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허문찬 기자
“앞으론 반도체만 팔아서는 안 됩니다. 정부와 기업, 학계가 힘을 합쳐 판을 완전히 뒤집을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재서 SK하이닉스 전략기획 부사장)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겁니다. 한국이 가진 제조 역량을 레버리지(지렛대)로 치열한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2일 열린 ‘글로벌인재포럼 2022’에선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반도체 전문가들의 다양한 전략이 제시됐다. 기존 반도체 산업의 규칙을 따라가는 방식의 ‘선형적 접근’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판을 깔기 위한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도체 분업체계 흔들린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조교수는 ‘반도체 기술패권 시대 생존전략’ 세션에서 “글로벌 반도체 분업체계가 완전히 흔들리고 있다”며 “만약 중국이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떨어져 나갈 경우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 기업은 부품 공급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수출 통제 조치를 내놓는 등 미·중 기술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세션 좌장을 맡은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한국 입장에선 미국의 지적자산을 무시하기도 어렵고, 큰 고객으로 있는 중국을 배제할 수도 없다”며 “중간에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분야에서 ‘칩4(Chip4, 한·미·일·대만)’ 동맹도 추진하고 있다. 권 교수는 “미국과 칩4 협상을 할 때 한국의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인센티브를 강력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파괴적 기술 개발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도체 생태계 자체를 혁신할 차세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부사장은 “중장기적으로 장벽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적인 기술 개발이 절실하다”며 “인공지능(AI) 인프라를 정부와 기업, 학계가 같이 만드는 식의 큰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도 “반도체 인재를 한국 내에서만 찾을 필요가 없다”며 “미국이 자국인이 아닌 사람들의 혁신적 아이디어까지 자산으로 삼았던 것처럼 한국 반도체 혁신도 발상의 전환, 생각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네덜란드의 기술연구 중심대학들이 주요 유럽 기업들과의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 역량을 축적한 것을 참고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반도체 고급 인력 절실”

‘반도체 인재 확보 전쟁’ 세션에선 반도체 인재를 효과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선식 삼성전자 산학협력센터 부사장은 “반도체 실무를 담당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많은 사전 준비와 공감대, 법제화 등 긴호흡의 육성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소 5개 이상의 다양한 전공 교육을 이수하고 곧장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개발 역량을 갖춘 석박사급의 고급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반도체 기업이 채용한 인원 중 실제 반도체 교육을 받은 비중은 20~30% 수준에 불과했다.

김 부사장은 “후학을 양성할 교수진 확보와 노후화된 인프라 교체 등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합부 HYU석학교수는 “당장 대학이 반도체 관련 교육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이 확대되는게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고은이/최석철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