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겨간 커피 믹스와 물 10ℓ 나눠 먹고 모닥불 피워 체온 유지 광부이자 광산업체 작업 반장인 박모(62)씨는 '그날' 안전모를 눌러쓰고 두꺼운 작업복을 갖춘 채 경북 봉화군 한 아연광산 제1 수직갱도로 내려갔다.
광산 업계에 20여년 간 종사해온 그에게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갱도 작업'을 하는 날이었다.
그의 옆에는 광산업에 종사한 지 1년 정도 된 새내기 보조작업자 박모(56)씨가 함께했다.
두 사람은 커피 믹스 가루와 절반 정도 채워진 20ℓ짜리 물통도 챙겼다.
아연광산 제1 수직갱도 지하 190m 지점에서 두 사람이 이상 신호를 감지한 건 지난달 26일 오후 6시께였다.
갱도 내로 수백t의 펄(토사)이 30여분 간 쏟아지기 시작하면서다.
암흑천지 속에 고립된 두 사람은 지상으로 탈출하기 위해 챙겨간 조명(랜턴)에 의지해 갱도 내부 여기저기를 헤맸지만, 출구를 찾을 수는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급히 대피할 공간을 찾던 두 사람은 사고 당시 작업 장소 인근에 평소 광부들이 휴식을 위해 찾는 공간으로 몸을 옮겼다.
사방으로 연결된 갱도들이 일종의 '인터체인지' 형태로 엇갈린 이곳에 두 사람은 간이 대피소를 설치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는 평소 동료들이 사용하던 물품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바닥에 고인 물을 피하려고 패널을 깔았고 주변은 천막으로 덮었다.
급한 대로 은신처는 마련했지만 이후 찾아온 갈증과 허기, 공포에 또다시 몸서리를 쳤다.
이들은 때마침 챙겨간 커피 믹스 가루와 10ℓ 물을 밥처럼 나눠 먹으며 가까스로 열흘을 버텼다.
고립 막판에는 그나마 챙겨간 물마저 바닥이 났지만, 이번에는 지하수를 모아 마시면서 희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시시각각 엄습해오는 추위는 모닥불과 서로의 체온으로 막아내며 이겨냈다.
챙겨간 손목시계가 무색하게 알 수 없이 긴 시간이 흐르고 애타게 기다리던 구조 대원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이따금 들려오는 아득한 발파 소리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언제 꺼져버릴지 알 수 없는 랜턴 조명을 조금이나마 더 오래 쓰기 위해 교대로 랜턴을 켜는 방법으로 시간을 벌기도 했다.
두 광부의 가족은 물론이고 모두의 희망이 희미해져 갈 무렵인 4일 오후 11시 3분께 두 사람의 눈앞에 마침내 구조 대원들이 기적처럼 등장했다.
커다란 암벽 덩어리를 깨고 한 작업자가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달려온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이름을 부르거나 "수고했어"라고 외치며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뒤따라온 119 특수구조대원들의 도움을 받은 두 사람은 갱도를 스스로 걸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무너질 줄 알았던 광부의 하늘을 되찾은 순간이었다.
사고 발생 열흘째, 시간으로는 만 221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두 사람은 자력으로 걸어서 탈출할 만큼 건강 상태는 양호했다.
현장에 있던 광산업체 부소장은 "인간 승리"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광산은 일순간 환희로 가득 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