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자 씨, 총탄에 숨진 아버지 사연 추념식서 낭독
"눈물꽃 닦아주세요" 여순사건 유족, 한 맺힌 절규
"부모 없이 살아온 유족들의 나이가 이제는 다들 저세상으로 떠날 나이가 됐습니다.

유족들 마음속에 핀 눈물 꽃,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닦아주셨으면 합니다.

"
여수·순천 10·19 사건(이하 여순사건) 유족 김명자(74)씨는 19일 전남 광양시에서 열린 여순사건 74주기 합동 추념식에서 직접 작성한 한 맺힌 사연을 낭독했다.

김씨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눈물 흘리면서 하셨던 한마디 한마디 가슴 깊이 쌓고 또 쌓아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며 아버지의 사연을 처연한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김씨의 아버지 고(故) 김병석 씨는 당시 광양 읍내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경찰에 의해 끌려갔다고 한다.

읍내에서 밤새 총소리가 들려왔고 김씨의 할머니는 날이 밝자마자 읍내로 달려가 아버지를 찾았지만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이후 아버지가 다른 주민들과 함께 경찰에 끌려가 재판도 없이 총살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수소문 끝에 산에서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힘들게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시신에는 총탄 흔적이 선명했다.

아버지를 잃고 난 뒤 "널브러진 물건들처럼 우리 집은 그때부터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그는 "고아 아닌 고아가 돼 부모 형제 없이 한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고 지난 세월의 회한을 드러냈다.

김씨는 "작년 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장면을 TV에서 지켜보면서 기분이 찹찹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며 70년이 넘어서야 특별법이 제정된 것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70년이 넘도록 남모르게 피눈물을 흘리며, 부모도 모르고 살아올 때는 위로는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니 왜 인제 와서"라면서 아쉬움을 내비치며 늦게라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연합뉴스