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맏형’ HMM 주주들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어둡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에만 6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보유 현금만 12조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10조원대로 보유 현금마저 밑돌고 있다. 해운업계의 ‘슈퍼 사이클’이 끝났다는 관측이 이 회사 주가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운사 실적을 가르는 해상 운송료 지표도 추락 중이다. 상장사 4위 영업이익에도 HMM 외면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HMM은 올 상반기 매출 9조9527억원, 영업이익 6조856억원을 거뒀다. 작년 상반기와 비교해 각각 86.6%, 152.7%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이 회사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상장사 가운데 삼성전자(28조2185억원)와 SK하이닉스(7조522억원) SK(6조6311억원)에 이어 가장 컸다.다른 해운사들도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다. 팬오션은 올 상반기 매출 3조1631억원, 영업이익 4079억원을 거둬 작년 상반기 대비 각각 74.7%, 153.4% 뛰었다. 장금상선 에스엠상선 대한해운 대한상선 등도 좋은 실적을 올렸다. 해운업계는 올 상반기 국내 해운사 영업이익이 1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한진해운 현대상선(현 HMM) STX팬오션(현 팬오션)을 비롯한 한국 해운사는 1990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해운업계를 주름잡았다. 글로벌 화주들을 고객으로 두고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 해운사의 전성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이후 끝났다. 적자를 이어가면서 대한해운이 2011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한진해운은 2017년 파산했다.해운업계는 2020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터널을 빠져나왔다. 한진해운 등이 파산하면서 항로를 오갈 선박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진 데다 코로나19 직후 해상 운송량이 폭증한 결과다. 글로벌 해상운임 지표로 중국 상하이항에서 출항하는 컨테이너선 15개 항로의 단기(spot) 운임을 종합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 1월 7일 사상 최고인 5109.6을 찍기도 했다. 2019년 700~800선을 오가던 SCFI가 7배가량 뜀박질한 것이다. 꺾이는 운임…목표가 줄줄이 하향하지만 최근 들어 해운업계의 전성기가 끝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운업계 실적을 판가름하는 SCFI는 지난 2일 전주보다 306.64포인트 내린 2847.62를 기록했다. 이 같은 낙폭은 SCFI 통계를 작성한 2009년 후 가장 컸다. 역대 최대치인 올 1월 7일(5109.6)과 비교하면 44.26% 떨어진 수치다. 벌크선 운임 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도 지난달 31일 52포인트 내린 965를 기록하며 2020년 6월 12일(923) 후 가장 낮았다.해상 운송료 지표가 추락하는 것은 해운사들이 발 빠르게 선박을 늘린 영향이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10위권 밖인 글로벌 해운업체들이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항로에 선박 투입량을 늘리면서 운임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17~2022년 해운사들이 조선사로부터 넘겨받는 신규 컨테이너선이 100만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 안팎에 머물렀다. 하지만 내년에는 250만TEU를 넘어설 전망이다.물동량 증가 폭이 지지부진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올 하반기에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흐름이 이어지면서 주요 선진국의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며 “컨테이너선 수요도 덩달아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금융시장에서는 해운사들의 목표 주가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달 신영증권은 HMM 목표주가를 4만2000원에서 2만4500원으로 낮췄다. 대신증권은 2만9000원에서 2만7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삼성증권은 팬오션 목표주가를 1만1500원에서 1만500원으로 낮춰 잡았다.해운사들의 공격적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는 전문가들도 있다. HMM은 2026년까지 15조원을 투자해 컨테이너선 선복량을 현재 82만TEU급에서 120만TEU급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벌크선은 현재 29척에서 55척으로 늘릴 계획이다.업계 관계자는 “대한해운 등이 2000년대 중반 호황기에 선박을 비싼 값에 대규모로 빌려 쓰는 영업(용선)을 확대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며 “해운 경기가 꺾이면 전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비즈니스 포커스]호남 지역의 건설사를 기반으로 성장한 SM그룹이 인지도를 높인 때는 2016년이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하자 SM그룹이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과 터미널을 인수하며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올해 SM그룹의 재계 순위는 전년보다 4계단 뛰어오른 34위로 자산 총액은 13조7000억원이다. 해운 시황이 좋아지면서 SM그룹이 보유한 해운사들의 실적이 향상된 것이 원동력이다. 이처럼 해운사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 온 SM그룹이 지난해부터 HMM의 주식을 조금씩 매입하면서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큰 그림’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HMM은 6월 20일 SM상선과 우오현 SM그룹 회장 등 특별 관계인 18인이 HMM 지분 5.52%(2699만7619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SM그룹은 HMM 주식을 보유하기 위해 8350억원을 썼다. 기업별 보유량은 SM상선이 1647만7790주(3.37%)로 가장 많은 HMM 주식을 보유했다. 그 뒤를 이어 대한상선(235만5221주), SM하이플러스(203만8978주), 우방(109만2315주), 에스티엑스건설(105만6000주), 대한해운(71만5000주), 삼환기업(70만주) 순으로 나타났다. 우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도 주식 매수 행렬에 동참했다. 우 회장이 128만7300주, 우 회장의 장남인 우기원 삼라 감사가 5000주, 김만태 대한해운 대표가 5000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사와 임원들까지 ‘총동원’돼 HMM 주식 매수에 나선 것이다.이에 따라 SM그룹은 민간 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HMM 주식을 갖게 됐다. HMM의 최대 주주는 KDB산업은행으로 20.69%(1억119만9297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한국해양진흥공사가 19.96%(9759만859주)를 보유 중이다.SM상선 측은 지분 보유 목적에 대해 ‘단순 투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는 우 회장이 해운사들을 여러 곳 인수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SM그룹은 2013년 대한해운 인수를 시작으로 2016년 벌크 전용 선사인 삼선로직스(대한상선)와 한진해운(SM상선)의 자산 일부를 인수했다. 하지만 그간 SM상선이 추진해 온 M&A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선 덩치 차이가 너무 크다. 해운사들의 체급을 알 수 있는 선복량을 살펴봐도 SM상선은 HMM의 10분의 1 수준이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6월 28일 기준 HMM의 선복량은 81만4557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글로벌 선사 중 8위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SM상선은 8만5407TEU로 22위를 기록 중이다. SM그룹 전체로 봐도 그렇다. HMM의 자산 총액은 17조8000억원으로 SM그룹의 13조7000억원보다 훨씬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SM그룹이 인수에 나선다면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것’이다.HMM의 ‘새 주인 찾기’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KDB산업은행의 의지다. KDB산업은행이 강석훈 신임 은행장을 새로운 리더로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경기가 곧 침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한다. 현재 HMM 인수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인수자를 찾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대한해운 팬오션 SM상선을 비롯한 주요 해운사들이 모그룹이 전개하는 사업에 동원되면서 벌어들인 현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를 받는 ‘해운업계 맏형’ HMM도 성장동력 확보는 뒷전에 둔 채 ‘현금 쌓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M상선과 대한해운을 비롯한 SM그룹 계열사는 지난주(20~24일) HMM 주식 60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7일 SM상선 등 SM그룹 계열사는 HMM 지분 5.52%(2699만7916주)를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17일까지 HMM 주식을 사 모으는 데 각각 4851억원, 269억원을 사용한 SM상선과 대한해운은 지난주에도 추가로 600억원을 HMM 주식 매입에 썼다.SM상선은 올 1분기 당기순이익 3413억원을 거두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갔다. 하지만 벌어들인 현금의 상당액을 HMM 매입 자금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인수합병(M&A) 귀재’로 통하는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현금 창출력이 높은 SM상선 등을 동원해 HMM 인수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주식 매입에 현금을 투입하면서 SM상선의 투자 여력과 재무구조가 훼손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팬오션도 모그룹인 하림그룹의 계열사 지원으로 110억원가량의 평가손실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팬오션은 지난해 1월 하림USA 유상증자 때 308억원을 출자해 지분 22.36%를 확보했다. 지난 3월 말 팬오션이 보유한 하림USA 지분(22.36%) 가치는 198억원으로 감소했다. 현재 지분가치를 출자금과 비교하면 110억원가량의 평가손실을 기록한 것이다.하림그룹은 2011년 하림USA를 통해 미국 대형 닭고기 전문업체 앨런패밀리푸드를 인수했다. 하지만 하림USA는 지난해 32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는 등 적자를 면치 못했다. 손실이 이어지면서 작년 말 자본총계는 -35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하림USA의 재무구조 악화가 자금 지원에 나선 팬오션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HMM도 지배구조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산업은행(지분 20.69%), 2대 주주는 한국해양진흥공사(19.96%)다. 2015년 유동성 위기를 겪은 이후 채권단 관리 체제가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말 HMM의 현금성 자산(현금+기타금융자산)은 9조5103억원에 이른다. 올 1분기에 영업이익 3조1486억원을 거두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면서 ‘곳간’도 가득 찼다.하지만 HMM이 뚜렷한 장기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현금만 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신종자본증권(영구채·2조6799억원)의 조기상환 요구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요 주주들이 장기 성장 전략 마련에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HMM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