시 모선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달착륙선 등도 아폴로 계획을 위해 새로 개발된 것들이다.
과학자들은 아폴로 계획을 통해 달 표면에서 가져온 월석 시료를 통해 5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뤄내고 있다.
미국은 총 11번의 우주선을 쏘아 올린 NASA의 아폴로 계획에 총 28억 달러(약 37조8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부은 것으로 추산된다.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면 현재 가치 약 2천830억 달러(약 381조9천억 원)에 달한다고 스페이스닷컴은 설명했다.
수십 년간 차갑게 식은 듯했던 인류의 달 탐사 열정은 21세기 들어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스페이스X,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의 블루 오리진 등 민간 영역에서 우주로켓 발사 사업을 앞다퉈 시작한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이 2018년 창어 4호를 달 뒷면에 인류 최초로 착륙시키고 인도,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달탐사에 잇달아 나서면서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NASA는 아폴로 계획이 멈춘 지 꼭 50년이 되는 지금 다시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계획 1단계(아르테미스Ⅰ)는 이날 SLS에 실려 발사된 유인 캡슐 오리온이 26일간에 걸쳐 달 궤도에 무인 비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총 길이 98.1m로 32층 건물 높이인 SLS 블록1 로켓은 새턴V(110m)보다 짧지만, 최대 추력이 880만 파운드(400만㎏) 정도로 15% 더 강화됐다.
NASA는 2단계인 2024년의 유인비행, 3단계인 2025년 최초의 여성과 유색인종 우주비행사의 달 착륙까지 이어가며 궁극에는 달을 전진기지로 삼아 화성을 비롯한 심우주 유인 탐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
70년대 비용 문제로 중단됐다 21세기 뉴 스페이스 시대 개막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6일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의 첫 단추격인 아르테미스Ⅰ 미션을 수행할 우주발사시스템(SLS) 로켓을 발사하면서 50년만에 달 탐사의 부활을 알렸다.
1950∼1970년대 미국과 옛 소련 간 가열된 우주경쟁에서 정점에 달했던 달 탐사 프로젝트는 냉전 시대 종식을 전후로 수십 년간 소강상태에 빠졌으나, 21세기 들어 민간 자본이 대거 유입되며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는 모습이다.
우주전문 매체 '스페이스닷컴'(space.com)은 아르테미스Ⅰ 로켓 발사와 관련, 아폴로 프로젝트에서 아르테미스까지 60여 년에 걸친 NASA의 여정을 소개했다.
달 탐사 계획의 대명사가 된 미국의 아폴로 계획은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깊어가던 1950년대 말 태동했다.
이미 서방과 동유럽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력에 직결되는 로켓 개발 경쟁을 벌이던 상황에서 1957년 10월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엄청난 충격을 뜻할 때 '스푸트니크적 충격'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당시 미국이 받은 '쇼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연설을 통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 공언하며 달 탐사 경쟁의 서막을 알렸다.
NASA는 1959년부터 머큐리 계획을 통해 유인 우주선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렸다.
이는 1960년대 제미니 계획으로 이어지며 우주 비행사를 달 표면으로 보내기 위한 조종법과 부품 개발 연구가 가속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61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하는 아폴로 프로젝트가 시작됐지만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1967년 1월 아폴로1호의 테스트 훈련 도중 발생한 화재로 거스 그리섬 등 비행사 3명이 숨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아폴로4·5·6호 무인 비행으로 노하우를 쌓은 NASA는 1968년 10월 아폴로7호로 첫 유인 발사에 성공했다.
당시 월터 쉬라 등 비행사가 11일간 지구 궤도를 선회했다.
같은 해 12월 아폴로8호가 최초로 지구 궤도를 떠나 달을 선회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프로젝트에 속도가 붙었고, 9·10호 발사가 이어지며 점점 더 달 표면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폴로 8호는 탐사 과정에서 달 표면 위로 지구가 떠 오르는 장면을 촬영한 유명한 사진 한 컷을 남겼다.
국제천문연맹(IAU)은 지난 2018년 8호의 달 도착 50주년을 기념하며 이 사진에 '지구돋이'(Earthrise)라는 이름이 붙이기도 했다.
1969년 7월 마침내 아폴로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며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겼다.
당시 달 표면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아직 달 전토층(regolith)에 남아 있다고 한다.
암스트롱은 버즈 올드린과 함께 총 21시간 36분 동안 달 표면에 머물렀다.
같은 해 11월 아폴로12호 역시 성공적으로 달 표면에 도달하며 아폴로 계획이 궤도에 안착하는 듯했지만, 이듬해인 1970년 4월 발사된 아폴로13호는 달로 향하던 중 산소탱크 폭발 사고를 겪고 겨우 지구로 귀환했다.
13호가 겪은 실패 과정은 1995년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져 다시금 세간에 회자하기도 했다.
NASA는 1972년 12월 월석 채취 등 과학 임무에 중점을 둔 아폴로17호를 마지막으로 달 표면 탐사를 중지했다.
아폴로 11∼17호(13호 제외)까지 달에 착륙한 우주인은 모두 12명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 아폴로 계획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다는 여론이 거세졌고,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이 예산을 베트남 전쟁과 같은 곳에 돌려쓰기로 했다.
NASA는 달 탐사를 준비하면서 아폴로11호에 쓰인 새턴V(5호) 로켓 개발 등 여러 기술적인 업적을 남겼다.
약 36층 건물 높이(약 111m)에 달하는 새턴V는 인류가 개발한 로켓 중 가장 강력한 추력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1주일간 달 탐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아폴로 사령선, 달 궤도를 도는 사령선에서 분리돼 표면에 착륙했다가 자체 엔진을 이용해 다시 모선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달착륙선 등도 아폴로 계획을 위해 새로 개발된 것들이다.
과학자들은 아폴로 계획을 통해 달 표면에서 가져온 월석 시료를 통해 5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뤄내고 있다.
미국은 총 11번의 우주선을 쏘아 올린 NASA의 아폴로 계획에 총 28억 달러(약 37조8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부은 것으로 추산된다.
물가상승 등을 고려하면 현재 가치 약 2천830억 달러(약 381조9천억 원)에 달한다고 스페이스닷컴은 설명했다.
수십 년간 차갑게 식은 듯했던 인류의 달 탐사 열정은 21세기 들어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스페이스X,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의 블루 오리진 등 민간 영역에서 우주로켓 발사 사업을 앞다퉈 시작한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이 2018년 창어 4호를 달 뒷면에 인류 최초로 착륙시키고 인도,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달탐사에 잇달아 나서면서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NASA는 아폴로 계획이 멈춘 지 꼭 50년이 되는 지금 다시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계획 1단계(아르테미스Ⅰ)는 이날 SLS에 실려 발사된 유인 캡슐 오리온이 26일간에 걸쳐 달 궤도에 무인 비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총 길이 98.1m로 32층 건물 높이인 SLS 블록1 로켓은 새턴V(110m)보다 짧지만, 최대 추력이 880만 파운드(400만㎏) 정도로 15% 더 강화됐다.
NASA는 2단계인 2024년의 유인비행, 3단계인 2025년 최초의 여성과 유색인종 우주비행사의 달 착륙까지 이어가며 궁극에는 달을 전진기지로 삼아 화성을 비롯한 심우주 유인 탐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