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서울·부산 리사이틀 앞두고 서면 인터뷰
"음악은 스포츠 아니야…주관적 영역, 경쟁해선 안 돼"
'피아니스트들 교과서' 안드라스 시프 "콩쿠르 출전 멈춰라"
"한국의 연주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콩쿠르에 출전하기를 멈추라는 겁니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에요.

"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68)는 '피아니스트들의 교과서',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불릴 만큼 정교하고 모범적인 연주를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바흐 해석의 권위자로 꼽히는 그는 연주 활동 외에도 음악교육가로서 후학 양성에도 관심이 크다.

여러 차례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젊은 피아니스트들과도 교감해왔다.

그런 그가 내한공연을 앞두고 19일 연합뉴스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콩쿠르 출전을 하지 말라는 도발적인 조언을 쏟아냈다.

"콩쿠르 출전을 멈추라는 겁니다.

아니, 그보다 더, 경쟁이라는 것 자체를 그만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음악은 위대한 예술의 영역이지 스포츠가 아니거든요.

속도와 힘, 스태미나와 정확도, 이런 측정 가능한 요소들은 스포츠가 아닙니까.

예술은 측정이 불가능한 요소들로 이뤄진 것이고, 고도의 주관적 영역이지요.

"
시프는 "바로 이것이 음악 콩쿠르가 불가능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한국에는 어마어마한 인재들이 있어요.

이들은 보호·육성돼야 합니다.

경쟁시켜서는 안 돼요.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소중한 친구 정명훈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래전 둘 다 우승하지 못했던 콩쿠르에서 만났습니다.

보세요,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휘자가 되었는지를!"
시프와 정명훈은 오랜 친구 사이다.

1974년 차이콥스키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만나 치열하게 경쟁한 이후 돈독한 우정을 쌓아왔다.

당시 정명훈은 2위, 시프는 4위를 했다.

'피아니스트들 교과서' 안드라스 시프 "콩쿠르 출전 멈춰라"
2008년 첫 내한 이래 여러 차례 방한해 한국 클래식 팬들을 만나온 시프는 한국을 잘 아는 해외 연주자로 통한다.

2008년 마스터클래스로 만난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그 자리에서 바로 루체른 페스티벌로 초대했고, 피아니스트 조성진, 문지영, 김수연과도 마스터클래스로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

'지한파' 연주자로서 한국의 젊은 인재들이 지나치게 콩쿠르를 통해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하다가 에너지와 예술혼을 고갈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행간에 읽혔다.

여전히 매일 아침이면 1시간 또는 그 이상 바흐를 연주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하루를 바흐의 음악과 시작하는 건 마치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과 같아요.

마음을 정갈히 하고 영혼과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한 것이지요.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프의 내한은 4년 만에 이뤄졌다.

오랜만에 서울을 찾는 그는 "서울의 영혼은 늘 감동을 줬다"며 "부산은 바닷가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라고 들었다.

한 번도 부산에서 연주해 본 적이 없어서 새로운 관객을 만날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시프는 오는 11월 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과 10일 부산문화회관에서 내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 이르는 고전 음악을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특정 곡목을 미리 발표해 두고 순서대로 연주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당일 공연장의 음향, 피아노의 상황, 관중의 특색을 고려해 연주 전 현장에서 선택한 레퍼토리를 말로 소개하며 연주할 예정이다.

최근 시프는 자신의 모든 연주회를 이런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자유와 즉흥의 힘을 믿습니다.

가령 2년 후 연주 일정이 잡힌다면 관객에게 그때 뭘 듣게 될지 미리 말해준다는 것이 평범한 건 아니지요.

2년 뒤 오늘 저녁 식사로 뭘 선택할지 말할 수 있나요? 놀라움도 공연의 한 요소이지요.

"
'피아니스트들 교과서' 안드라스 시프 "콩쿠르 출전 멈춰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