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중간선거] 앤디 김, 백인 지역구서 세 번 쏘아올린 '아메리칸드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6년만에 한인 3선 이룬 앤디 김, '오바마 키즈' 꼽히는 중동 전문가
의사당 청소로 전국적 주목…'아시아계 네거티브' 이겨내고 중진 반열 11·8 미국 중간선거 승리로 26년 만에 첫 한국계 3선 연방의원이 된 앤디 김(민주·뉴저지) 하원의원은 아메리칸드림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중동 안보 전문가다.
백인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아시아계가 드문 뉴저지 3선거구에서 자칫 '핸디캡'이 될 수도 있는 자신의 혈통을 감추기는커녕 선거운동 홈페이지 소개란을 "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 이민자들의 아들"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할 정도로 가족과 그 성공 스토리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김 의원에 따르면 부친 김정한 씨는 고아에 소아마비를 앓으며 집도 없이 자랄 정도로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으나,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거쳐 유전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암과 알츠하이머 치료에 평생을 바친 입지전적 인물이다.
가난한 농가 출신의 모친 또한 간호사로 뉴저지주 남부에서 수천 명의 환자를 돌봤다고 한다.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공립교육이 우수한 뉴저지주 남부에 정착한 부모의 선택으로 나중에 자신의 지역구가 되는 마을의 공립학교들을 졸업한 김 의원은 시카고대를 나와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9년 9월 이라크 전문가로 국무부에 입성해 201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현지 주둔 미군 사령관의 전략 참모를 지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몸담았던 '오바마 키즈' 중 한 명인 김 의원은 정계 입문 후 오바마 전 대통령뿐 아니라 당시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유세 지원을 받은 바 있다.
2013년부터 2015년 2월까지는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각각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특히 2013년에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전문가로서 오바마 행정부의 IS 격퇴전과 인도주의 지원을 담당하는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김 의원이 정치에 뛰어든 것은 자신과 가족에게 기회의 땅이 됐던 뉴저지에서 이제 고장 난 아메리칸드림의 기회를 미래 세대를 위해 되살리겠다는 포부에서였다.
그는 "이처럼 똑같은 기회가 내 아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내 가족을, 내 이웃을, 나를 키워준 지역사회를, 그리고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는 노동자 가정들을 위해 싸우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1·6 의사당 난입 사태 직후 묵묵히 혼자서 쓰레기를 치우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인지도를 높이기도 했다.
뉴저지주 3선거구는 지난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많은 표를 가져갈 정도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우위 지역이 일부 떨어져 나가고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지역이 편입돼 일찌감치 승리가 점쳐졌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 성향이더라도 김 의원과 접점이 없었던 낯선 백인 유권자들의 대거 유입은 호재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펑크록 밴드 리드보컬 출신의 요트 사업가인 밥 힐리 공화당 후보가 김 후보의 인종을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면서 이러한 틈을 파고들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인플레이션과 경제 우려로 집권 민주당의 인기가 전국적으로 떨어진 여파까지 겹쳐 선거 일주일 전 정치분석기관 쿡폴리티컬리서치는 이 선거구를 '민주당 유력'에서 '민주당에 기울어진' 선거구로 판세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수성에 성공한 김 의원은 이제 중진 의원으로서 워싱턴 정가에서 본격적으로 본인 정치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의원의 3선 성공은 역사적인 일로 미국의 다양성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과 한국계의 활력을 잘 보여준다"며 "나이, 전문성, 자질 등 모든 면에서 정치인으로 롱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제 중진 대열에 진입하는 김 의원은 지난 1996년 첫 한인 3선 연방하원의원이 됐던 김창준(공화) 전 의원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향후 민주당 지도부 입성에 도전할 가능성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의사당 청소로 전국적 주목…'아시아계 네거티브' 이겨내고 중진 반열 11·8 미국 중간선거 승리로 26년 만에 첫 한국계 3선 연방의원이 된 앤디 김(민주·뉴저지) 하원의원은 아메리칸드림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중동 안보 전문가다.
백인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아시아계가 드문 뉴저지 3선거구에서 자칫 '핸디캡'이 될 수도 있는 자신의 혈통을 감추기는커녕 선거운동 홈페이지 소개란을 "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 이민자들의 아들"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할 정도로 가족과 그 성공 스토리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김 의원에 따르면 부친 김정한 씨는 고아에 소아마비를 앓으며 집도 없이 자랄 정도로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으나,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거쳐 유전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암과 알츠하이머 치료에 평생을 바친 입지전적 인물이다.
가난한 농가 출신의 모친 또한 간호사로 뉴저지주 남부에서 수천 명의 환자를 돌봤다고 한다.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공립교육이 우수한 뉴저지주 남부에 정착한 부모의 선택으로 나중에 자신의 지역구가 되는 마을의 공립학교들을 졸업한 김 의원은 시카고대를 나와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9년 9월 이라크 전문가로 국무부에 입성해 2011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현지 주둔 미군 사령관의 전략 참모를 지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몸담았던 '오바마 키즈' 중 한 명인 김 의원은 정계 입문 후 오바마 전 대통령뿐 아니라 당시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유세 지원을 받은 바 있다.
2013년부터 2015년 2월까지는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각각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특히 2013년에는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전문가로서 오바마 행정부의 IS 격퇴전과 인도주의 지원을 담당하는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김 의원이 정치에 뛰어든 것은 자신과 가족에게 기회의 땅이 됐던 뉴저지에서 이제 고장 난 아메리칸드림의 기회를 미래 세대를 위해 되살리겠다는 포부에서였다.
그는 "이처럼 똑같은 기회가 내 아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내 가족을, 내 이웃을, 나를 키워준 지역사회를, 그리고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는 노동자 가정들을 위해 싸우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1·6 의사당 난입 사태 직후 묵묵히 혼자서 쓰레기를 치우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인지도를 높이기도 했다.
뉴저지주 3선거구는 지난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많은 표를 가져갈 정도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우위 지역이 일부 떨어져 나가고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지역이 편입돼 일찌감치 승리가 점쳐졌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 성향이더라도 김 의원과 접점이 없었던 낯선 백인 유권자들의 대거 유입은 호재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펑크록 밴드 리드보컬 출신의 요트 사업가인 밥 힐리 공화당 후보가 김 후보의 인종을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면서 이러한 틈을 파고들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인플레이션과 경제 우려로 집권 민주당의 인기가 전국적으로 떨어진 여파까지 겹쳐 선거 일주일 전 정치분석기관 쿡폴리티컬리서치는 이 선거구를 '민주당 유력'에서 '민주당에 기울어진' 선거구로 판세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수성에 성공한 김 의원은 이제 중진 의원으로서 워싱턴 정가에서 본격적으로 본인 정치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의원의 3선 성공은 역사적인 일로 미국의 다양성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과 한국계의 활력을 잘 보여준다"며 "나이, 전문성, 자질 등 모든 면에서 정치인으로 롱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제 중진 대열에 진입하는 김 의원은 지난 1996년 첫 한인 3선 연방하원의원이 됐던 김창준(공화) 전 의원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향후 민주당 지도부 입성에 도전할 가능성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