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진로 개척한 청년 3인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실 때 가족들이 할머니의 의료기록을 해석할 수도, 볼 수도 없는 게 안타까웠어요. 의료와 기술을 융합한 메타버스 병원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어요." (김요섭 델토이드 대표·연세대 의학전문대학원)
"수능 끝나고 시간이 남을 때 검정고시 멘토링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 때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면서 생각했죠. 이들의 대학 진학을 돕는 사람이 되자." (강예은 마이유니 대표)
3일 '글로벌인재포럼 2022'의 '대전환 시대의 진로탐색' 세션에서 발표에 나선 연사들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중요한 건 내가 가진 역량을 여러 분야에 얼마나 적용할 수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과거처럼 '진로의 정답지'가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하고 융합시키면서 '진로의 새 경로'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학 가고싶은 청소년 진학 돕는 24살 대표
학교 밖 청소년 진학 컨설팅 회사인 마이유니를 창업한 강예은 대표는 24살이다. 처음부터 회사를 창업할 생각은 아니었다. 2018년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학 전까지 남는 시간에 봉사활동을 하다가 학교 밖 청소년들은 만나게 됐다. 강 대표가 만난 학교 밖 청소년들은 다들 이렇게 말했다. "대학이요? 가고싶죠. 그런데 수능은 너무 복잡하고 수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강 대표는 자신이 이들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당시 대학들이 검정고시 성적을 내신으로 환산하는 방식을 전부 다르게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모집요강에 환산 기준조차 표기하지 않은 대학들도 많았다. 강 대표는 대학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내신 환산법을 정리했다. 강 대표가 정리한 정보로 경기 김포시에 있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그 때 강 대표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김포시 밖에 있는 청소년들도 많다. 전국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2020년 강 대표는 유튜브를 만들고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진학 컨설팅 영상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댓글로 질문이 올라오면 댓글로 답변하면서 전국 학교 밖 청소년들과 소통했다. 그 때 "비교 내신이 너무 복잡해서 올해는 진학 포기할래요"라는는 청소년이 많았다. 이들을 도와줄 수는 없을까. 그는 검정고시 점수를 입력하면 내신으로 자동환산해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학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자동환산 홈페이지 개발을 위한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을 찾는다고 글을 올렸다. 돈도 안주는 일에 누가 지원할까 했지만 7명이나 모였다. 7명이 팀이 돼 6개월 동안 개발에 몰두했다.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학 내신환산 페이지를 만들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했다. 강 대표는 "이 홈페이지를 통해 대학 진학에 용기를 냈다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고 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일단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되나? 가능성이 있나?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포기했다면 학교 밖 청소년 수백명의 진학을 도와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직업 이동이 거의 없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앞으로는 20~60번씩 직업을 바꾸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여러 분야에서 잘 엮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강 대표는 "새로운 세상에선 남이 간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 곧 세상의 가능성이고 곧 내 길이 된다"고 강조했다.
14개 대학에서 4개 전공 공부한 창업가
김요섭 델토이드 대표는 대학 전공이 4개다.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했고 기술경영학과 생명화학공학을 함께 공부했다. 연세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학생 의사로서도 일했다. UC버클리, 북경대, 오사카대 등 등 교환학생 경험을 포함해 14개의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2018년 창업한 첫 회사를 매각하고 2020년 델토이드를 창업한 경영인이기도 하다. 그는 많은 학교에서 다양한 전공을 배운 경험에 대해 "학교와 전공마다 철학과 문화가 많이 다르다"며 "직접 그 속에, 문화 속에 들어가봐야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정확히 이해하고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직접 다 배웠다"고 했다. 김 대표는 "모든 개인이 기업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며 "스스로를 경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고 했다.공학과 의학, 경영학을 모두 공부한 김 대표는 이를 모두 융합할 수 있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델토이드를 차렸다. 의료 분야에 기술이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데, 의사들은 기술을 모르고 기술자들은 의료 분야를 몰라 그게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바이탈사인 같은 건 의사들만 보잖아요. 환자나 가족들은 해석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었어요."
김 대표는 블록체인 기반 의료시스템을 이용한 메타버스 병원을 개발 중이다. "쉽지는 않죠. 헬스케어는 생명과 직결돼 있는 일이라 아무 서비스나 함부로 제공할 수 없고, 의료 정보는 그 자체가 민감해요. 그래서 규제도 많고요. 저는 의학과 기술의 언어를 모두 아는 사람으로서, 이 조건을 잘 충족시키면서 의료 분야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의대생이 '과학 커뮤니케이터'된 까닭은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장혜리 씨의 목표 중 하나는 과학의 대중화다. 자신을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른다. 어린이 중심의 과학 교육에서 벗어나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여러 과학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과학을 소재로 한 노래, 춤, 공연 등이다. 최근엔 과학사를 판소리와 연극 방식으로 연출한 과학소리극을 대학로에 올렸다. "과학자들, 예술가들, 연출진들이 소통하고, 융합시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과학과 판소리를 융합하려는 시도는 장 씨의 과학판소리극이 세계 최초다.그는 유튜브 '과학수다'를 기획하고, 과학기술대전에 과학개그를 자문하고, 여러 과학 버스킹을 기획했다. "과학기술이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됩니다. 대중들과 나눠야죠. 1명의 과학자는 1000만명의 사람의 삶의 질을 바꿀 수 있습니다. 과학의 대중화를 통해 과학자를 양성시키고 과학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장 씨는 과학 대중화라는 자신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추진력 있게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해 실행할 수 있었을까. "진로탐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자신을 잘 아는거예요. 아직도 많은 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단순히 명사 형태로 정의하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자신을 정의할 때 명사로만 한정시키기보단 본인 스스로를 동사로 표현해봐야 해요. 이렇게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앞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도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그는 과학과 판소리를 연결하는 소리극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했다. 국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판소리극을 보면서 직접 공부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열린 마음인 것 같아요. 나와 다른 경험을 해온 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배운 것들은 결국 나의 다른 일에도 도움이 됩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