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초 통치기조 확립해야 하는데…'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타이밍" 모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영국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74)가 즉위 초반부터 복병을 만났다.
영국 왕실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5가 9일 공개되면서다.
이 드라마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 커밀러 왕비와의 불륜이라는 인생 최악의 '흑역사'가 소환되면서 찰스 3세가 곤혹러운 처지가 됐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넷플릭스로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타계와 찰스 3세의 즉위로 영국 왕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만큼 시즌5의 공개 시점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WP는 평가했다.
하지만, 찰스 3세로서는 이 드라마로 '한때 형편없고, 슬픈 결혼 생활에서 형편없고, 슬픈 남편'이었다는 지워버리고 싶은 사실이 시청자들에게 환기될 수밖에 없게 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왕위에 오른데다 즉위 직후 제대로 통치 분위기를 조성해나가야 하는 시점인만큼 그가 느낄 당혹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찰스 왕세자는 엘리자베스 2세의 타계에 따라 왕세자 책봉 64년 만인 지난 9월 10일 공식 즉위했고, 내년 5월 대관식을 앞두고 있다.
런던시티대 왕실사 전문가인 안나 화이트록 교수는 "'더 크라운'의 새로운 시즌은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자리를 잡으려하는 시점에 방영을 시작했다"며 "시점 면에서 이 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드라마의 속성상 시청자들이 또한 사실과 허구를 혼동할 소지가 있다는 것도 문제다.
2016년 11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더 크라운'은 이미 여러 차례 사실 왜곡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넷플릭스는 항의와 논란이 잇따르자 최근 '더 크라운' 시즌 5 공식 홈페이지와 관련 소셜미디어 등에 이 작품이 허구라는 고지 사항을 추가하기도 했다.
특히 시즌5부터는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다수의 등장 인물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 사람들로 채워지며 사실과 허구를 혼동할 여지가 더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WP는 만약 찰스 3세가 '얼간이'로 비쳐진다면 이는 왕실의 미래와 왕실의 '소프트 파워'를 세계에 투사하는 능력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적 사랑을 받은 엘리자베스 2세와는 달리, 찰스 3세의 경우 가뜩이나 영국 대중의 지지율도 44%에 불과한 실정이다.
9일에는 요크를 방문한 찰스 3세에게 "이 나라는 노예들의 피로 세워졌다"고 항의하는 20대 남성이 계란을 던져 그가 맞을 뻔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 왕실의 전기 작가인 페니 주너는 '더 크라운' 시즌5가 사실을 왜곡한다는 측면에서 불공정할 뿐 아니라 왕실에 매우 해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무리 많은 부인이 있더라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젊은층에서 두드러질 것이라고 WP는 예상했다.
최근 영국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더 크라운'이 완전히 또는 대체로 정확한 사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20%에 못미쳤지만, 18∼24세 청년층의 경우 '정확하다'는 응답이 65세에 비해 3배에 달했다
아울러 이 드라마를 시청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에 스며드는 왕실에 대한 인식은 여론 조사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WP는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